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 (木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6): 그(녀)는 스스로를 존경尊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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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22.2.3. (木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6): 그(녀)는 스스로를 존경尊敬하는가?”

리더는 ‘스스로에게 리더인 사람’이다.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남들과 함께 있을 때, ‘리더’다. 리더의 표식은 ‘아우라’다. 아우라는 그 사람이 고귀한 열망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끝이 없는 노력 그리고 자신이 성취해야 할 이상이 매일매일 높아져,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응시하여 겸손이 몸에 배인 사람이다. 신은 그런 사람에게 ‘카리스마(charisma, χάρισμα)’를 선물한다.

리더는 일상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일상을 인생의 첫날처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사는 사람이다. 1초가 1분이고, 1분이 한 시간이며, 한 시간이 하루이다. 하루는 1년이고, 1년은 100년이며, 100년은 바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138억 년이다. 순간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푸대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신의 하루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우주탄생의 신비와 의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1세기 로마시인 호라티우스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말했다. 이 라틴어 문장에서 ‘디엠’은 ‘하루’도 되고 태양광선이 나 눈으로 들어오는 ‘순간’도 되며, 신이 우주를 창조하면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했을 때, 처음 등장한 바로 그 빛이기도 하다. ‘카르페’는 ‘카르페레(carpere)’라는 라틴어 동사의 명령형이다. ‘카르페레’는 과수원을 운영하는 로마의 농부가 과실농사에 사용하던 단어다. 사과의 당분이 최고의 순간은 사과가 자신을 가지와 연결시키는 작은 버팀 줄기인 과병(果柄)으로부터 떨어지기 직전이다. 과수원 농부는 그 순간을 경험을 통해서 안다. 그(녀)는 잘 익은 사과를 과병으로부터 과감히 떼어낸다. ‘카르페 디엠’이란 ‘순간을 포착하여, 과감히 자신을 위한 최선으로 전환시켜라!’라는 명령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영원이기 때문이다. 영원은 순간을 통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부분은 전체이고 전체는 부분이다. 부분이 없는 전체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의 조화로운 집합이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우주를 허공(虛空)과 그것을 채우고 있는 원자(原子)의 집합으로 보았다. 그는 원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란 의미로 ‘아토모스(atomos, ἄτομος)’라고 불렀다. 현대 과학자들은 ‘아톰’이 더 이상 아톰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안에서 수많은 다른 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한한 우주와 같은 원자에는 전자도 있고 원자핵 안에서는 중성자와 영성자도 있다. 몇 년 지나면, 과학은 이 객체들 안에 셀 수 없는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것이다. 과학은 인간의 지식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무지와 무식을 알려주는 등불이다. 원자는 우주이고 우주는 원자다.

원자가 스스로 원자라는 이름과 힘을 가리기 위해서는 ‘원자’라는 자생적인 문법이 있어야 한다. 이 문법 없이, 원자는 원자라고 불릴 수가 없다. 그 문법이 바로 ‘응집력(凝集力)’이다. 원자가 응집력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원자가 아니며 우주 안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도 존재할 수 없어 무형이 되고 말 것이다. 원자가 완벽해야지만, 원자의 집합체인 인간도 자연도, 우주도 완벽할 수 있다. 물방울을 바로 이 응집력이 만들어낸 가시적인 예술작품이다. 물방울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보다 렘브란트의 「야경순찰」 그림보다 신비하고 완벽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전율이 느껴진다. 물방울이 모여 비가 되고, 시냇물과 강이 되어 결국 바다가 된다. 물방울이 바다이고 바다가 물방울이다.

리더는 순간을 장악하여 예술로 승화하기를 연습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좌지우지하려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소멸(消滅)하는 자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 소멸의 수련을 아라비아어로 ‘파나’(fanā,ʾ فناء‎)라고 불렀다. ‘파나’는 순간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일상을 장악하려는 수련이다. 리더는 파나라는 응집력으로 여기-지금을 장악하는 자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가, 아니면 존경을 강요하는가?”

대선을 위한 체크리스트

1. 그(녀)는 스스로를 신뢰할 수 인간인가?

2. 그(녀)는 장엄한가?

3. 그(녀)는 진정성을 말하는가?

4. 그(녀)는 시의적절한가?

5. 그(녀)는 좋은 습관을 수련하고 있는가?

6. 그(녀)는 스스로를 존경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