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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베네치아 비에날레 조각가 자코메티>
2022.1.23. (日曜日) “장기長期”
기원전 9000년경 빙하기가 끝나면서 인류는 오늘날 중동지방으로 몰려와 거주하기 시작한다. 농업을 발견한 후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한곳에 정착한다. 농사란 한곳에 머무르며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적절한 일조량과 강우량을 기원하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농사는햇빛, 습기, 물, 더위와 추위 같은 다양한 자연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기술적 반응이다. 농사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애그리컬쳐agriculture’는 ‘땅’을 의미하는 ‘아그리agri’와 ‘보살피다’, ‘지키다’, ‘개간하다’, ‘수련하다’, ‘존경하다’, ‘예배하다’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 ‘쿨투라cultura’에서 유래했다.
농업의 한 분야인 정원庭園이 인류의 삶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12세기다. 인류는 농업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후, 정신적·시간적인 여유를 누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를 모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인류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인도에서는 《리그베다》, 이란에서는 《아베스타》, 팔레스타인에서는 《히브리 성서》, 그리스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근간이 되는 노래들이 등장한다.
성서는 신과 인간이 함께 지내던 환상적 공간인 에덴동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정확한 번역은 ‘에덴에 있는 동산’이다. 여기서 ‘에덴은 자연이 마련해준 ‘평원’이란 의미며 ‘동산’은 인간이 심미적으로 기획한 공간이란 의미다. 인류는 에덴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온갖 나무와 동물을 가꾸는 조경사로서의 신을 상상한다. 이곳엔 특별한 나무가 있다. 바로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알게 만드는 나무’다. 흔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번역되는 이 나무는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도와주는 상징적 나무다. 그 뿌리는 땅에 두었지만 끝은 하늘을 향한다. 신은 인간을 에덴동산을 가꾸는 정원사로 임명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정원이 등장한다. 또한 기원전 4세기 역사가 크세노폰Xenophon(기원전 431~350?)은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이라는 책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 키루스를 정원사로 묘사한다. 키루스는 제국 건설을 위해 원예를 전쟁만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문화로 소개한다. 전쟁이 지상의 영토를 정복하고 확장하는 예술이라면 원예는 마음의 영토를 가꾸는 예술이다. 크세노폰은 정원을 의미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파이리다에짜’를 차용하여 그리스어 ‘파라디소스paradisos’ 즉 ‘다른 곳과 구별되게 사방(파라)을 담으로 쌓아(디소스) 경계를 만든 장소’란 의미다. 우리에게 익숙한 ‘천국’을 의미하는 ‘파라다이스’의 원래 의미다.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은 ‘정원의 풍경’과 같다. 그 정원에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라 할 수 있는 청정한 생각, 즉 ‘사트바sattva’가 존재한다.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생각들, 인내·용기·자비·용서·영적인 열망과 같은 것이 바로 사트바다. 정원 안에는 식물의 열정적인 활동인 ‘라자스rajas’도 있다. ‘라자스’를 샤트바로 승화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기심에서 등장하는 자만·욕심·시기·게으름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각을 장악한다. 이 잡초와 같은 생각은 심지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병충해를 유인한다. 이 병충해와 같은 생각이 바로 ‘타마스tamas’다. 수련자는 바로 마음의 정원 가꾸는 정원사와 같다. 미적으로 아름답고 정서적으로 영감을 주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잡초와 병충해를 제거해야 한다. 이 제거작업은 인내와 정성을 요구한다.
시시각각 외부의 자극을 통해 일어나는 잡념들을 잠재우기 위해 한 달 혹은 1년의 시간은 부족하다. 우리가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을 상기해보자. 영어를 한 달이나 1년 동안 공부한 사람은 기초적인 회화 몇 마디만 할 수 있을 뿐 감동적인 소설이나 영자 신문을 읽지는 못한다. 적어도 십 년 정도를 영어 공부에 투자해야만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신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영어로 다른 사람을 설득해 감동을 주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감상하고자 한다면 일생에 걸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오랜 기간’은 완벽을 추구하는 요가 수련자의 마음가짐이다.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7?)는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신적인 불꽃’이 있다고 말한다. 요가 수련자는 이 불꽃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과 같다. 이 여정은 한 생애만큼의 긴 시간을 요구하지만 수련자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 한 시간, 한 순간도 흘려보내지 않는다. 파탄잘리가 말하는 ‘오랜 기간’은 ‘일생’을 가리킨다. 삼매경은 일생을 헌신할 때 이루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바가바드기타> 제6권 45행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요가 수련자가 삼매에 들어가기 위해 헌신해야 할 기간과 그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속적인 노력과 절제하는 마음을 통하여 요가수련자는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탄생을 통해서 그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생애 이상으로 완벽한 요가 수련을 지속해야 한다. 전생의 지속적인 수련이 현생에서 완성될 수 있고 현생은 다음 생에 완성될 요가 수련의 준비 기간일 수도 있다. 완벽한 인생은, 장기간 그것을 완성하려는 인내이며 수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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