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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31 (月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3): 그(녀)는 진정성眞正性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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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정치가 키케로>

2022.1.31 (月曜日)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만한가? (3): 그(녀)는 진정성眞正性을 말하는가”

대선주자들의 토론이 2월 3일로 잡혔다. 나의 관점 포인트는 이것이다. 정치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들의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태도의 진정성을 보고 싶다. 상대방을 폄하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지, 혹은 그런 상대방의 곤란한 질문을 대했을 때, 진정으로 대답했는지를 보고 싶다.

인간은 혼자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 보고 표정과 몸짓, 그리고 말로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은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획기적인 특징이며 오랜 진화가 만들어낸 인간만의 기적이다. 인간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소통이 형성한 공동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를 만든다. 인간 사회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비가시적 공동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이라 일컬었다. ‘도시에 거주하는 동물’이란 뜻이다. 인간은 도시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도시의 법과 관습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인간은 자아가 아닌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타자와의 공동 행위를 통해 도시 안에서 함께 산다는 공통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동체의 행위는 구성원들의 염원이 담긴 특별한 도구를 통해 표현된다. 이 도구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의 생명은 이야기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이야기 속 숨은 의도에 있다. 그것은 바로 ‘설득’이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인들은 가장 경제적이며 안정적인 인간 공동체 체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실험하면서 특별한 기술을 가진 아테네의 지도자를 선출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동적 원칙은 공평한 경쟁을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투표였다. 지도자는 시민들에게 자신이 가장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탁월성은 업적과 명성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도자는 대중 앞에서 ‘연설’을 통해 자신이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전달해야 했다.

연설능력演說能力은 우리가 ‘선진국’이라 하는 국가에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이 능력은 단순한 말 이상으로, 그 사람의 경륜이 드러나야 한다. 선진국에 도달하지 않은 나라에선 개인의 탁월함이나 수사학(修辭學)적인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국민이 이러한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지도자를 뽑을 때 자질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막연한 소문이나 헛된 기대감에 기초해 선택하고, 결국 구태의연한 후진국에 머물고 만다.

신분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바로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이다. 서양에선 수사의 능력을 갖춘 위대한 개인이 여럿 등장했다. 이런 위대한 개인을 ‘영웅’이라 한다.

영웅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설득의 기술이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문명이 꽃피고 후에 등장하는 서양 문명의 규범을 창조하던 시절, 그리스에는 설득의 기술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소피스트들이고 다른 부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파렴치범으로 취급했다. 그들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해 사람들의 감정을 교란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수사학을 꼽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철학은 플라톤 저작의 각주에 불과’하다면, 오늘날 수사학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작들에 대한 각주다. 그가 남긴 저작 ‘레토리게’는 흔히 후대 라틴어 번역 ’아르스 레토리카(Ars Rhetorica)’, 즉 ‘수사학’으로 불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고상한 진리라도 그것이 실생활에서 구체화하지 않아 만질 수 없다면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수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설자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전달 방법은 분리될 수 없다. 이때 내용을 ‘로고스(logos, 분별과 이성)’, 내용이 전달됐을 때 표출되는 감정을 ‘파토스(pathos, 주관적 정념)’라고 한다. 로고스가 중요하지만, 자신이 의도한 감정적 반응인 파토스를 유발하기 위해 효과적인 언변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스승과는 다른 철학적 견해를 가졌다. 그는 파토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설의 스타일이나 방법을 ‘렉시스(lexis)’라고 칭했다. 렉시스는 로고스를 통해 공감을 형성한다. 현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렉시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진리라고 확신한 의견을 아무리 주장해도 그것을 솜씨 있게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로고스의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로고스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순간 렉시스가 되어 상호이해라는 지평을 연다. 플라톤의 로고스는 인간의 정치적인 삶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담론으로 사라질 뿐이다. 우리가 사는 대중정치 사회에서는 로고스가 시민들에게 전달돼 공감을 일으키는 렉시스가 될 때 권력이 발생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연설가인 키케로는 수사학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는 키케로가 제시한 수사학의 부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수사학이 윤리학과 정치학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자기 주장의 우월성을 변호하는 토론은 시민문화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연설가는 수사학적 담화를 통해 청중으로부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존경받는 일원이자 지도자라는 명예를 획득한다. 키케로는 젊은 시절에 저술한 ‘착상에 관하여(De Inventione)’에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웅변술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12권으로 구성된 ‘웅변교수론(Institutio oratoria)’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와 렉시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그는 그리스어 로고스를 라틴어 ‘레스(res)’로, 그리스어 렉시스를 라틴어 ‘붸르바(verba)’로 번역했다. 그는 인간의 말이 의미를 지니려면 ‘내용’과 ‘표현 방식’이 정교하게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자신의 진정성을 말로 표현하는지 자세히 지켜봐야겠다. 우리 후보자들은 진정성眞正性을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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