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 (土曜日) “명성名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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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의 별들>

2022.1.22. (土曜日) “명성名聲”

고대 페르시아로 ‘인간’이란 의미를 지닌 단어는 ‘마르티야’ 𐎶𐎼𐎫𐎡𐎹다. 이 단어는 ‘인간’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mortalis, 영어단어 mortal로 등장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죽은 존재’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인간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을 넘어선 영속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그 외형적인 규모가 도시와 문자가 상징하는 문명文明이고, 그 비가시적인 콘텐츠가 예절이나 친절과 같은 가치가 상징하는 문화文化다.

인간은 자신이 지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 그것이 명성名聲이다. 명성이란, 자신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를 감지한 후, 자신만의 개성을 발굴하여, 주위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회자되는 이야기다. 예들 들어 예수, 붓다, 소크라테스, 노자와 같은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담고 있는 무한한 명성이다. 지구가 멈추지 않고 회전하고, 인류가 이 지구에서 생존하는 한, 이 이름들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단테가 지옥에 위치한 림보를 지나면서 신기한 장소를 확인한다. 빛이 없는 지옥에 빛이 있는 공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제4곡 64-72행 이탈리아 원문과 그 번역이다. 단테는 그 빛이 있는 공간에서 자기 삶의 모델들을 발견한다.

64 Non lasciavam l’andar perch’ ei dicessi,

65 ma passavam la selva tuttavia,

66 la selva, dico, di spiriti spessi.

64. 그가 말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65. 그러나 우리가 숲은 완전히 지나는 동안,

66. 그 숲을 말하자면, 촘촘히 들어선 영혼의 숲이었다.

67 Non era lunga ancor la nostra via

68 di qua dal sonno, quand’ io vidi un foco

69 ch’emisperio di tenebre vincia.

67. 내가 잠들었든 그곳에서

68. 우리의 길은 멀리 아직 가지 못했다. 내가

69. 암흑의 반구를 정복하던 빛줄기를 보았을 때,

70 Di lungi n’eravamo ancora un poco,

71 ma non sì ch’io non discernessi in parte

72 ch’orrevol gente possedea quel loco.

70.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아직 약간 떨어져 있어도

71. 내가 한 장소에 모여 있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들을

72.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테는 길 안내가 베르길리우스에게 질문을 한다. 이곳에 이렇게 별도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누구이며, 그들이 이런 특권을 누리게 된 이유를 묻는다.

73 “O tu ch’onori scïenzïa e arte,

74 questi chi son c’hanno cotanta onranza,

75 che dal modo de li altri li diparte?”.

73. “오, 학문과 예술을 빛내는 당신이여!

74. 이런 영예를 지는 이들은

75. 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떨어져 있습니까?

76 E quelli a me: “L’onrata nominanza

77 che di lor suona sù ne la tua vita,

78 grazïa acquista in ciel che sì li avanza.”

76. 그리고 그가 대답하였다.

77. 너의 생애 동안 저 위에서 울려 퍼진 그들의 영예로운 명성은

78. 하늘에서 총애를 받아, 그들은 이처럼 빼어나게 한 것이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는 ‘학문과 예술’을 빛나게 하는(ch’onori scïenzïa e arte) 철학자로 소개한다. ‘스키엔치아’는 철학을 의미하고 ‘아르테’는 칠자유학과를 의미한다. 칠자유학과七自由學科를 의미한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걸쳐 ‘자유인’들을 위해 주로 중등교육 이상에서 교수되어 오던 과목이다. 기초단계를 ‘트리비움’Trivium, 즉 문법grammar, 논리reason, 그리고 수사학rhetoric으로 구성된다. 문법은 ‘트리비움’은 세 가지 길이 만나는 지점이란 뜻이다. 인간의 오감으로 인식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명명하는 훈련으로 ‘나무를 고양이가 아니라 나무로 인식하고 말하는 훈련’이다. ‘논리’는 문법을 기초로 상대방과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논리를 통해 모순을 제거하고 상대방도 믿을 수 있는 사실을 유추한다. ‘수사’는 논리적인 말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문법과 논리를 기반으로, 상대방도 수긍할 수 있는 지혜를 신장한다. ‘트리비움’ 기초위에 ‘콰드리비움quadrivium ’ 네 가지 학문이 더해진다. 즉 산수학, 기하학, 음악, 그리고 천문학이다. 이것이 ‘칠자유학과’다. 칠자유학과는 의학이나 건축과 같은 실용적인 학문과 구분된다.

여기에 거주하는 존재들은 ‘온란자’onranza 즉 ‘명성’을 지닌 자다. 명성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신이 준 개성에 몰입했을 때, 주어지는 덕의 대가다. 어거스틴도 지상에서 명성을 얻는 자는, 지옥에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기록하였다.

명성은, 남들이 원하는 인기와는 다르다. 명성은, 자신이 태어난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안에서 스스로 구가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집중할 때,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스스로 자족하며 빛을 발산할 때, 그것을 우연히 관찰한 사람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한다. 여러분의 명성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빛을 발산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