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 (火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4): 그(녀)는 시의적절時宜適切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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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 (1925-2013)

2022.2.1. (火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4): 그(녀)는 시의적절時宜適切한가?”

리더가 될 사람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의미를 정확하고 감동적으로 전달해야한다. 자신의 수사가 사실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식이 필요하다. 군인이나 무기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장식들이다. 이런 장식들이 없다면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수사학에는 세 가지 장식이 있다.

첫 번째 장식은 ‘시의적절성(時宜適切性)’이다. 그 담론이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과 장소가 있다. 시의적절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일반적인 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연설자의 말이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면 그것을 실행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하나는 양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chronos)’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지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도 크로노스를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해 그 시간을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장식이 있다. 이것이 ‘결정적인 순간’의 뜻인 ‘카이로스’다. 연설가와 작가는 자신의 글이나 연설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적절한 시간에 실현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일 자신과 대중이 모두 요구하는 카이로스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글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장식은 ‘청중이해(聽衆理解)’다. 모든 의도된 담론은 누가 그 연설을 듣고 그 글을 읽느냐에 따라 수정돼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청중이나 독자의 성격이 담론의 내용을 결정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청중에 따라 담론의 형식이나 내용까지 수정하는 방식은 진리 자체를 탐구하고 전달하려는 철학적인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진리’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천상에 존재하는 이데아가 아니라, 지상의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해 누군가가 애써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르네상스의 주역이 된 네덜란드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는 중세에서 벗어나려는 유럽인들을 위해 획기적인 사건을 준비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 유럽 지식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들이 ‘진리’라고 지탱해온 라틴어 신약성서의 핵심 구절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그는 그 진리가 제롬에 의해 번역된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가 공적인 삶을 시작하면서 외친 문장 “회개하라!”를 다시 번역했다. 이 문장이 라틴어로는 ‘아기테 파이니텐티암(agite paenitentiam)’이다. 번역하자면 “고해성사하라!”다. 중세에는 인간 스스로는 신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에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통해 고백해야만 했다.

에라스무스는 이 구절을 그리스어로 찾아 읽었다. “메타노이에테(metanoiete)!” 번역하자면 “마음을 바꿔라!”다. 신약성서가 기록된 그리스 원전에서 예수가 선포한 이 구절을 들은 유럽 지식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인간 스스로 신과의 만남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서 번역을 통해 처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의 르네상스 운동은 후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과 같은 근대국가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라스무스는 ‘청중’인 유럽 지식인들의 바람을 정확히 읽었고, 더 권위가 있지만 새로 발견된 성서 번역을 소개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일으켜 유럽을 지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세 번째 장식은 적격성(適格性)이다. 적격성이란 문학에서 등장인물이나 연설자의 행동과 말이 적절하게 표현되는 것을 뜻한다. 수사학 전체를 조정하는 개념이다. 연설자가 자기 생각을 적절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그 연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적격성은 연설이나 글을 작성하는 자가 오랜 시간을 통해 습득한 사회적, 미적, 윤리적 품성을 통해 드러난다. 이 품성은 그의 말이나 글을 통해 전달된다. 적격성은 청중이나 독자에게 자기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언어학적 수단으로 알레고리, 비유, 혹은 우화와 같은 장르를 사용한다.

이번 대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연설에서 그들의 말이 시의 적절한지, 국민을 이해했는지, 더 나아가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가만히 봐야겠다. 그(녀)는 시의절적한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