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8. (月曜日)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자가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사진

<이스라필 천사>

알-까즈비니al-Qazvini

잉크, 15세기 초

from Aja'ib al-makhluqat wa ghara'ib al-mawjudat

(The Wonders of Creations and Oddities of Existence)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

2022.2.28. (月曜日)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자가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삶과 젊음을 절대 선으로 죽음과 늙음을 절대악으로 규정한 현대문명과 문화의 기원은 고대이집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그(녀)가 생전에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을 피라미드나 장례 무덤에 정렬하였다.

중세 유럽에 <신비한 연극>에 ‘최후의 심판’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주위사람들에게 최후에 심판에 누가 함께 갈 수 있는냐를 묻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나는 아니야!”라고 그의 친구들이 말했다.

“나는 아니야!”라고 그의 자녀들이 말했다.

“나는 아니야!”라고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아니야!”라고 그의 사제가 말했다.

“나는 아니야!”라고 그가 소유한 들판의 곡식도, 양 떼도, 금은보화도 말했다.

그러자 그가 살아있을 때 행한 ‘행위들’이 “내가 너와 함께 갈께!”라고 말했다.

그가 누운 관속으로 들어와 누웠다. 그와 그의 행위들은 팔짱을 끼고 죽음의 문 입구에 있었다.

누가 당신을 죽음의 도시 입구에 데리고 갈 것인가? 당신의 명성, 학력, 통장, 심지어 당신의 지갑에 있는 가족사진도 아니다. 그 어느 것도 당신과 함께 갈 수 없다. 다만 당신이 일생 동안 저지른 ‘행위들’뿐이다. 루미는 우리는 모두 선술집에 와 있다고 노래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국가라는, 집이라는 조그만 선술집에 머물러 있다. 인생이라는 신비를 조금이라고 탐구하기 위해, ‘나’라는 경계를 허물려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왔다. 선술집에는 다양한 와인들이 있다. 색도 맛도 다양하다. 지적으로 민첩한 와인도 있고 감정적으로 충만한 와인도 있다.

와인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칠맛이 노래 부르게 만드는 카베르네cabernet도 있고 온갖 향기를 피우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샤도네이chardonnay도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와인들이 구비된 선술집에 입장하여 자신의 와인을 골라 음미하는 것이다. 포도는 자신을 애워 싼 껍질을 과감하게 터뜨리고 다른 포도알들과 함께 숙성할 때, 영광스런 여행을 시작한다. 포도가 일정한 기간을 거쳐 포도주가 변모하는 과정은 기적이다. 예수가 첫 번째 기적으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놀라운 맛을 지닌 포도주를 만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포도주는 인간 변모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은유다.

껍질을 베껴 낸 포도알들은 자신은 몸에서 나온 즙과 함께 출구가 없는 어둡고 좁고 축축하고 답답한 오크통에서 오랜 시간을 조용히 지내야 한다. 그 인내는 놀라운 기적을 만든다. 선술집에서 새 술에 취한 우리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 이곳의 예절은 인사불성人事不省이다. 나의 이름, 성, 직업, 생김새, 지위는 진솔한 내 자신을 찾는 탐구를 방해하는 소음들이다. 말을 더듬어도 좋고 침묵해도 좋다. 열정, 진심, 그리고 경청이 대화를 춤추게 만드는 문법이다.

인간은 부모의 품에서 신체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존재가 되고, 부모를 떠나 학교에서 정신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 후에, 하던 일을 멈춘다. 그(녀)는 이제 타인에 관심을 두거나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영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를 취하게 만드는 이 달콤한 장소에서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잠시 우연히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술집은 고향으로 항해하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한 사이렌의 거부할 수 없이 치명적인 노래처럼, 나를 안주시키려 한다. 선술집은 내가 가야 할 본향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는 진통제다. 루미는 우리에게 그 선술집에서 뛰쳐나오라고 말한다. 이제 본향으로 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루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자가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All day I think about it, then at night I say it.

Where did I come from, and what am I supposed to be doing?

I have no idea.

My soul is from elsewhere, I’m sure of that,

and I intend to end up there.

하루종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밤에 저는 말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 영혼은 어디에선가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인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This drunkenness began in some other tavern.

When I get back around to that place,

I’ll be completely sober. Meanwhile,

I’m like a bird from another continent, sitting in this aviary.

The day is coming when I fly off,

but who is it now in my ear who hears my voice?

“이 술 취함은 다른 선술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장소로 돌아왔을 때,

저는 완전히 깨어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저는 다른 대륙에서 온, 새장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습니다.

제가 날아 가버릴 날이 오고 있습니다.

제 귀에서 제 목소리를 듣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Who looks out with my eyes? What is the soul?

I cannot stop asking.

If I could taste one sip of an answer,

I could break out of this prison for drunks.

I didn’t come here of my own accord, and I can’t leave that way.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합니까?

“누가 제 눈을 가지고 밖을 봅니까? 무엇이 영혼입니까?

저는 묻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 대답의 한 모금을 맛볼 수 있다면,

저는 술 취한 자들을 위해 이 지옥에서 박차고 나갈 것입니다.

저는 자진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식으로 떠날 수 없습니다.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사람이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This poetry. I never know what I’m going to say.

I don’t plan it.

When I’m outside the saying of it,

I get very quiet and rarely speak at all.

“이 시도! 제가 이렇게 말할지 결코 몰랐습니다.

저는 시를 궁리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가 읊어지는 동안 밖에 머물러

매우 조용해집니다.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이어령선생님은 우리가 아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 세상을 꿰뚫어 보고, 그 핵심을 간결하게 말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시다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어머니가 그가 그리워 밥 먹으라고 부르셨나보다. 당신은 당신을 데리고 온 자가 말하는 것을 말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그 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십니까? 당신은 어머니가 부르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