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5. (水曜日) “국가国家라는 우상偶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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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 경례하는 사는 대중가운데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저항한다>

13 June 1936

2022.1.5. (水曜日) “국가国家라는 우상偶像”

국민은 개인인가 아니면 국가의 구성원인가? 나는 나인가 아니면 우리의 일부인가? 나라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개인이 국민이란 이름으로 구성한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국가의 상위개념이고 개인이 그것을 구성하는 퍼즐의 한 조각이라면, 그런 공동체는 전체주의다. 개체를 무시하고 전체라는 추상을 강조하는 억지체계다. 개인은 국가의 노예이며 꼭두각시인가? 국가가 원하는 것이 선이고, 개인이 원하는 것은 악인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라는 여성이 상징하는 개인의 양심이 테베의 권력자인 크레온이 말하는 국가의 법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19세, 근대국가의 등장이후, 국가는 점점 소수 권력자들의 장난감인 전체주의로 변질되었다. 왕정은 사라졌지만, 왕과 사제 노릇을 하는 ‘국가권력’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선거’라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구성원들을 세뇌시켜, 대중이 원하는 공약을 남발하여, 권력을 잡는다.

니체는 19세기 말, 이 괴물의 등장을 보았다. 그는 국가를 ‘새로운 우상’이라고 정의한다. 우상이란, 누군가 전략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성불가침적인 권위를 지닌 존재라고 여겨지는 허상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관하여”(VOM NEUEN GÖTZEN)라는 제목을 글을 쓴다. 그의 통찰은 국가에 대한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음은 그 첫 부분이다.

IRGENDWO gibt es noch Völker und Herden, doch nicht bei uns, meine Brüder: da gibt es Staaten. Staat? Was ist das? Wohlan! Jetzt tut mir die Ohren auf, denn jetzt sage ich euch mein Wort vom Tode der Völker. Staat heißt das kälteste aller kalten Ungeheuer. Kalt lügt es auch; und diese Lüge kriecht aus seinem Munde: “Ich, der Staat, bin das Volk.” Lüge ist’s! Schaffende waren es, die schufen die Völker und hängten einen Glauben und eine Liebe über sie hin: also dienten sie dem Leben. Vernichter sind es, die stellen Fallen auf für viele und heißen sie Staat: sie hängen ein Schwert und hundert Begierden über sie hin.

“아직도 사방에 사람들과 짐승과 같은 떼들이 있습니다. 나의 형제여! 우리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국가國家들’이 있습니다. 국가라고? 국가가 무엇입니까? 그러면, 지금 여러분의 귀를 빌려주십시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국민의 죽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국가는 모든 냉정한 괴물들 중 가장 냉정한 괴물입니다. 국가는 또한 냉정하게 거짓말합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이 그의 입으로부터 기어나옵니다. ‘나, 국가가 국민이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창조자는 국민을 만든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위에 믿음과 사랑을 원칙으로 걸어둡니다. 그럼으로 그들은 국민의 생명을 보전합니다. 그러나 파괴자는 많은 이들에게 덫이며, 그 덫을 국가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칼을 걸어놓고 백가지 자신들의 욕망들을 그들위해 올려놓습니다.”

Wo es noch Volk gibt, da versteht es den Staat nicht und haßt ihn als bösen Blick und Sünde an Sitten und Rechten. Dieses Zeichen gebe ich euch: jedes Volk spricht seine Zunge des Guten und Bösen: die versteht der Nachbar nicht. Seine Sprache erfand es sich in Sitten und Rechten. Aber der Staat lügt in allen Zungen der Guten und Bösen; und was er auch redet, er lügt – und was er auch hat, gestohlen hat er’s. Falsch ist alles an ihm; mit gestohlenen Zähnen beißt er, der Bissige. Falsch sind selbst seine Eingeweide.

“국민이 아직 존재하는 곳에선, 국민이 국가를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사악한 눈을 가진 혐오이며 법과 관습에 대항하는 죄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표식을 줍니다. 이 국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선과 악이라는 언어를 말합니다. 그의 이웃은 이 표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언어는 자기 자신을 위해 법과 관습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선과 악이라는 모든 언어들을 동원하여 거짓말합니다. 국가가 무엇을 말하던지,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가진 것은, 누군가로부터 훔친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훔친 이빨로, 무는 존재인 국가는 모든 것을 뭅니다. 심지어 그 오장육부도 거짓입니다.”

심리학자 융도, 니체와 유사하게 경고한다. 융은 국가를 신흥종교라고 칭한다. 국가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여 사회주의 독재가 종교가 되고 국가를 숭배하는 것이 예배가 되었다. 20세기 전체주의의 탄생이후,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84>애서 예언한 내용을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전체주의가 단순히 정치체계라고 여긴다. 전체주의는 광신적인 종교로 놀라운 속도로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안녕을 저해하는 가장 위협적인 종교다. 나치스 독일을 도망쳐 나온, 독일 정치학자 발레마르 구리안(Waldemar Gurian, 1902-1954)은 <전체주의 국가>라는 저서에서 전체주의를 종교운동으로 규정한다. 전체주의자들은 정치-사회적인 기관을 변혁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바꿔치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기성종교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예수의 재림과 같은 미래에 다가올 새천년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전체주의도 마찬가지다. 이 종교들에서는 신이나 예언자가, 세상을 구원하고 개혁하지만, 전체주의에서는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국가주도아래, 황금시대가 열린다고 설교한다. 20세기 그리스도교가 점점 쇠퇴하면서, 현대의 소수 지식인들은 국가라고 불리는 전체주의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창조하여, 그 공백을 채웠다. 전체주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정부가 아니라, 대중에게 미래에서 더 나아 질것이라는 망상을 심어주는 운동이다.

과거의 전체주의는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한, 나치스의 아리안 백호주의, 혹은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등주의를 내세우는 공산주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체주의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 이 전체주의는 인테넷을 통해, 그 사용자들의 성향과 본성을 개조하려는 은근한 괴물이다.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고 질병과 죽음이라는 생물학 적인 한계를 초월하려 꿈꾼다. 이 전체주의는 몇몇 IT를 기반으로 인류의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장악하려는 새로운 유토피아다. 경제학자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에서 지상천국을 만들려는 시도는 반드시 지옥을 창출한다고 예언한다.

종교는 종말과 천국도래에 대한 열망을 이용하여 대중을 유인한 것처럼, 전체주의 국가들은 유토피아 열망을 이용하여 대중을 설득한다. 대중은 무차별 감시, 검열, 감금,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방해하는 존재들을 SNS를 동원하여 악마화한다. 전체주의 이상을 지닌 정치인들은 이 땅을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설교한다. 역사적으로 그런 말을 일삼은 자들은 최악의 독재자들이었다.

전체주의는 자신이 약속한 것을 결코 지킬 수도 없고 지킬 능력도 없는 종교다. 전지전능한 국가라는 신전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지상의 지옥을 만든다. 국가가 권력을 쥐면 쥘수록, 국가의 관료들은 더 타락하고 양떼처럼 그들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대중은 혼란과 지옥에 빠져든다. 이 새로운 종교는, IT로 기반으로 한 오늘날 이미 도래하여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 새로운 권력을 쥔 정치가들과 IT권력들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고 성토하며, 대중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그들이 강요한 새로운 질서에 맞추기를 강요한다. 그들은 대중이란 양떼를 거느리는 목자가 되고 싶다.

개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미디어를 통해 계속 나와 동일한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기 만드는 대중만 남았다. 다양한 취미는 자취를 감추고, 하나에 열광하는 양떼들만 몰려다닌다. 우리는 어떻게 개인으로 살아남아,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다양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이 악을 막을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핸드폰과 미디어를 통해 전체주의적인 성향의 세계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SNS를 통해 집단린치를 가해 차별하는데 익숙하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체주의적인 정치인들이나 관료라는 ‘사제계급’들을 희화하고 모욕할 수 있어야한다. 혹은 SNS공간을 장악한 새로운 권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들의 말로 떠드는 선전과 거짓말들이 지닌 위선과 불합리를 자신의 글이나 말을 통해 지적해야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마음대로 개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술, 예술, 유튜브, 책, 물건들을 제작해야한다. 이것들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를 알리고 영감을 주고 전파해야한다. 단테가 말한대로 최악의 인간은 자신의 개성을 모르고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으며, 누구의 칭찬도 욕도 받은 적이 없는 미지근한 사람이다. 나는 어떤 우상을 무의식적으로 추종하고 있는가? 나는 개인인가? 아니면 대중인가? 모든 사람들이 ‘예’라고 할 때,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