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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日曜日, 359/365) “<욥기> 동영상을 올리는 이유”

2022.12.25.(日曜日, 359.365) “<욥기> 동영상을 올리는 이유”


오늘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7시에 <욥기> 동영상을 올립니다. 2달전부터 여러분이 모여 <욥기>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욥기>는 인간이 누구인지, 신이 누구인지, 특히 인간에게 느닷없이 다가오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고, 이해하려고 시도합니다. 이 시점에 욥을 공부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태원참사입니다. 전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은 이태원 참사를 통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대통령실 관저 옆 동네인 이태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158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 참사를 대한민국이 진실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이해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이런 해석은 표피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이성적인, 도덕적인 이유를 넘어선 아직 우리의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빈다. 저는 어렴프시 <욥기>가 그 실마리를 풀어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융, 헤겔, 블레이크, 키에크케고르가 <욥기>야 말로 삶의 궁극적인 의미, 즉 죽음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한 이유를 저도 알고 싶었습니다.

<욥기>에는 하나님과 가장 유사한 존재, 신적인 인간을 등장합니다. 바로 욥입니다. 욥은 정직하고 온전합니다. 정직은 타인의 기준에, 세상의 법이나 윤리에 비추어 흠이 없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온전은,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스스로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 완벽한 인간을 지칭합니다. ‘정직’과 ‘온전’은 신이 바라는 완전한 인간, 신적인 인간의 표상입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간입니다.

신들의 모임에 참가한, 사탄이 하나님에게 도전합니다. 이 사탄의 질문은 종교와 인간 본성의 핵심을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욥기> 1장 9절

인간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면, 사업이 번창하고 건강해지고, 자녀가 복을 받습니까?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종교를 가지는 이유를 간파하여,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과연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알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적인 드라마에 자신을 심판대에 올려 놓기로 과감하게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제일 부자 욥을 처참하게 시험합니다. 그의 재산은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사라지고, 10자녀는 사고로 죽습니다. 욥 자신은 피부암에 걸려, 몸을 기왓장으로 긁는 신세가 전락합니다. 그는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간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로 전락합니다. 신의 경지에 오른 욥에게 그런 시험이 온 것입니다. 과연 욥이, 그래도 신앙을 유지할 것인가?

저는 욥의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와의 대화를 통해, 삶과 삶의 진수는 고통의 의미를 차근차근 찾아가고 싶습니다. 만일 죽음이 고통의 완성이라면, 인간은 영원한 고통에서 잠시 생명을 부지하면 살다, 다시 영원한 고통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잠시 사는 삶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기> 1장에서 해석하기 힘든 히브리 단어가 등장한다. ‘바락 בָּרֵ֥ךְ’이란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축복하다’라는 의미와 ‘저주하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한 단어입니다. 지나고 보면, 고통이 축복일 수 있고 축복이 또한 고통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욥기> 영상이, 이태원참사로 고통을 받고있는 유가족들과 고통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함축하는 의미를 자신이 이익을 위해 호도糊塗해 버리려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세력들을 일깨우는 거울이 되면 좋겠다. 선진국의 입장권은 ‘컴패션’이며, 선진국은 타인이나 타동물, 더 나아가 자연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길 수 있는 선진적인 인간들이 벽돌을 한장씩 쌓아 올려야할 건축물입니다. 2022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완벽한 인간인 욥을, 아니 하나님을 심판대에 울린 거대한 서사시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삶을 엄습한 고통의 의미를 조용히 찾으면 좋겠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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