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8. (土曜日) “신뢰信賴”
1990년 3월 어느 날 보스톤글로브 신문에 특종이 실렸다. 이사벨라 스트워트 가드너 미술관에 소장 중인 최고의 그림이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바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유일한 바다 풍경 유화였다. 지금도 그 행방이 오리무중인 이 그림의 제목은 <갈릴리 바다의 폭풍>이다. 나는 그 전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넋을 놓고 보았다. 집채만한 파도가 예수와 그의 제자가 탄 배를 흔들어 깊은 바다 속으로 집어 삼키기 직전의 광경이었다. 여기에 묘사된 제자들이 내 상황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한 제자는 맨 왼 뱃머리에서 찢껴 나가는 돛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고, 다른 제자는 가운데 돛을 몸에 휘감아 배로부터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또 붉은 옷을 입은 제자는 바다에 대고 구토하고, 한 제자는 가장 오른쪽에 돗대를 잡고 체념한 듯, 예수를 바라보고, 다른 두 제자는 이 와중에 평온하게 앉아 있는 예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따져 묻고 있었다. “하늘나라만 말하면 다냐? 우리가 지금 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모두 실린, 소위 Q복음 내용이다. 원래 Q에 가까운 마가복음의 내용이 간결하기 마련이지만,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만드는 광경’은 예외다. <마가복음> 내용이 가장 길다. <마가복음> 4장은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들로 시작한다. 예수는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는 그 비유를 풀어서 설명하셨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예수는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참이다.
그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 넘실대는 파도가 배로 들어와 배가 침몰한 지경이 이르렀다. 예수의 제자들은 생사의 귀로에 서서 공포에 질려있었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예수다. <마가복음> 4장 38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καὶ αὐτὸς ἦν ἐν τῇ πρύμνῃ ἐπὶ τὸ προσκεφάλαιον καθεύδων·
καὶ ἐγείρουσιν αὐτὸν καὶ λέγουσιν αὐτῷ Διδάσκαλε, οὐ μέλει σοι ὅτι ἀπολλύμεθα;
“그리고 그(예수)가 선미에서 배게를 베고 자고 있었다.
제자들이 그들 깨워 말했다: 랍비여, 우리가 익사하게 되었는데,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구절은 <요나> 1장 내용과 유사하다. 요나가 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지 않고 욥바로 내려가 타르시스라는 곳으로 떠나는 배에 승선한다. 신은 요나가 탄 배를 전복시키기 위해 큰 폭풍을 내려 배가 거의 전복될 위기에 쳐했다. 그러자 예수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신에게 바다가 잠잠하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를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καὶ διεγερθεὶς ἐπετίμησεν τῷ ἀνέμῳ
καὶ εἶπεν τῇ θαλάσσῃ Σιώπα, πεφίμωσο.
καὶ ἐκόπασεν ὁ ἄνεμος, καὶ ἐγένετο γαλήνη μεγάλη.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 바람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바다에게 말씀하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랬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예수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제자들을 그 바다 폭풍을, 여느 인간들처럼 두려워했지만, 예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위를 상황을 더욱더 그르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분석하여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 예수는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보다도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그 상황을 나름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기-믿음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다:
καὶ εἶπεν αὐτοῖς Τί δειλοί ἐστε οὕτως;
πῶς οὐκ ἔχετε πίστιν;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왜 두려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냐?”
‘믿음’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극복하겠다는 간절한 마음가짐이자 결의다. 그리스어로는 ‘피스티스’pistis지만, 예수가 사용한 아람어로는 ‘아무나’amuna다. ‘아무나’를 아람어-히브리어 상태동사인 ‘아멘’amen에서 파생한 명사다. ‘아멘’은 어떤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간절한 소망이자, 그 소망을 자신의 언행으로 옮기는 용기이자 결의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1633년, 이제 막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점에 그렸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화가’라는 운명을 수용하고, 자신이 이해한 인생을 화폭에 담을 것이다. 나는 믿을 만한 인간인가? 아니 어떤 흔들림도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위엄을 지킬 수 있는 자기-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사진
<갈릴리 바다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1633, 유화, 160cm x 128cm
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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