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0. (月曜日) “Thus did Job continually”

2022.10.10. (月曜日) “Thus did Job continually

(<욥기> 1장 1-5절)

어제, 10월 9일 일요일 저녁에 인터넷 모집공고를 통해 선발한 20여 분과 <욥기>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0분정도는 이번에 처음 뵙는 분들이다. 화가, 연출가, 의사, 교수, 배우, 정치인, 기업인, 직장인, 학생, 신부, 목사, 은퇴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다. 제주도, 평택, 화성, 원주...다양한 지역에서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 특히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욥과 같은 고통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들로, <욥기> 공부를 통해 삶의 실마리를 잡으시려는 분들이다.

저마다 삶에 대한 회한과 보람을 간직한 채, <욥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망원경으로 멀리 보고 싶고, 변신하고 싶은 분들일것이다. <욥기>는 고전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언젠가 원전에서 꼭 번역하고 싶은 책이었다. <욥기>는 지금까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원어를 알아도, 정성을 쏟아도, 다가가면, 저만치 도망하곤 했다. 내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욥기>는 마치 마라톤이라는 장거리경주를 뛸 선수를 선별하는 심판관과 같았다. 대부분은, 철저한 준비를 거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간절해도, 아무리 완주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도, 마의 구간인 20km와 30km 구간을 넘지 못하고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포기하고 재도전하여,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한 자라야, 출전자격이 주어진다. 완주完走는 고통, 좌절, 아픔이 가져다 주는 환희이기 때문이다.

이 마라톤과 같은 경전, <욥기>는 수많은 화가, 철학자, 신학자, 작곡자들에 영감을 주었다. 저마다 엉킨 실타래와 같은 복잡한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실마리를 발견하여 스스로 한 올 한 올 풀게 도와주는 인생의 도우미다. 이전에 고백한 것처럼, <욥기>는 단순히 히브리어 문법을 안다고 해서, 풀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고전과 경전, 특히 경전은 인생의 경험이 쌓여 혜안이 생긴 후, 그 혜안으로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맑은 마음이 있을 때, 그전에 한 번도 푼 적이 없는 녹슨 마음의 자물통을 풀려고 시도하는 나만의 열쇠다. 그 자물통을 여는 열쇠는 모든 것들 푸는 마술 열쇠도 아니고 타인의 자물통을 열었다는 이웃의 열쇠도 아니다. 각자가 자물통에 쌓인 녹을 눈에서 벗겨내고, 자신에게 알맞은 열쇠를 조금씩 조각하는 미완의 열쇠다.

<욥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원전에서 내 나름대로 읽는 것’이다. 히브리 문장을 놓고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의 의미를 찾아, 그 숨겨진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초대교부들이 말한, 축자적인 의미, 은유적인 의미, 도덕적인 의미, 그리고 종말론적인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써 볼 것이다. 축자적인 의미는, 그 단어가 지닌 의미를 있는 그대로 찾으려는 시도다. 은유적인 의미는, 그 단어가 구약성서, 유대 문헌, 신약성서 안에서 사용한 유사한 경우를 찾아, 그 심층적인 의미, 심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축출하려는 시도다. 도덕적인 의미는, 그 글을 읽고 의미를 알아차린 독자가,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언행으로 전환하려는 애씀이다. 종말론적인 의미는, 인생이란 항해에서 자신만의 해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해도가 나를 내가 원하는 항구에 도착시킬 유일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내가 <욥기> 번역에 사용할 방식은 원전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 단어에 담긴 의미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의미 파악은 현재 내 삶의 정황에 따른 것이고, 이 파악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 번역은 가변적이며 불완전하지만, 동시에 지금 시점에서 필연적이고 완벽하다. 다음은 <욥기>는 서문의 시작이다. 서문 1장과 2장은 3장부터 시작하는 <욥기> 본문에 대한 배경설명이다. 이 설명은 시 형식이 아닌 산문형식으로 기록되었다. 아마도 누군가, 후에 편집하면서 붙여놓은 부연설명같다. 하여튼, 욥기의 시작은 욥이 누구인지, 그리고 천상회의 장면에 야훼 신과 신들, 그리고 신들 가운데 사탄을 등장시킨다. 다음은 <욥기> 제1장 1-5절의 히브리어 원전, 직역, 그리고 약간의 설명이다.

<욥기> 제1장 1-5절: 욥의 정체

אִ֛ישׁ הָיָ֥ה בְאֶֽרֶץ־ע֖וּץ אִיֹּ֣וב שְׁמֹ֑ו וְהָיָ֣ה ׀ הָאִ֣ישׁ הַה֗וּא תָּ֧ם וְיָשָׁ֛ר וִירֵ֥א אֱלֹהִ֖ים וְסָ֥ר מֵרָֽע׃

“한 사람이 우쯔라는 땅에 있었고 그의 이름은 욥이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였다.”

(의역)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쯔라는 땅에 있었고 그의 이름은 욥이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온전穩全하고 타인에게 정직正直하였다. 그는 온전하여, 하느님 만드신 자연, 생명을 보고 하느님의 흔적을 알아차려 신비와 경외를 일상에서 경험하고, 정직하여 타인의 입장에서 악취가 나는 언행을 스스로 언제나 삼갔다.”

*‘욥’Iyyôb’: 욥의 이름은 다음 두 가지 어원에서 추적할 수 있다. 하나는 ‘신과 대척점에 있는 적’ōyēb’이란 뜻이고 다른 의미는 ‘항상 신 앞으로 돌아오는(아랍어 동사 ’āba ‘오다’) 자’란 뜻이다. 그는 신에게 충성하는 자이자. 신에 대항하는 적이다. 그러나 결국 신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자다.

*‘온전하고 정직하다’: 이 표현은 하느님도 인정한 완벽한 인간, 신의 형상을 자신의 언행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스 문헌에 등장하는 영웅 ‘칼로스 카가쓰소kalos kāgathos/καλὸς κἀγαθό’와 같이 이상적인 인간을 의미하는 문구다. 욥은 신도 자랑할만한 인물이다.

2. וַיִּוָּ֥לְדוּ לֹ֛ו שִׁבְעָ֥ה בָנִ֖ים וְשָׁלֹ֥ושׁ בָּנֹֽות׃

“일곱 아들과 세 딸이 그를 통해 태어났다.”

(의역)

“욥은 자신의 신실함으로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부인을 통해 얻게 되었다.”

*일곱: 성서에서 일곱자녀는 축복의 상징이다. <사무엘하> 2.5와 <룻기> 4.15에 일곱아들을 신의 축복으로 언급한다. 고대 유목 사회에서 딸은 시집으로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들보다 그 수가 적어야 한다. 저자는 완전수 10을 구성하기 위해 딸의 수를 셋으로 정했을 것이다.

3. וַיְהִ֣י מִ֠קְנֵהוּ שִֽׁבְעַ֨ת אַלְפֵי־צֹ֜אן וּשְׁלֹ֧שֶׁת אַלְפֵ֣י גְמַלִּ֗ים וַחֲמֵ֨שׁ מֵאֹ֤ות צֶֽמֶד־בָּקָר֙ וַחֲמֵ֣שׁ מֵאֹ֣ות אֲתֹונֹ֔ות וַעֲבֻדָּ֖ה רַבָּ֣ה מְאֹ֑ד

וַיְהִי֙ הָאִ֣ישׁ הַה֔וּא גָּדֹ֖ול מִכָּל־בְּנֵי־קֶֽדֶם׃

“그의 재산은 칠천마리 양, 삼천마리 낙타, 오백마리 겨리 황소(천마리 황소), 오백마리 암나귀, 많은 종들이다. 그 사람은 동방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부자였다.”

*‘겨리’ 혹은 ‘짝’을 의미하는 ‘제메드 צֶֽמֶד’라는 단어는 둘을 의미하므로, ‘천마리 황소’다.

4וְהָלְכ֤וּ בָנָיו֙ וְעָשׂ֣וּ מִשְׁתֶּ֔ה בֵּ֖ית אִ֣ישׁ יוֹמ֑וֹ וְשָׁלְח֗וּ וְקָֽרְאוּ֙ לִשְׁלֹ֣שֶׁת אַחְיֹתֵיהֶ֔ם לֶאֱכֹ֥ל וְלִשְׁתּ֖וֹת עִמָּהֶֽם׃

“자, 그의 아들들은, 각자 자신에게 할당된 날에 잔치를 벌이곤 했다. 그들은 종들을 자신들의 세 여동생에게 보내,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곤 했다.”

*‘자신에게 할당된 날’: 흔희 ‘생일’과 같이 상서로운 날을 의미하나, 위 문장에서는 일곱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할당된 날에 먹고 마시는 잔치를 준비하는 호스트가 되는 날이다.

*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은 동사다. ‘가다’ ‘(잔치를) 베풀다’ ‘보내다’ 그리고 ‘초대하다’가 모두 접속사 wə다음에 완료형을 사용하여, 시제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진행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욥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돈으로 먹고 마시는 일을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들들의 도덕적 해이解弛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속사wə와 히브리어 동사 완료형을 사용하였다.

וַיְהִ֡י כִּ֣י הִקִּיפֽוּ֩ יְמֵ֨י הַמִּשְׁתֶּ֜ה וַיִּשְׁלַ֧ח אִיֹּ֣וב וַֽיְקַדְּשֵׁ֗ם וְהִשְׁכִּ֣ים בַּבֹּקֶר֮ וְהֶעֱלָ֣ה עֹלֹות֮ מִסְפַּ֣ר כֻּלָּם֒ כִּ֚י אָמַ֣ר אִיֹּ֔וב אוּלַי֙ חָטְא֣וּ בָנַ֔י וּבֵרֲכ֥וּ אֱלֹהִ֖ים בִּלְבָבָ֑ם כָּ֛כָה יַעֲשֶׂ֥ה אִיֹּ֖וב כָּל־הַיָּמִֽים׃ פ

5. “각자 집에서 벌이는 잔치가 모두 돌았을 때, 욥은 그들을 집에 보내고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대신하여 제사를 드렸다.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들의 숫자대로 번제를 드렸다. 왜냐하면, 욥은 “혹시 그들이 죄를 지어 속으로 하느님을 욕하지 않았을까(바락)” 생각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이와 같이 하였다.”

*번제: 욥은 자녀들이 잔치만 즐기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그들을 혼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들의 숫자대로 번제를 드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라는 표현은 ‘어깨’라는 의미의 히브리 명사 ‘세켐’에서 왔다. 유목민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당나귀나 낙타의 ‘어깨’ 위에 짐을 올린다. ‘어깨’를 의미한 ‘세켐’을 소위 히필동사Hiphil verb로 바꿔 ‘히스켐’(וְהִשְׁכִּ֣ים)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을 하다’라는 의미로 거의 조동사 역할을 한다. 욥은 아들들이 혹시라도 죄를 지었을까 노심초사하여, 아이들을 무조건 사랑하는 부모처럼, 그들의 숫자대로 양을 잡아 완전 연소시키는 번제를 드린다. 천하의 욥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자녀교육만큼은 실패하였다.

*’죄를 짓다’: ‘죄를 짓다’란 의미를 지닌 ‘하타’라는 동사의 근본적인 의미는 궁수가 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다’이다. 궁수가 명중시키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과녁을 정하지 않아서, 시위를 충분히 당기지 못해서, 시위를 놓는 순간, 무아상태로 진입하지 못해서... 인생에 있어서 근본적인 죄란, 자신이 도달해야할 목적지와 그 방법을 상실한 무식이자 나태다. 욥의 자녀들이 바로 그런 무기력에 빠져있다.

*욕하다(히브리어 바락‘): 목적어가 신일 때, 바락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그 번역에 있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락‘이란 히브리어 동사는 문맥에 따라 ’신을 찬양하다; 신에게 복을 빌다‘라는 의미와 ’신을 저주하다; 신을 욕하다‘란 의미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자들은 ’신을 저주하다‘ 혹은 ’신에게 욕하다‘라는 표현이 유대 신앙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위 ’완복 어법‘euphemistic expression으로 부정적인 동사를 ’축복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바락‘으로 대치하였다고 간단히 설명한다. 나는 이 해석보다는 복과 욕, 행과 불행을 넘어서는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상정하고, 그 의미를 추적하고 싶다. 왜 욥기 저자는 ’바락‘이란 동사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의미를 전달했을까?

*“그는 계속해서 이와 같이 했다”: 욥은 자신이 아는 규범과 교리안에서 신을 섬겼다. 이 문장은 욥이 습관대로 매일매일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앞으로 욥이 시험을 당하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문장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영적으로 깨어난 자라할지라도, 자신을 매일 매일 혁신하지않고 하던 대로 지속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구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Illustrations of the Book of Job에서 이 장면에 해당한 그림에서 그가 가장 두드러지게 적은 문구다. Thus did Job continually.

사진

<Thus did Job continually>

영국 화가-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