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레브 톨스토이>Lev Tolstoy in Yasnaya Polyana
사진작가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이Sergei Prokudin-Gorskii(1863–1944)
1908,
모스코바 Leo Tolstoy State Museum
2022.2.16.(水曜日) “천국天國”
오래된 힌두 전설이 있다. 그 옛날에 모든 인간은 신이었다. 아니 모든 존재가 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자, 신들의 우두머리인 브라흐마가 그들로부터 신성을 빼앗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에 숨겨놓기로 결정하였다. 브라흐마는 신들을 소집하여 신성을 어디에 숨길지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신들이 말했다. “땅속 깊은 곳에 숨깁시다.” 그러자 브라흐마가 말한다. “소용없을 것이다. 언젠가 인간이 땅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샅샅이 뒤져 찾아 낼 것이다.” 그런 후 신들이 토의를 거친 후 다시 말했다. “바다 가장 깊은 곳에 숨깁시다.” 그러자 브라흐마가 말한다. “소용없을 것이다. 언젠가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찾아 낼 것이다.” 그런 후 신들은 다른 안을 내놓는다.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숨깁시다.” 브라흐마는 이번에도 이렇게 말한다. “소용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 산 정상에 올라가 찾아 낼 것이다.” 신들은 이제 체념하고 말했다. “어디다 숨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이 도달하지 못할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호기심이 많이 자신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인류는 달뿐만 아니라 화성까지 찾아갔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는 더욱더 그렇다. 경치가 좋은 장소가 있다면, 거리와 비용에 상관없이 찾아갈 것이다.
브라흐마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간의 신성을 감추어 놓을 장소가 생각났다. 아무도 찾지 못할 장소다. 우리가 그 신성을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놓자. 인간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찾으려 해도, 자기 자신을 들려다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인간은 지구전체를 돌아다니며, 발굴하고, 등반하고, 탐험하였지만 신성을 찾지 못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하지도 않고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신성이 있다고 알려준 사람들이 성인들이다. 예수, 붓다, 그리고 노자는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서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설파하였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에서도 등장한다. <도마복음서> 어록 3이다:
“당신의 리더들은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천국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새들이 당신들보다 앞서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셈입니다.
또 당신의 리더들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보시오. 천국은 바다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당신들보다 앞서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셈입니다.
천국은 당신들 안에 있고, 천국은 당신들 밖에 있습니다.”
위 문장에서 리더란, 종교지도자들이거나 고상한 사상을 말하는 철학자들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과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처럼, 하늘에 있다, 혹은 바다에 있다고 떠벌일 것이다. <도마복음서> 저자는,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하늘의 새나 바다의 물고기가 이미 천국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힌두전설처럼, 천국은 인간의 안에 있고 혹은 천국은 인간의 밖에 있다고 말한다.
신성은 종교시설이나 경전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한다. <창세기> 1.26은 신이 인간의 자신의 형상, 자신의 모양대로 창조했다고 기록한다. 인간은 신의 불꽃은 품은 존재들이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드러내면 된다. 그 존재를 모르는 것이 무식이고,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는 태도가 게으름이다. 신성이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고 믿는 전통의 한 갈래가 20세기에 등장한 그리스도교 무정부주의Christian anarchism이란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리스도교 무정부주의자들은 인간의 복종을 요구하는 유일한 권위는 정부, 종교기관, 혹은 경전이 아니라, 인간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성이다.
그들에게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천국’이란 개념은 장소가 아니다. 복음서에 등장한 그리스어 원문 표현인 ‘헤 바실레이아 톤 후라논’he basileia ton houranon의 본래 의미는 ‘하늘의 뜻이 편만하게 이루어지는 상태’라는 의미다. 신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인간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깊은 묵상, 결심, 그리고 결심한 바를 이루려는 의지를 통해 서서히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다.
이 사상을 현대인들에게 쉽게 설명한 두 사상가가 있다. 한명은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이고 다른 한명은 러시아 문호 레오 톨스토이(1828-1910)다. 엘륄은 구약성서에서 사사시대 왕의 등장과정을 살피면서 왕과 국가의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사무엘 상> 8장에 이스라엘사람들이 나단선지자에게 가서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자 나단은 왕과 국가는 군사주의, 징병, 세금을 의미하며 절대 권력을 쥔 왕은 사람들을 학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스도교 무정부주의자들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 유혹에 대한 해석에서, 국가와 정부에 대한 혐오를 지적한다. 예수의 세 번째 유혹에서, 사탄이 예수에게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권력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국가나 정부는 사탄이 다스리는 공동체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정교회가 러시아 정부와 하나가 되면서, 국가종교로 전락한 것을 보고, 정치와 종교분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누가복음> 17.21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철학적 무정부주의의 교과서인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를 그대로 인용하여 책을 1894년에 출간하였다.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마음속에 건축되어야할 양심이며, 국가주도의 전쟁에 반대하여 비폭력주의와 평화주의를 신장하였다. 천국은 나의 마음 속에 있는가? 나는 그것을 지금-여기에서 언행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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