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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7. (金曜日) “아모르 파티amor fati”

2022.10.7. (金曜日) “아모르 파티amor fati”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자아도취적인 질문이 아니라, 내가 온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바칠만한 일을 현지 지금-여기에서 경주하고 있느냐라고 묻는 경고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대접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친구로 삼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란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한 긴 배움이며 여정이다.

스토아철학의 창시자인 제논Zenon은 그 배움과 깨달음을 ‘아모르 파티’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라틴어 문구를 처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준 사람이다. ‘아모르 파티’를 직역하자면, ‘자신에게 맡겨진 유일한 임무이자 운명을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랑하는 용기’다. ‘파티’는 라틴어 fatum, 영어에서 ‘운명’을 의미하는 fate는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파리’fari의 과거분사 중성형으로 ‘말해진 것; 신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의미다. 그 운명 개인이 조절할 수도 없고 상관할 수도 없는’ 많은 사건들이 구조물이다.

제논에 의하면, 현자는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가지고 수용하고 응전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무시한다. ‘아모르 파티’를 현대인 삶의 모토로 정착시킨 철학자가 있다. 현대문명과 문화를 활짝 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가 1908년에 저술한 <에체 호모Ecce Homo> 10단락에 등장한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에서 ‘아모르 파티’를 언급한다:


“인간이 위대함을 획득하기 위한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입니다.

사람은 어떤 것도 달라지길 바라지 않고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지도 않습니다.

모든 이상주의는 당장 필요한 것앞에서 거짓입니다. 운명을 사랑하십시오!”

니체는 <즐거운 학문> 276단락에서도 아모르 파티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점점 더 만물에 필요한 것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저는 만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 한명이 될것입니다.

아모르 파티, 그것이 나의 사랑입니다.

저는 추한 것들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구를 탓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탓하는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딴데 보는 것이 저의 유일한 부정입니다. 언젠가 제가 항상 ‘긍정’만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알베르 카뮈는 ‘아모르 파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살려는 의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덕입니다.”

나치 점령하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플랭클은 <의미를 찾는 인간>이란 책에서 아모르 파티를 이렇게 간략하게 설명한다:

“당신은 당신 삶에 일어나는 것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황제로서의 임무’를 운명으로 수용하였다. 그런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동유럽 최전선에서 인생의 마지막 16년을 지냈다. 그가 매일 처리해야 할 이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을 것이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나는 인간으로서 일하기 위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일 때문에 내가 태어났고, 그 때문에 내가 세상에 나온 일을 하려는데 아직도 불평을 한단 말인가?”

<명상록> V.1.1a

그런 후에, 인간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사람들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 심지어 목욕이나 식사 거른다고 말한다.

“문제는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다면, 당신의 본성과 당신의 의도를 사랑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택한 전문영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자신들이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본성을 존중하는 것을, 청동조각가가 청동상을, 무용가가 무용술을, 수전노가 돈을, 헛된 이런 자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할 때는, 자신이 마음먹을 일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먹고 자는 일을 포기한다. 당신은 공동체를 위한 행동들이 더 하찮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명상록> V.1.3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운명과 임무를 위해 몰입하는가?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한단 말인가? 예수와 동시대 살았던 랍비 힐렐은 탈무드에서 자기-응시와 자기사랑에 대해 <선조들의 어록> I.14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내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지 혹은 소홀히 여기는지 알기 위한 테스트가 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 이 일에, 자신이 숙고하여 선택하고, 자기-변화를 위한 정교한 포석이며, 그 결과에 상관없이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나는 지금-여기를 사랑하고 있는가?

사진

<무지개>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두보프스코스 (1859-1918)

1892, 유화, Novocherkassk Museum of History of the Don Cos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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