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8. (土曜日) “이제야 비로소 내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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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고라니를 위한 시주施主>

2022.1.8. (土曜日) “이제야 비로소 내가 되었네!”

우리는 항상 고라니가 산비탈에 만들어 놓은 오솔길로 산책한다. 야산으로 들어가, 어김없이 산비탈에 희미하게 나있는 그 길에 올라선다. 고나니가 수십년, 아니 수백년동안 다니면 일궈놓은 길을 우리가 침범한지 2달이 되었다. 낙엽으로 뒤 덮여 잘 모이지 않지만, 가만히 보면, 분명 고리니 길이다. 그 길로 들어선 우리를 보고, 산비탈에서 고라니가 빤히 쳐다본다. 우리에게 산책길을 마련해 준 고라니를 위해, 그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사려를 놓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침입을 용서해 달리는 뇌물이다.

우리가 낙엽을 밞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야산은 침묵이자, 웅변이다. 자연의 정적을 통해, 내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환희와 희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봉은 침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Conversation enriches the understanding, but solitude is the school of genius and the uniformity of a work denotes the hand of a single artist. “대화는 이해를 증진합니다. 그러나 침묵은 천재를 양성하는 학교입니다. 작품의 일관성은 유일한 예술가의 손맛을 드러냅니다.”

인생에서의 최선은 혼자 있을 때, 슬며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독이, 외로움이나 우울이 아니라, 위안과 희망이 될 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기 시작한다, 고독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되길 기다리는 천재성의 소리를 들리게 하고, 삶을 그 목소리에 복종하도록 요구한다. 이 ‘기름진 고독fertile solitude’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씨앗이다.

며칠 전 미국의 시인인 메이 사튼(1912-1995)의 시를 읽기 시작하였다. 신은 그녀를 통해, 우리 모두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기쁨을 알려주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되었네>라는 시에서 고독과 고독에서 발견한 자기-자신을 이렇게 노래한다.

Now I Become Myself

May Sarton (1912-1995)

from <Collected Poems 1930-1993>

Now I become myself. It's taken

Time, many years and places;

I have been dissolved and shaken,

Worn other people's faces,

Run madly, as if Time were there,

Terribly old, crying a warning,

‘Hurry, you will be dead before-’

(What? Before you reach the morning?

Or the end of the poem is clear?

Or love safe in the walled city?)

이제 비로소 내가 되었네.

시간이 걸렸어, 여러 해, 여러 곳에서 방황했지.

이리저리 녹아 없어지고 흩어지니

내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네.

마치 시간時間이 그 곳에 서 있듯이,

끔찍하게 늙은 시간이 미친 듯이 달려와 울면서 경고하네.

‘서둘러, 당신 뭐 전에 죽을 거야’

(뭐라고! 아침이 오기전에?

아니면 이 시를 마치기 전에?

아니면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에서 행복한 사랑을 나누기 전에?)

Now to stand still, to be here,

Feel my own weight and density!

The black shadow on the paper

Is my hand; the shadow of a word

As thought shapes the shaper

Falls heavy on the page, is heard.

All fuses now, falls into place

From wish to action, word to silence,

My work, my love, my time, my face

Gathered into one intense

Gesture of growing like a plant.

이제 나 고요하게 서 있네. 나 여기 있네.

내 몸무게와 내 밀도를 느끼네!

종이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내 손의 그림자;

생각이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듯이,

단어의 그림자가 종위위에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네.

모든 것이 지금只今으로 용해되어 떨어져

바램이 행동으로, 단어가 침묵으로 자리를 잡네.

나의 일, 나의 사랑, 나의 시간, 나의 얼굴이

작은 나무처럼 자라나는 강렬한 몸짓으로 모아졌네.

As slowly as the ripening fruit

Fertile, detached, and always spent,

Falls but does not exhaust the root,

So all the poem is, can give,

Grows in me to become the song,

Made so and rooted by love.

Now there is time and Time is young.

O, in this single hour I live

All of myself and do not move.

I, the pursued, who madly ran,

Stand still, stand still, and stop the sun!

잘 읽은 열매가 천천히

풍성해져, 나무에서 분리되어 말라비틀어져도,

떨어졌지만 그 뿌리는 시들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시는 내 안에

존재하고 부여하고 자라나 노래가 된다네.

사랑으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뿌리를 내린다네.

지금에 시간이 존재하고 그 시간은 젊다.

오, 이 고독한 시간 나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고 흔들리지 않는다네.

나, 무언가에 쫒기던 나, 미친듯이 달리던 나,

고요하게 서 있네. 고요하게 서 있네. 그리고 태양을 멈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