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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마련한 청평호수 스케이트장>
2022.2.11. (金曜日) ”희망希望“
(사순절 다섯 번째 주, 2022년 4월 3일)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의 순환을 몸으로 느끼고 체득하면서, 자신의 삶을 거대한 섭리에 어울리게 조절하였다. 지난 금요일(2월 4일)이 입춘이 지나면서,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지만, 살을 에이지는 않았다. 스케이트장의 얼음이 녹아 더 이상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다. 얕은 개울에 스케이트장을 마련해 얼음이 군데군데 녹아내렸다.
스케이트 감독님은 얼음이 적어도 40cm이상 두텁게 얼어 붙은 청평 호숫가로 내려가 스케이트장 링크를 새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하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전보다 훨씬 규모가 큰 스케이트 링크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모두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며 커다란 타원형 링크를 만들었다. 그런 후, 동물들이 지나가면서 남긴 울퉁불퉁한 얼음덩어리를 쇠 밀대로 밀거나, 부탄가스통 토치를 이용하여 녹였다. 오전 내내 작업하여 링크가 제법 평평해졌다. 하얀 눈으로 덮여,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청평호수가 멋진 스케이트 링크가 되었다.
절망은 희망을 위한 단계이며, 불행은 행복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사야서> 43장은 그런 희망의 노래를 담고 있다. 소위 제2 이사야 (40-55장) 선지자 바빌론이 새로 등장할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는 기원전 539년 바빌론을 탈환하고 그곳에 있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였다. 그는 다시 이 칙령을 내려,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파괴하였던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칙령을 내린다. 키루스는 페르시아제국의 보물창고가 있는 에크바타나Ecbatana에서 자신들의 자금으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독려하였다
<이사야서> 45장 1행에 키루스Crysu the Great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메시아)’에게 말씀하신다. “키루스에게 말한다. 내가 그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 열방을 그 앞에 굴복시키고, 왕들의 허리띠를 풀어 놓겠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한 번 열린 성문은 닫히지 못하게 하겠다. 키루스는 들어라.”
2행 이후에 신이 왜 키루스를 선택했는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이 글의 저자는 키루스를 ‘기름 부어 세우신 이’로 부른다. ‘기름 부어 세우신 이’를 히브리 원어로 바꾸면 ‘메시아(Meshiah)’다. 키루스는 바빌론에 유배 중인 유대인들을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보물창고를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였다. 만일 키루스의 칙령이 없었다면,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한 무명 유대인이 키루스를 ‘메시아’, 즉 구원자로 부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2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43장 16-21에 야훼신이 바빌론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야훼신이 과거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바다를 건너가게 만든 것처럼, 유대인들을 구원하신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이사야서> 43장 19절은 다음과 같다:
הִנְנִ֨י עֹשֶׂ֤ה חֲדָשָׁה֙ עַתָּ֣ה תִצְמָ֔ח הֲלֹ֖וא תֵֽדָע֑וּהָ
אַ֣ף אָשִׂ֤ים בַּמִּדְבָּר֙ דֶּ֔רֶךְ בִּֽישִׁמֹ֖ון נְהָרֹֽות׃
hinnî ʿōśe(h) ḥǎdāšā(h)
ʿattā(h) tiṣmā(h)
hǎlō(ʾ) tedāʿûhā
ʾap-ʾāśîm ba-midbār derek bîšimôn nǝhārôth
힌니 오세 하다샤
앗타 티츠마
할로 테다우하
아프-아심 바-미드바르 데렉 이시몬 너하로쓰
“보라, 내가 새로운 것을 행할 것이다.
지금 싹이 나오고 있다.
그것을 너는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심지어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낼 것이다.”
성서 저자는 이 구절에서 신의 신비한 섭리를 강조하기 위해 히브리어 부사 네 개를 사용한다: 힌니, 앗타, 할로, 그리고 아프. 위 구절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자, 주목하여라! (힌니) 내가 이전에 일어난 적이 없는 놀랍고 새로운 일을 벌일 것이다.
저 죽은 땅에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지만, 지금(앗타) 정해진 시간에 싹이 움트고 있다.
너는 이 자연의 당연한 순환과 섭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심지어(아프), 그 광야에 동물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낼 것이다.”
희망은 지금-여기에 집중하여 신의 섭리를 알아차리는 마음가짐이다. 그 희망의 노래를 윌트 휘트먼은 <자 자신을 위한 노래> 제3단락 초반부에 이렇게 노래한다.
I have heard what the talkers were talking, the talk of the beginning and the end,
But I do not talk of the beginning or the end.
There was never any more inception than there is now,
Nor any more youth or age than there is now,
And will never be any more perfection than there is now,
Nor any more heaven or hell than there is now.
“나는 시작과 끝에 대해 장황하게 말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시작이나 끝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처음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젊거나 더 늙은 것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천국도, 더 불행한 지옥도 없습니다.”
새로 마련된 스케이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하였다. 봄이 오기 전에, 두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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