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3. (月曜日) “역할役割”

사진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루카 시뇨렐리(1450–1523)

프레스코, 1502

이탈리아 오르비에토Orvieto, Cappella di San Brizio

2022.1.3. (月曜日) “역할役割”

사람은 각자 자신이 시도해야할 한 가지 임무任務가 있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대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役割이다. 배역이 다양한 이유는, 전체가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나 연극에서 주연이나 조연만 존재한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다. 사실 모두가 주인공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가장 중요한 배역이며, 그 배역을 간절하고 완벽하게 소화하는 사람이 훌륭한 배우다.

단테는 <인페르노> 제3곡에서 지옥현관문을 지나 울부짖는 불쌍한 영혼들을 본다. 그들은 인생에서 욕도, 칭찬도 받은 적이 없는 ‘미지근한 사람들’이다. 인간사회의 최악은 미지근한 사람들, 즉 자기 이기심을 자극하는 조그만 쾌락을 증진시키는 것을 제외하고, 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무관심無關心한 자들이다. 무관심이 불의, 미움, 나태, 사기, 폭력, 이기심이다.

단테는 ‘별’과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지옥으로 내려간 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저 멀리 움직이는 그림자를 감지한다. 그들 가운에 한명이 누구인지 알아차린다. 단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제3곡 58-63행의 원문과 번역이다:

58 Poscia ch'io v'ebbi alcun riconosciuto,

59 vidi e conobbi l'ombra di colui

60 che fece per viltade il gran rifiuto.

58. 내가 몇몇을 알아차린 후에

59. 나는 다시 보고 그 그림자의 정체를 인식하였다.

60. 그는 비겁을 통해, ‘엄청난 거절’을 저지른 자다.

61 Incontanente intesi e certo fui

62 che questa era la setta d'i cattivi,

63 a Dio spiacenti e a' nemici sui.

61. 즉시 나는 이해하고 확신했다.

62. 이 자는 최악의 인간들만이 속하는 그런 천한 부류였다.

63. 신과 신의 적들에게도 탐탁지 않은 자였다.

58-60행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초기 주석자들은 교황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Pier da Morrone)라고 추정해왔다. 그는 1294년 4개월간 교황직을 수행하다 양위讓位하였다. 그는 베네데토라는 수사의 사주에 홀렸다. 베네데토는 첼레스티노의 소심한 성격을 파악하고, 그를 꿰어 수도원으로 들어가 조용한 삶을 사는 것이 신이 그에게 원하는 삶이라고 종용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는 어떤 인생도 정죄당하지 않고 살수 없다는, 베네테토의 말을 듣고 교황직을 내려놓았다. 이 수사가 후에 교황이 된 보니파체 8세Boniface VIII다. 단테는 교황 보니파체 8세를 자신을 영원히 피렌체로 돌아 올수 없도록 만든 원흉이며, 프렌체를 황제파와 교황파로 대립하게 만들어, 악을 몰고 왔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인페르노>에서 제19곡과 27곡에 두 번 등장한다. 첼레스티노는 자신의 일신 폄함을 ‘비겁viltade’하게 교황직을 거절한 ‘엄청난 거절il gran rifiuto을 저지른 자다.

‘엄청난 거절’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대 위에 올라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감독이나 대중에, 어떤 사람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발탁한다. 그는 주위 성화에 하는 수 없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가 이 직을 수락한 이유는, 이기적이다. 그런 직함이 그에게 인기와 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자신이 열연할 수 있는 역이 아니기에, 신명이 나지 않는다. 그 연극을 대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 주인공 한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그의 신들린 연기를 원했던 모든 스탭들도 함께 불행해진다.

감독의 선택이나 대중의 열망이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임무이며, 자신의 개성을 연마하고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를 고민해야한다. 그 고민이 초중고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교육은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신체훈련과 다양한 경험들을 적힌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훈련이다. 그런 훈련이 전무한 대한민국에서 교육대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단테는 미지근한 사람들과 ‘엄청난 거절’을 저지는 자들을 <인페르노> 제3곡 64행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64 Questi sciaurati, che mai non fur vivi,

64. 이 불쌍한 자들은, 결코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시간을 멈추고, 새해의 결심을 상기하면, 인간의 의지의 허약함과 허무함에 놀란다. 불쌍한 자들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희망을 향해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 수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 자체가 지옥이다. 왜냐하면 결코 자신의 최선을 향해 변화하는 삶을 살아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때, 인생의 자극이 없어 그럭저럭 살았던 사람들에게, 지옥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준다. 소위 ‘콘트라파소’contrapasso라는 형식이다. 단테는 이들의 형벌을 <인페르노> 제3곡 65-69행에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65 erano ignudi e stimolati molto

66 da mosconi e da vespe ch'eran ivi.

65. 그들은 벌거벗었고 거기에 있는 파리들과 말벌들에게

66. 무참하게 물렸다.

67 Elle rigavan lor di sangue il volto,

68 che, mischiato di lagrime, a' lor piedi

69 da fastidiosi vermi era ricolto.

67.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68. 그것은 그들의 눈물과 뒤섞여

69. 끔찍할 벌레들에 의해 그들의 발밑에 엉겨 붙었다.

살아생전에 내적인 자극이 없었던 이들에게 적절한 최악의 형벌이다. 파리와 말벌이 달려들어 이들을 문다. 온 몸에서 피와 눈물이 엉겨 땅에 떨어지면, 끔찍한 벌레가 모여든다.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길을 오늘 걷는 것이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국이다. 2022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남들에게 떠밀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았거나, 그 역할에 몰입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