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0. (木曜日) “상식常識”

사진

<토머스 페인>

프랑스 초상화가 로랑 다보Laurent Dabos (1761–1835)

유화, 1791, 74.3 cm x 59.1 cm

2022.2.10. (木曜日) “상식常識”

지난 화요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영국심판의 판결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영국심판이 내린 대한민국 선수들에 대한 실격처리는 편파적이며, 사전에 누군가와의 공모가 있었다는 추론이 불가피했다. 중국이 G2를 꿈꾸는 경제 강대국이 된 이 시점에서, 아직 공정한 경쟁이 통용되지 않는 야만 국가라는 점에 놀랐다. 그런 경제 강국 건설이 문명적인 교양과 문화적인 양심을 구비 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사실 교양은 그 공동체나 사람의 외형적이며 경제적인 성과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고대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공정한 경쟁’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를 실험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가장 감동적인 비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공정한 경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였다. 경쟁은 이 당시 시작된 올림픽 경기, 전차 경주, 합창 경연, 그리고 비극 경쟁에 모두 사용된 핵심단어다. 오늘날 예를 찾자면, 올림픽 경기, 포뮬러 원 자동차 경기,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한 경쟁, 오페라와 발레 경연대회다.

자유롭지만 공정한 경쟁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한 영국인이 있었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이다. 그는 개신교의 한 분파이며 정숙주의를 표방하는 퀘이커종파 아버지와 영국 성공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퀘어커교는 개신교의 일파로 17세기 중엽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창시한 Society of Friends가 그 원조다. 퀘이커교는 영국 왕실 종교이며 의례와 교리를 강조하는 성공회와는 달리, 조용한 가운데 신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체험종교다. 정숙을 연습하고, 그 가운데 내면의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개인주의적인 종교다. 일체의 외형적인 틀을 거부하고 개인의 영적인 깨달음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페인은 중등교육조차 누리지 못했다. 겨우 읽고, 쓰고, 셈하는 정도 실력을 지닌 노동자였다. 그는 허리가 잘록해 보이게 하는 여성용 속옷인 코르셋을 만드는 아버지를 도왔고 여러 잡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마침내 담배와 술에 물품세를 매기는 관원이 되었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임금상승을 요구하다, 직장마져 잃게 된다. 당시 영국으로 건너와 미국의 독립을 기획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1774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건너왔다.

페인은 필라델피아 매가진Pennsylvania Magazine에서 18개월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는 영국의 지나친 세금에 반발한 ‘보스톤 차 사건’(1753)이나 영국과 미국 전쟁의 포문을 연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목도한 후, 미국 식민지인들이 지나친 세에 대한 반발을 넘엇 미국의 독립을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1776년 1월 10일, <상식Common Sense>이란 46쪽 팜플렛에 담아 출간하였다. 몇 개월만에 50만부가 팔렸다.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John Adams는 토머스 페인이 1776년에 쓴 47쪽 팜플렛인 ‘상식’Common Sense라는 책에서 이 책은 같은해 7월 4일에 비준된 미국 독립선언문과 독립을 위한 중요한 단계이자 발판이 되었다. 페인의 주장한 ‘상식’을 오늘날 미국이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이 책자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을 주장하고,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자질인 ‘상식’을 열거한 미국건설의 초석이 되었다.

페인의 <상식>은 철학자나 사상가의 글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육받게 받지 못한 보통 사람의 목소리다. 그는 철학적인 추상이, 상식을 기반으로 한 감정이나 경험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상식’을 수용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신의 감정을 믿으라고 촉구한다. 상식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가만히 눈을 감고 정숙을 유지할 때,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미세하고 친절한 양심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