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土曜日) “요가라는 선물膳物”


지난 8월 8일, 많은 비가 내렸다. 나는 그날 한 공부모임 구성원들을 더코라에 저녁에 초대하여 강의하려던 참이었다. 더코라는 지하 2층에 위치하지만, 성큰sunken이라 저 높은 하늘에서 선물로 주는 빛줄기가 강림한다. 강의 시작 전, 손님들과 회의실에 앉아 지난 수년동안 본적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거센 물 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 내렸다. 그 광경이 기이했다.

그 날은 의미심장한 날이었다. 마침, 내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정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60년은 부모와 사회가 마련해준 세상 안에서 달려왔지만, 앞으로 얼마더 살지는 모르지만, 화살처럼 사라질 세월을 미리 아쉬워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차곡차곡하면서 실천하겠다고 결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내 심정은 강남 한복판에 침수된 자동차 위에 앉는 그 남자와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전의 삶은 이 지대가 낮은 강남과 같았다. 모든 것을 축적하려고만 하지, 충분히 흘려보내는 통로通路를 만들지 않았다. 며칠 동안 한참 고민하다, 통로를 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제1권 ‘삼매품’을 탈고하고 오래전에 넘겼다. 출간을 기다리면서, 제2권 ‘훈련품’을 번역하면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이 책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훈련품’이 어느날, 나에게 속삭인다: “네 호흡과 걸음걸이가 엉망인데,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

요가는 신체, 정신, 그리고 영혼을 구분하지 않는다. 요가수련자는, 신체 훈련의 경지에 오르려면, 정신을 다스려야 하고, 더 나아가 영혼 수련의 표현인 자비를 실천한다. 이 세가지가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돌아간다. 신체 훈련의 정도는 그 사람의 수련장에서 하는 언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행동거지가 리트머스다. 신체 훈련이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지속 될 수 없는 허망한 으스대기로 전락할 수 있다. 일상의 행위가, 이제 그의 신체를 다른 단계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더 나이가, 신체와 정신 훈련의 성배는, 그가 주위 사람에게 겸손한 말과 우아한 친절, 그리고 그가 남몰래 행하는 선행이다. 나는 오래전 학교에서 요가 동작을 알려주는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는 수동적인 요가를 수련한 적이 있다. 이제 그 강사가 없으니, 요가를 통해 얻는 호흡, 손, 발, 그리고 몸동작, 그리고 표정이 이기적인 인간으로 퇴화되어버렸다.

나도 단체가 <신생>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삶을 위해, 내 마음 속에 꺼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삶의 불꽃을 지피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하였다. 아슈탕가 요가수련을 하기로. 아쉬탕가 요가수련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매 순간 스스로 느끼게 하고, 그 완벽한 아사나를 도전하게 하고 서서히 성취하게 만든 훈련이다. 완벽이란,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을 시키는 요가 수련장을 한참 조사하였다. 내가 사는 가평에서 신사동 더코라로 가는 선상에 있는 수련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내, 그리고 운명적으로 남양주에 위치한 요가 수련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쉬탕가제니요가 수련원(http://ashtangajennyyoga.com/)이다. 이곳에서는 인도 마이솔 지역에서 파타비 조이스가 체계화한 전통수련을 고집하고 있다. 수련자가 그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가져온 요가 매트 위에서 자신의 몸이 얼마나 뻣뻣한지를 확인하고 수련하는 훈련장이다. 그리고 수련자는 아사나를 통해 조금씩 자신의 몸을 어린아이처럼 유연하게 만든다.

이지은 원장님에게 문자를 남겼다. “요가수련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8월 16일 화요일, 오전 11시에 아쉬탕가 요가훈련을 시작하였다. 일단 3개월 훈련에 등록하였다. 요가훈련을 하면서 내가 지금끼지 지켜온 스케줄을 전면 개편해야 했다. 특히 오전이 바빠졌다. 이전에는 새벽에 경전 읽기와 묵상, 반려견들과 산책, 집안 청소, 그리고 매일묵상 일기쓰기였다. 이제는 요가수련이 윌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11시에서 12시반까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새로운 삶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매일묵상 일기쓰기를 일단 보류하고 요가수련에 몰입하기로 작정하였다. 집에서 남양주 평내동에 있는 아쉬탕가제니요가 수련장까지 거리는 40km다. 요가라는 선물은 나에게 매일 왕복 80km 거의 2시간 자동차 운전과, 2시간을 엄격한 훈련을 요구한다.

한 달 반이 지났다. EBS 메소포타미아 인장 특강 촬영을 위해 부득이하게 2번 빠졌다. 지금은 이 수련장이 나의 예루살렘이자 메카가 되었다. 수련장에 들어서면 선배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아사나 삼매경에 빠져있다. 내가 그 어느 장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거룩한 경내境內다. 그들의 몸동작을 보면, 그들의 일상도 훌륭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요즘은 조용히 그리고 친절하게 올바른 몸동작을 알려주는 이지은원장이 나의 구루다. 요가수련이 나를 찾아온 신의 선물이다. 아침이면 기어코 나를 찾아오는 태양이 되었다.

사진

<나를 찾아오는 빛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