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 (木曜日) “별을 세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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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별들>

2022.1.20. (木曜日) “별을 세어보십시오!”

(사순절 두 번째 주 (2022.3.13.) 렉셔너리 <창세기> 15.1-18)

현대인은 ‘별볼일’없이 산다.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별로 알고 싶지 않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내뱉는 막무가내 공약들과 정적들에 대한 추문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간간이 우세종이 된 오미크론 코라나에 감염시킨 환자수가 우리 삶을 암울하게 만든다.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언제 우리가 별을 보았던가? 별을 보기 위해서는, 주말에 교통체증을 감수하고 교외로 나가야 한다. 그 별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기ek리며, 오늘 밤 저 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망각한 지 오래다. 별을 보고, 자신만의 별을 창조하기 위해 수련하지 않은 사람은 대개 별 볼일 없다. 에머슨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스스로에게 별이어야 한다.(Man is his own star)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저 먼 하늘에서 기다린다.

유일신종교, 즉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아브라함은 사막에서 별을 응시하여 그 거룩한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다. 아브람은 ‘조상은 높으신 분이다’라는 의미다. 그는 인생에서 성공하였지만, 그 성공이 보람과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나이와 조건을 초월한다. 고대인들에게 고향은 삶의 터전이자 생계를 마련해주는 마지노선이다. 거부가 되어 한 곳에 안주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소위 행복하게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초인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집, 부모가 속해 있는 친족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였다. 이 의도적인 분리는, 아브람이란 인간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탐구하려는 시급하고 간절한 총성이다. 그는 이제 타인에 의해 주어지고 결정된 삶이 아니라, 심사숙고를 통해 스스로 결정한 삶을 살 것이다. 그의 시선의 방향이 달라졌다. 아래나 옆이 아니라 위가 되것이다.

아브람이 가야 할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 목적지는,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과감하게 버릴 때 슬며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별이다. 신은 아브라함에서 익숙한 세계를 과감하게 떠나 미지의 세계로 여정을 시작하라고 촉구한다. 신이 아브람에게 말한 “너는 내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는 문장에서 몇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신은 아브람에게 목적지를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신은 아브람이 고향을 떠나 광야로 나설 때, 그 목적지를 조금씩 보여주길 시작할 것이다.

신은 아브람에게 많은 자녀가 생겨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정직 아브랄의 부인 사래는 불임여성이었다. 아브람은 사래의 몸종 하갈을 통해 낳은 엘리에젤을 낳았다, 신은 사래를 낳은 자식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한 후,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 다음과 같은 특별한 행위를 시킨다:


וַיֹּוצֵ֨א אֹתֹ֜ו הַח֗וּצָה וַיֹּ֙אמֶר֙ הַבֶּט־נָ֣א הַשָּׁמַ֗יְמָה

וּסְפֹר֙ הַכֹּ֣וכָבִ֔ים אִם־תּוּכַ֖ל לִסְפֹּ֣ר אֹתָ֑ם

way-yōṣē(ʾ) ʾōthô ha-ḥûṣā(ʾ)

way-yōmer hab-beṭnā haš-šāmayǝmā

uspōl ha-kôkābîm ʾim-tûkal lispōr ʾōtām

와-요쩨 오쏘 하-후짜

와-요멜 하베뜨나 하-샤마여마

우스폴 하코카빔 임-투갈 리스폴 오쌈

“그(하나님)가 그(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라. 그리고 별을 셀수 있으면 세어보아라!”

<창세기> 15.5

신은 아브람을 ‘밖으로(ha-ḥûṣā(ʾ)/ הַח֗וּצָה)’ 데라고 나왔다. 여기에서 ‘밖’이란 의미의 ‘후츠’는,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나와 생경하고 심지어 위험한 공간을 의미한다. 인간은 ‘안’에서 자신이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착각한다. ‘안’으로부터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자연과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만든 창조주를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다.

밖에 나선 인간은 하늘의 별을 모두 볼 수 없다. 별의 숫자는 무한이지만, 인간은 그 많은 별들을 볼 수 없고, 자신의 시계 안에서 별을 관찰할 뿐이다. 아브람이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하늘에 있는 별들의 극히 일부분만을 볼 것이다. 아브람이 나사가 지난 크리스마스에 우주에 쌓아 올린 제임스 웹이라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류가 앞으로 더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통해 확인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아브람은 성공한 유목민이자 상인으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삶의 가치로 여겼다. 그는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섰다. 그리고 별을 세기 시작하였지만, 이내, 깨닫는다. 자신이 아무리 눈을 비비고 셈하려 해도, 그것은 미미한 부족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거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깨달음과 유사하다. 아브람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자신이 아는 유일한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신은, 그런 겸허를 깨달은 아브람에게 약속한다.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을 것이다.”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 아브람은 신의 섭리를 믿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에서 실행에 올려야할 의로움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וְהֶאֱמִ֖ן בַּֽיהוָ֑ה וַיַּחְשְׁבֶ֥הָ לֹּ֖ו צְדָקָֽה׃

wǝ-heʾěmin badōnay way-yaḥšǝbehāllō ṣǝdāqā(h)

워-헤에민 바도나이 와-야흐쉐베할로 쩌다카

“그래서 아브람은 야훼의 섭리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믿음을 자신의 옳음으로 여겼다.”

<창세기> 15.6

이 구절은 흔히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고 번역되어왔다. 나는 이 구절의 후반부의 주체를 아브람으로 해석하고 싶다. 아브람은 일상에서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자신의 눈을 땅이나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늘에 두었다. 그리고 무많은 별들 가운데, 자신의 별을 발견하였다. 사순절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가 자신의 별을 찾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