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月曜日; 開天節) “밤나무”

2022.10.3.(月曜日; 開天節) “밤나무”

오늘은 하늘이 열려 세상에 창조되었다는 개천절이다. 하늘은 무한하기 때문에 열릴 수 가 없는데, 누군가 무한한 하늘 이전에 단단한 것으로 닫힌 처음을 상상하였다. 그(녀)는 닫힘이 열림으로 변하는 순간을 개천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가을을 각인시켜주는 거센 비가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다. 코라에서 태풍아이들과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안경을 집에 두고 와, 운전하는데 애를 먹었다.

개천절, 오늘은 요가수련장도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여유를 즐긴다. 사실 여유는 시간이나 환경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오래된 습성을 하나씩 제거할 때, 나에게 조용히 다라오는 신의 선물이다. 아직도 짙은 안개 사이로 보슬비가 제법 내린다. 가만히 하얀 방석에 앉았다. 오늘 하늘이 열리는 날, 무엇을 해야 할까? 한참 앉아 있는데, 샤갈이 오른발로 내 허벅지를 치며 말한다. “뭐하고 있어요? 아침의례하러 가요?” 나는 샤갈, 벨라 그리고 예쁜이를 차에 태우고 산으로 갔다.

농무가 우리가 탄 차를 맞이하며 가른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어제부터 내가 시냇물 줄기를 불렸다. 정말 물은 부지런하다.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할 곳, 갈 수 있는 곳을 향해 무심코 간다. 얼마나 수련을 했다면, 저렇게 무심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까? 한참 걸었다. 산길을 가던 중, 반려견들이 법석을 떤다. 다람쥐가 나타나, 땅에 온통 떨어진 밤을 집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람쥐는 저 높은 참나무 위에서 부리나케 올리가 우리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나고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거 하세요”

산책후 집으로 돌아와 뒷마당과 이어진 숲이 달라 보았다. 다람쥐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부슬비가 나무와 나뭇잎, 땅에 떨어지면서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숲은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그리고 내가 알지못하는 신비한 식물들로 가득하다. 이들이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잠시 인간이 집을 짓고 이들의 터전에 세들어 산다. 한 달 전부터 저 밤나무가 나를 불렀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툭 툭 툭”소리를 내며 나를 자신의 터전으로 초대해왔다.

오늘 아침, 나는 밤나무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다시 운동화를 신고 우비를 갖춰 입었다. 뒷마당 쪽문으로 이어진 안개 낀 숲으로 들어갔다. 저 높은 산에서 시냇물이 졸졸 흘러 내려온다. 오래전 시냇물 위로 누군가 통나무를 놓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나무를 발로 더듬어 건넌다. 외줄 타기를 하는 어릿광대처럼. 심심한 일상에서 기적으로 가득한 자연으로, 습관적인 장소에서 기상천외한 천국으로 진입한다.

20m면 들어갈 수 있는 숲인데, 정색을 하고 처음 들어갔다 반려견들과 들어오면 정신없이 이들을 관리 해야 하지만, 혼자 오니 좋다. 개구리들이 노래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자신의 몸을 환영한다. 나는 바로 나를 초대한 밤나무로 직진하였다. 지난 한 달동안 자신이 태어난 땅에 아낌없이 자신이 지닌 일년 동안 가꾼 밤송이들을 아낌없이 낙하시킨 밤나무를 보고 싶었다. 다람쥐나 다른 동물들이 모두가 가져갔을까? 누가 저 많은 밤송이의 주인인가?

밤송이들은 자신의 입을 벌린채 땅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주위에 짙은 갈색 낙엽들과 잔 나무 가지들, 그리고 파릇파릇 올라오는 잡초들과 함께 장관이다. 자연은, 언제나 최선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차선이나 악으로 대부분 전락한다. 자연이 훌륭한 설치미술가가 되어 이렇게 펼쳐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여기서 눈을 감거나 아이폰을 꺼내 사진으로 담는 것이다. 그곳에 한참 앉아 밤송이들과 빗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한 밤송이가 입을 벌린 채 나를 응시한다. 그 견고하고 까다로운 송이를 천지개벽하는 마음으로 터뜨려 자신의 속을 보여준다. 정확하게 십자모형으로 자신을 활복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수행해온 임무를 완벽하고 빛나는 마호가니 색을 띤 밤의 끝을 살포시 나에게 드러낸다. 그리고 저 나무위에서 빛나는 잎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여 땅에 떨어져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밤송이는 ‘순교’다. 자신의 섭리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묵묵히 행할 뿐이다. 우주는 그런 순교자들이 만들어낸 질서다. 순교를 종교적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헌신하는 일 뿐만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순환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우직하게 완수하려는 허심虛心이다. 저 밤송이처럼,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싶은 날이다.

칠레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4)은 땅에 떨어진 밤송이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Ode To a Chestnut on the Ground

땅위 밤송이를 위한 노래

Pablo Neruda

파블로 네루다

From bristly foliage you fell complete, polished wood, gleaming mahogany, as perfect as a violin newly born of the treetops, that falling offers its sealed-in gifts, the hidden sweetness that grew in secret amid birds and leaves, a model of form, kin to wood and flour, an oval instrument that holds within it intact delight, an edible rose.

뻣뻣한 잎사귀에서

당신은

나무 꼭대기에서 방금 태어난

바이올린처럼,

완벽하고 세련된 나무인 빛나는 마호가니입니다.

당신의 낙하는 은닉된 달콤함을 간직한

봉인된 선물들을 선사합니다.

그것들은 새와 나뭇잎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났습니다.

나무와 분말과 유사한 아름다움의 전형이며

달걀모양으로 악기로

그 안에 본연의 기쁨과 먹을 수 있는 장미를 지녔습니다.

In the heights you abandoned the sea-urchin burr that parted its spines in the light of the chestnut tree; through that slit you glimpsed the world, birds bursting with syllables, starry dew below, the heads of boys and girls, grasses stirring restlessly, smoke rising, rising.

당신은 저 높은 곳에서

밤나무의 빛으로

자신의 가시를 갈라놓은

그 성게의 껍질을 버렸습니다.

그 절단을 통해

당신은 세상을 힐끗 보았고

새들은

놀라 음절로 놀라는 소리를 내고

당신 아래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슬이 맺히고,

소년과 소녀의 머리들은

쉴새 없이 꿈틀거리며

안개도 계속 피어오릅니다.

You made your decision, chestnut, and leaped to earth, burnished and ready, firm and smooth as the small breasts of the islands of America.

당신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오, 밤이여! 그리고 땅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당신은 반짝반짝 빛나고 의연하고

견고하며 부드럽습니다.

마치 아메리카대륙의 작은 가슴처럼 생긴 섬과 같습니다.

You fell, you struck the ground, but nothing happened, the grass still stirred, the old chestnut sighed with the mouths of a forest of trees, a red leaf of autumn fell, resolutely, the hours marched on across the earth.

당신은 떨어져

땅에 쳐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풀잎은 아직 곁에서 떨고 있고, 그 오래된

밤은 숲속 나무들에게

입을 벌려 한숨 짓습니다.

Because you are only a seed, chestnut tree, autumn, earth, water, heights, silence prepared the germ, the floury density, the maternal eyelids that buried will again open toward the heights the simple majesty of foliage, the dark damp plan of new roots, the ancient but new dimensions of another chestnut tree in the earth.

왜냐하면 당신이

유일한

씨앗.

밤나무, 가을, 땅,

물, 높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보석, 분말의 농도의 준비하였습니다.

땅에 매장된 어머니의 눈꺼풀은

높은 장소,

간결한 나뭇잎의 위용,

새로운 뿌리의 어두운 축축한 계획,

이 땅에 오래되고 새로운 차원의

또 다른 밤나무를 향해 열릴것입니다.

사진

<밤송이를 수놓는 뒷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