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4. (金曜日) “셰이머스 히니의 ‘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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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머스 히니>

2022.1.14. (金曜日) “셰이머스 히니의 ‘림보’”

1995년 어느 날,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1939-2013)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들었다. 나는 당시 고대 영어로 기록된 <베어울프>에 매료되어 Old English 수업을 듣고 있었다. 셰이머스 히니는 자신의 고향 아일랜드 벨페스트와 미국 캠브리지를 오가며 가르쳤다. 나는 그의 베어울프 번역을, 출간 전에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1999년에 Beowulf: A New Verse Translation를 출간하여 이 중요한 시를 21세기 영어로 아름답게 번역하였다. 히니의 베어울프 영어 번역은 이렇게 시작한다:​​

So. The Spear-Danes in days gone by

And the kings who ruled them had courage and greatness.

We have heard of those princes’ heroic campaigns

“자! 지금은 사라진 옛적 창을 든 데인 사람들과

그들을 다스린 왕들은 용감했고 위대했다.

우리는 이 왕자들의 영웅적인 전쟁에 대해 들어왔다.”

히니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목동이었고 어머니는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아홉남매의 첫째로 태어나 아일랜드 자연풍광과 정치풍광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느 날 밸리새논이란 항구에서 어부들이 죽은 간난 아이를 연어와 함께 건져 올렸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는 이 사건이 아일랜드가 처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은유이며, 아일랜드의 심장인 가톨릭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히니는 “림보”라는 시를 썼다. 요즘 읽은 시중 가장 충격적인 시다. 다음은 그 원문과 번역이다:

Limbo

림보

Fishermen at Ballyshannon

Netted an infant last night

Along with the salmon.

An illegitimate spawning,

발리세논에서 어부들이

어제 밤 갓난아이를

연어와 함께 건져냈다.

사생아 산란產卵이었다.

A small one thrown back

To the waters. But I'm sure

As she stood in the shallows

Ducking him tenderly

물에 던져진 작은 아이.

분명 그녀는 그 아이가

물속에 부드럽게 잠길 때

얕은 물가에 서 있었을 것이다.

Till the frozen knobs of her wrists

Were dead as the gravel,

He was a minnow with hooks

Tearing her open.

그녀 손목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꽁꽁 얼어 자갈처럼 죽어있을 때까지.

그 아이는 갈고리로

그녀를 갈기갈기 찢는 작은 물고기였다.

She waded in under

The sign of the cross.

He was hauled in with the fish.

Now limbo will be

그녀는 성호聖號를 그리면서

물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는 물고기들과 함께 감겨 올려졌다.

이제 유예猶豫가 있을 것이다.

A cold glitter of souls

Through some far briny zone.

Even Christ's palms, unhealed,

Smart and cannot fish there.

영혼들이 저 짠 바닷물 해역에

차갑게 반짝거립니다.

심지어, 다 낫지 않아 욱신욱신 아픈

그리스도의 손바닥도 그곳에서 그 아이를 끌어올릴 수 없다.

히니는 이 시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추적하였다. 그는 ‘아이살해’라는 주제를 통해 혼돈에 빠진 어머니의 심정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욕하시 않고, 그녀를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 아일랜드 교회가 미혼모에게 가한 정신적이며 영적인 고문을 시로 표현하였다. 미혼모인 그녀는, 아무도 자신의 자식에게 세례를 부풀지 않아, 스스로 아이에게 ‘구원을 받기 위한’ 세례행위를 시도한 것이다. 신문 표제인 Fishermen at Ballyshanon/Netted an infant last night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연어 그물망에 고기처럼 누워있는 시신은, 사생아이며, 그것은 어부조차 버릴 수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물고기와 같았다. 교회는 세계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림보에서 영원히 거주한다고 가르친다.

히니는 이 물에서 아이가 익사한 사건을 유아세례라고 재해석한다.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얕은 물가에 서 있다. 그녀는 아이를 물 밑으로 부드럽게 잠겼다 다시 꺼낸다. 몸이 찬물에 얼기 시작하고,이 아이를 물에 담궜을 때, 아이를 출산했을 때 고통을 느낀다. 그녀는 이 끔찍한 행위가, 이 아이가 앞으로 사생아라는 오명을 쓰고 사회에서 당시하는 고통보다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들고 물을 헤치고 들어가 성호를 긋고 세례를 행한다. 세상에는 그 전에, 이렇게 죽어간, 많은 영혼들이 이 짠물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예수도 1세기에 같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상처기 아직 아물지 않아, 그의 손은 바닷물에 너무 쓰라리다. 히니는 이 시를 통해 세례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림보에 영원히 위치한다는 교리에 반기를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