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추방자 단테>
도메니코 페테리니 (1822-1891)
유화, 1860
Galleria d'arte moderna di Firenze
2022.1.4. (火曜日) “단테 <신곡> 유튜브를 시작하며”
2022년 대한민국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리더로 뽑을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재 좌표를 알려주고,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노래할 시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시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술잔을 기울이며 감상에 젖어 넋두리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각자의 최선을 깨워줄 사람이다. 대한민국 선진화의 발목을 잡는 것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정치·경제적인 위험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망령인 이념싸움, 계급투쟁, 남녀차별, 그리고 출신 차별에 익숙해져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모르는 무식이며, 우리를 중독되어 노예로 만드는 미디어와 SNS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입장권이 필요하다. 그 입장권이란 자기 성찰, 반성, 개선, 경청, 배려, 자비, 신념 그리고 희망과 같은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보통사람이나 말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시급한 문제들을 푸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 그러나 선진적인 소수는 그 문제를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대담하게 실천한다. 시인은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날 우리를 다독여 다른 차원으로 진입시키는 창조적 소수다.
인류는 기원전 12세기에 청동문화에서 철기문화로 진입했다. 철기문화는 도시 문명과 농경문화의 혁명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철기문화로 무장한 일련의 무리가 세계사의 판도를 바꿨다. 시인들은 이 급변하는 정치사회적인 혼란 가운데 새로운 희망의 문법을 찾는 노래를 불렀다. 구전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인도 힌두교 경전인 ‘리그베다’, 이란 조로아스터 경전인 ‘아베스타’, 소아시아에 위치한 트로이 함락을 노래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그리고 국제적인 혼란을 틈타 강대국 이집트를 탈출한 노예들의 노래 ‘출애굽기’에 등장한다. 이 노래들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문자로 기록돼 ‘경전’이 됐다.
유럽의 14세기는 혼란기다. 그 이전 천년 동안 유럽사회를 유지했던 봉건제도가 거의 허물어졌다. 단테는 신곡에 평소 즐겨 읽던 신화·성서·고백론 등에서 차용한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담았다 인류는 희망을 노래할 시인을 기다렸다. 중세에 마침표를 찍고 근세를 시작할 절명의 순간에 변곡점을 찍은 위대한 개인이 등장했다.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됐다. 바로 ‘단테’(1265~1321년)다.
단테의 본명은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다. 후대 사람들은 ‘두란테’를 줄여 ‘단테’라고 부른다. 그는 중세가 끝날 무렵에 등장해 ‘코메디아(Commedia)’라고 불리는 시를 썼다. 동시대 소설가인 지오반니 보카치오(1313~1375년)는 이 책의 중요성을 깨닫고 ‘디비나(Divina)’라는 형용사를 앞에 붙였다. ‘신적인, 하늘이 내려준’이란 뜻이다. 중세 이탈리아인들이 이 책을 ‘라 디비나 코메디아(La Divina Commedia)’라고 불렀다. 이 책이 동양에 전달돼 ‘신곡(神曲)’이란 애매한 이름으로 불렸다.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보카치오의 기록에 의하면 ‘시인(단테)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만년에 그는 허리가 꾸부정한 채로 성큼성큼 걸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고상한 옷을 입었다. 얼굴은 길고 매부리코에 눈은 큰 편이다. 그의 아래턱은 크고 아래 입술은 튀어나왔다. 얼굴은 갈색이며 머리숱과 수염은 빽빽하고 검고 곱슬이다. 그는 항상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우울한 것처럼 보였다’고 돼 있다. 단테는 스스로에게 몰입된 인간이다.
중세시대에 인간은 누구가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 하는 허약하고 불쌍한 존재였다. 보카치오는 단테를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되는 인간’, 즉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사회가 요구한 계급에 순응해 옷을 입지 않고,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장 멋진 옷을 입었다. 그는 개인이었다. 단테는 중세기가 끝날 무렵인 1321년, 무려 1만4000행이나 되는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저술했다. 영국 시인 T.S.엘리엇은 ‘신곡’을 인류가 남긴 최고의 시로, 단테를 ‘최고의 시인(Sommo Poeta)’으로 찬양한다.
단테의 신곡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기록된 첫 번째 작품이다. 그는 이 대담한 행위를 통해 ‘이탈리아’라는 정체성을 만들었다.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문법을 창조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는 대부분의 소설가가 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수백 페이지를 할애하지만, 단테는 20~30행으로 인물의 핵심을 감동스럽게 기술한다고 평가한다. 단테는 이 작품을 왜 ‘코미디’라고 불렀을까? 그 당시까지 서양문학의 여왕은 비극이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등장한 최초의 위대한 문학은 ‘비극’ 형식을 빌렸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 3명의 비극 작가는 페리클레스 같은 유능한 정치가와 함께 아테네 시민 교육을 위해 비극 공연을 시작했다. 이 비극에 사용된 언어는 일반 평민이 사용한 언어가 아니라 문학적이며 지식인이 사용하던 특별한 언어였다. 비극의 주인공은 관객에게 ‘공포’와 ‘연민’을 자아내기 위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단테는 ‘비극’이 아닌 ‘코미디’, 즉 ‘희극’이란 장르를 선택한다. ‘코미디’는 불행에서 시작해 행복으로 끝난다. 절망에서 시작해 희망으로 마친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진보한다. 단테는 ‘인생’을, 거룩한 목적지로 날마다 걸어가는 순례자로 묘사한다. 행복으로 시작했다 비극으로 마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과는 대조적이다. 단테는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용하던 대중의 언어로 시를 썼다. ‘코미디’를 당시 학자들과 철학·신학의 용어였던 라틴어로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라틴어 대신 길거리 언어를 이용해 겸손한 문체로 서술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세 가지 문체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즉 ‘비극 문체’ 혹은 ‘숭고한 문체’다. 이 문체에는 항상 왕과 영웅이 등장하며 문체도 그들과 상응하도록 격조가 있다. 두 번째는 중간 문체 혹은 애가 문체다. 슬픈 노래를 장엄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문체다. 세 번째는 단테가 사용한 평민 문체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문체로 코미디를 기록할 때 사용한다. 단테는 의도적으로 일반인이 사용하는 문체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단테의 이 시도는 위험하면서도 대담한 것이었다.
2022년, 변곡점에 와 있는 대한민국의 좌표를 단테의 ‘신곡’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신곡’은 지옥 34편, 연옥 33편 그리고 천국 33편 모두 100편으로 이뤄진 시다. 단테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시로 표현해, 암흑시대에 빛을 선사했다. 단테 <신곡>의 내용을 정성스럽게 영상에 담아, 자신의 삶에 시인이 되고 싶은 깨어있는 개인과 함께 자신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운명을 조용히 관찰하고 싶다.
가능하면, 매일 아침 7시에 여러분에게 단테 <신곡>의 아름다운 시를 영상에 담아 여러분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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