2022.2.7. (月曜日) “흰색 카바들White Kaa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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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 야산정상 수피춤과 낙엽위 하얀 카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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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7. (月曜日) “흰색 카바들White Kaabas”

겨울 산은 메마르다. 입춘이 지나고 제법 따스한 기운이 감지되는 아침이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전환한지 넉 달이 되었다. 반려견들을 차로 태우고 북한강 지류를 따라 야산으로 가는 산책경로를 바꾼 지 넉달이나 되었다. 10년 전에 이 곳으로 이주하여, 첫 5년간은 집 앞, 차로를 반려견들과 달렸다. 그 때는 그 도로만이 나의 유일한 산책이었다. 산책 초보자로, 그 길만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북한강 지류를 따라 탁 트인 평원과 야산으로 이어지는 산책코스를 발견하였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그 후 이 길은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곱’이란 의미다. 일생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형 에서와 경쟁하던 ‘야곱’이, 사막에서 환상을 보고, 천사와 목숨을 내놓고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야곱’은 ‘발뒤꿈치’란 의미이고 ‘이스라엘’은 ‘신과 싸워 이겼다’란 뜻이다.

작년11월부터 내 산책길은 집 뒤쪽에 위치한 신선봉이다. 나는 매일 고라니 두세 마리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듣는다. 낙엽과 솔잎으로 수북하게 쌓인 야산엔,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살펴보면, 고라니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지난 자리엔 낙엽들이 흩어져 있다. 반려견들은 이들이 여기 왔다갔다는 사실을 ‘코’로 안다. 나는 이들을 리드줄을 잡고 가파른 야산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 야산의 끝은 어디나 정상이다. 정상에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면, 무심코 겨울 내내 서 있는 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내가 아침마다 가는 이곳은 나의 메카다. 그곳에 가서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 쉬면 온전한 하루를 맑은 정신으로 시작할 수 있다. 아이폰을 꺼내 갈참나무와 소나무를 촬영한다. 제자리에서 빙빙 수피춤을 추며 돌아보았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매순간 움직이는 이 거대한 지구의 자전과 자신의 회전을 일치시키려는 합일 위한 수련이다. 이곳에 아직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신과 인간의 합일, 자연과 인간의 합일, 나와 너의 합일을 추구한다. 아랍아로 ‘타우히드’tawhīd다. 자신이 도달해야하는 고유한 목적지를 상실한 인간은, 시시각각 이기심에 빠져 해변가의 부초처럼 이리저리 떠다닌다. 수피즘은, 육체, 정신, 그리고 영적인 기운을 모으기 위해, 자신을 가장 간결한 상태로 추린다. 이 간결한 상태가 ‘피크르fikr’다.

수피들은 자신이 가야할 궁극적인 순례지를 메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찾는다. 수피 시인 루미는 <인간에게로 떠나는 순례A Pilgrimage to a Person>라는 시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On every trip, have only one objective,

to meet those who are friends inside the presence.

모든 인생 여정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현존 안에 존재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입니다.

If you stay home, keep the same purpose,

to meet the innermost presence as it lives in people.

만일 당신이 집에 머물러 있어도, 동일한 목적을 지니십시오.

사람들 안에 거주하는 것처럼, 가장 심오한 현존을 만나십시오.

Be a pilgrim to the kaaba inside a human being,

and Mecca will rise into view on its own.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카바로 가는 순례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메카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여정은 단순한 거리와 길과는 다르다. 길은 목적지를 가기위한 과정이자 수단이다. 인생은 길이 아니라 여정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목적지가 있다. 그 목적지가 무엇인지 알려는 수고가 교육이며, 자신만의 목적지를 발견하는 것이 해탈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이 순간 걷는 것이 행복이다. 그 길로 들어서면, 우리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나를 이끌어주는 ‘또 다른 나’다. 루미는 그런 존재를 ‘가장 심오한 존재’라고 표현하였다. 무슬림들이 일생에 한번 가야하는 그 목적지인 ‘카바’는 메카에 있지 않고 우리 각자 마음속에 존재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카바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 시커먼 바위가 스스로 고개를 들고 우리에게 손짓할 것이다.

이 야산 정상에서 나의 카바를 발견하고 싶었다. 빙빙돌다가 발밑을 보았다. 한 버려진 낙엽위에 검은 색 바위인 카바보다 찬란한 흰색 카바들이 보인다. 하나가 아니라 수천개의 흰색 카바들이 버려진 낙엽위에 소복하게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미가 말한 대로, 카바는 내 발 밑에 다가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찬란하게 눈부신 수천 개 카바들이 나에게 묻는다. “당신의 카바는 어디입니까? 당신 발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