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7. (木曜日)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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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2022.1.27. (木曜日) “겨울나무”

밤새 눈이 내렸다. 산에 들어서니, 내 발자국이 이 산을 방문하는 첫 손님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눈 내린 겨울 산에서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겨울나무다. 혈관과 신경세포와 자신의 폐까지 다 드러낸 겨울나무의 뼈대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외침이다. 이 무심하게 서있는 소나무 앞에 서면, 신화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말한 신의 정의가 떠오른다. 오토는 신을 인간을 초월하는 신적인 속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신적인 아우라는 ‘누멘numen’이라고 불렀다.

누멘은 신적인 아우라를 지닌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 신적인 아우라는 신비, 전율, 매력을 자신을 감싼다. 이 겨울 소나무는, 이 아우라를 지녔다. 그 첫 번째 초월적인 힘은 신비神祕하다. 신비는 무한한 우주의 정체성이자,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의 표식이다. 인간은 이성 안에서 세상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성 안에서 수학적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을 참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 정리 밖을 거짓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무한한 자연과 우주는 인간의 숫자안에 갇힐 수 없다. 인간의 숫자를 초월하는 무한한 우주 안에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 만일 이 동물이, 신비를 망각하고, 자신이 우연히 안 세계가 진리하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는 과학근본주의자로 타락한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모든 예술과 과학의 원천입니다. 이 감정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놀라운 것을 보고, 하던 일을 멈추지도 경외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눈은 닫혀있는 장님입니다. 인생이란 신비를 헤아리는 통찰은 공포와 더불어 종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지성은 아주 원초적인 형태만 이해할 뿐입니다. 이 신비한 감정이 모든 종교성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초월적인 힘은 전율戰慄이다. 이 소나무를 가만히 보면, 그 가지가 스쳐가는 바람에도 조금씩 떤다. 그 떨림이 소나무를 유연하게 만들어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동안 가지를 흔들며 버텨왔다. 그렇게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전율한 경험이 그녀에게 전율이란 카리스마를 선물한다. 내가 이 소나무 앞에서 전율하는 이유는, 이 소나무가 지내온 수많은 전율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초월적인 힘은 매력魅力이다. 매력은 자신의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린 만큼, 저 높은 하늘로 가지를 치고 올라가겠다는 의지에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힘이다. 저 소나무나 쓸쓸하지만 근사한 이유는 다른 소나무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루기 때문이다. 이 무심코 서 있는 소나무는 나를 순례를 요구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겨울나무의 신비, 전율, 그리고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한한 인내다. 혜성이 자신이 궤도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수천년을 참고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 바다가 육지에 침범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수천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안을 들락날락 거려야한다. 인간이란 종이, 오늘과 같인 모습을 취하기 위해서, 적어도 지난 300만년동안 미세한 진화를 거듭 진행해 왔다.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이 되기 위해선 과거 그녀 삶의 문법인 성급함을 제거해야한다. 현대인ㅇㄴ 바쁘다. 그 바쁨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을 ‘바지니스’business, 즉 ‘바쁨’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쁜가? 이 소나무는 잠시 바쁨을 멈추고 우리에게 인내를 연습하라고 말해준다.

식물학자들이 숲, 식물, 새, 물고기, 산, 강과 같은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고 지름길이 있다. 만일 그가 숲으로 들어가 새를 찾으면, 새는 날라 가 버릴 것이다. 강둑에 앉으면 물고기와 악어는 달아 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정한 장소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동상이 되어야한다. 그가 숲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되어야하고,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물고기가 되어야한다. 끔찍하게 오래 앉아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 식물학자와 동물학자에게 악어가, 물고기가, 동물이 다가온다. 이 움직이지 않는 생물은 무엇인가?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신처럼,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만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부동의 동자’는 주변에 호기심을 발산한다. 호기심은 간격을 허물고 두려움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물고기는 헤엄쳐 다가오기, 동물은 살며시 다가온다. 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이 이족보행동물을 자신의 동료로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저 눈 맞은 소나무와 바위처럼 인내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