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 (水曜日) “연기자演技者와 배우俳優”

사진

<노르웨이 산을 즐기는 사람>

덴마크 화가 Martinus Rørbye (1803–1848)

유화, 1830, 21 cm x 32 cm

개인소장

2022.1.12. (水曜日) “연기자演技者와 배우俳優”

지난달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후보를 향해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했다.

“제가 과거에 여러 번 대선을 경험했지만, 후보가 선대위에서 해주는 대로 연기演技만 잘 해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演技를 좀 해달라.” 선거철에 그럴싸하게 달콤한 말들을 쏟아내는 ‘연기자’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중에 원하는 말을 정색을 하고 진심처럼 말하는 이들은, 대중에게 아부하려는 성급한 마음은 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양심은 없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연기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19세기 중엽, 유럽에 새로운 우상이 등장한다. 인류가 그동안 신봉해왔던 종교와 철학을 대치하는 강력한 우상으로, 대중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이 새로운 우상이 ‘국가國家’다. 니체는 <차루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새로운 우상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나, 국가가 국민이다Ich, der Staat, bin das Volk.’라고 주장하며 대중을 현혹한다고 기록한다.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드는 창조자란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자신에게 편리한 관습과 권리를 창작한다.

독일전통에서 이런 민족주의는 철하과 문학을 통해 대중문화가 되었다. 헤르더와 슐레겔은 민족과 대중 안에 그 문화의 핵심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 언제 대중문화가 진선미를 창조한 적이 있는가? 대중이라는 용어가 허상이기에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민심이 천심’이라고 말한다. 그 민심은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달리자는 변덕이 천심인가?

19세기 중엽 이런 사상을 독일문화가 되었다. 다비드 슈트라우스David Strauss는 <예수의 삶>이라는 책에서 대중이 국가과 민족신화의 창작자라고 말한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미래의 예술작품>과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대중에 예술의 창작자로 기록한다. 니체는 차라투스르타의 입을 빌려, 국가는 거짓말만 양산하며 가치에 혼동만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국가는 이미 사라져버린 오래된 신의 ‘대리인’이다. 국가는 예전 신이 해오 던 약속을 대중에게 남발한다. “만일 나를 숭배하면,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라는 독일철학자는 <유일자와 그 소유>(1844)에서 새로운 신을 자처하는 국가는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말살하려는 인간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다. 독재가 국가를 장악하고, 독재자는 다수이기도 하고 동시에 개인이다. 왜냐하면, 대중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명을 국가의 수장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부질없는 것으로 단정한다. 슈티르너는 기존의 국가를 전복하는 혁명은 또 다른 독재자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고의 가치인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개인이 해야 할 유일한 행위는 ‘고독을 찾아 도망쳐야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장소들은 많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은, 두가지를 극복해야한다. 하나는 내적인 이기심과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권위에 대한 의존이나 맹종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권 12번째 글에서 “시장의 파리 떼에 관하여VON DEN FLIEGEN DES MARKTES”라는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인간이 자유의 연습과 신장의 방해꾼을 ‘시장巿場’이라고 부른다. 시장에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눈길을 끈다. 미디어와 SNS를 동원하여 대중이 좋아하는 혹은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재미있게 엮는 사람이 오늘날 리더다. 그런 리더에서 파리 떼와 같은 대중에 달라붙어, 절제되지 않는 찬사 혹은 비방을 쏟아낸다. 그런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될 사람은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고, 대중에 좋아할 만한 가면을 쓰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소위 ‘훌륭한 연기자’가 되어야한다. 니체는 <시장의 파리 떼에 관하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FLIEHE, mein Freund, in deine Einsamkeit! Ich sehe dich betäubt vom Lärmeder großen Männer und zerstochen von den Stacheln der kleinen. Würdig wissen Wald und Fels mit dir zu schweigen. Gleiche wieder dem Baume, den du liebst, dem breitästigen: still undaufhorchend hängt er über dem Meere. Wo die Einsamkeit aufhört, da beginnt der Markt; und wo der Markt beginnt, da beginnt auch der Lärm der großen Schauspieler und das Geschwirr der giftigen Fliegen.

“나의 친구여, 당신의 고독 속으로 도망치십시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위인들’의 소음 때문에 귀가 먹고 ‘소인들’의 침에 마구 찔리고 있다. 숲과 바위는 당신과 함께 기품이 있게 침묵할 줄 안다. 다시 당신이 사랑하는 널리 가지를 펼친 나무처럼! 그 나무는 바다 위로 고요히 귀를 기울이고 매달려있다. 고독이 끝나는 곳에 시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시장이 시작된 곳에서 위대한 배우들의 소음이 시작되고 독파리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시작된다.”

니체는 우리에게 ‘고독’으로 도망치라고 충고한다. 산업혁명과 근대이전, 인간의 삻은 고독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도래하고 대중문화와 도시화가 대세가 되면서, 고독을 찾을 수 없고, 인간은 즐거운 모임을 통해 규정되는 물건이 되었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미디어에 매일 등장하여 연신 떠든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도, 들을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난 수십년동안 내가 책장에서 꺼내보지 않는 책에 적힌 한 줄보다도 가치가 없는 내용을 마구 쏟아낸다. 그런 소음에 소인들은 더 열광한다. 왜냐하면, 그런 말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언제나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언제나 침묵하고 나의 생각에 귀를 기울려 주기 때문이다. 숲과 바위는 기품氣品이 있다. 이 세상에 똑같은 모양을 가지 숲도 없고 바위도 없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침묵으로 자신을 절제하기 때문에 기품이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Wo die Einsamkeit aufhört, da beginnt der Markt,” 즉 “고독이 끝나는 곳에 시장이 시작한다.” 시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명성을 추구한다. 연기자들, 정치가와 저널리스트들은, 대중인기를 통해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말과 글로 대중의 귀를 세뇌시킨다. 그것이 대중문화다.

니체는 이 대중문화를 주도할 인물을 ‘연기자’라고 말한다. 독일어로 ‘연기자’를 의미하는 ‘샤우스필러’Schauspieler’는 ‘쇼’를 의미하는 ‘샤우schau’와 ‘경기자; 연기자’ 혹은 ‘볼거리’를 의미하는 ‘슈필러spieler’의 합성이다. 근대이후 대중문화를 주도한 정치가, 언론인, 연기자, 연주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니체는 바그너를 당시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여겼다. 배우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양심이다. 니체는 이런 연기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Geist hat der Schauspieler, doch wenig Gewissen des Geistes. Er glaubt immer an das, womit er am stärksten glauben macht–glauben an sich macht! Morgen hat er einen neuen Glauben und übermorgen einen neueren. Rasche Sinne hat er, gleich dem Volke, und veränderliche Witterungen. Umwerfen–das heißt ihm: beweisen. Tollmachen–das heißt ihm: überzeugen. Und Blut gilt ihm als aller Gründe bester. Eine Wahrheit, die nur in feine Ohren schlüpft, nennt er Lüge und Nichts. Wahrlich, er glaubt nur an Götter, die großen Lärm in der Welt machen!

“연기자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에 정작 필요한 양심良心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가장 강력하게 믿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신봉한다. 그는 그 자신을 신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는 내일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그 다음에 날엔, 더 새로운 신념을 가진다. 그는 대중처럼, 변덕스런 날씨와 같은 약삭빠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뒤집어엎기. 그것이 그에게는 연기자가 될수 있다는 증명이다. 열광시키는 것, 그것이 그에겐 설득이다. 그리고 피야말로 모든 근거들 중에 최상의 근거다. 예민한 귀에만 미끄러져 들어가는 진리를, 그에겐 거짓이고 무無다. 진실로 그는 이 세상에서 커다란 소음을 내는 신들만을 신봉한다.

연기자演技者와 배우俳優는 다르다. 연기자는 연출자가 알려준 내용을 언행으로 재현하는 꼭두각시지만, 배우는, 자신의 고유 임무를 깨닫고, 그 순간에 자신의 양심을 표현하는 자다. 연기자는 머리를 이용하여 대중을 자기편으로 유인할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양심은 없다. 배우가 발동시키는 양심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말에 동의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다. 그 양심은 대중신뢰가 아니가 에머슨이 외친 자기-신뢰라는 샘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샘물이다. 연기자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중얼거리고 외치지만, 배우는 자신의 양심을 발견하고, 그 양심의 소리에만 복종하는 자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배역을 찾아 양심을 따라 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오늘날 연기자와 같은 지도자들은 변덕스런 날씨와 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 뒤집기는 그가 권모술수로 권력을 쥘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이다. 대중을 가만히 숙고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광하게 만들고, 편을 가르며, 환호하게 만드는 행위가, 독재자에겐 설득이다. 인간의 숙고를 요구하는 진리는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거르고 걸러, 여러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안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진리다. 이런 진리는, 대중을 이용하게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에게 거짓이고 헛소리다.

시장은 어릿광대 연기자를 리더로 모시고 그들에 열광한다. 그 광대와 대중은, ‘예’ 혹은 ‘아니오’, ‘네편’ 혹은 ‘우리편’이라는 이분구조를 신봉한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함을 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 애매함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항상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등장했다. 새로운 가지를 발견하는 자는,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해야한다. 니체는 이 글의 마지막에 ‘연기자’들의 거짓말에 동요되어 춤을 추고 있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Fliehe, mein Freund, in deine Einsamkeit:

ich sehe dich von giftigen Fliegenzerstochen.

Fliehe dorthin, wo rauhe, starke Luft weht!

Fliehe in deine Einsamkeit!

Du lebtest den Kleinen und Erbärmlichen zu nahe.

Fliehe vor ihrer unsichtbaren Rache!

Gegen dich sind sie nichts als Rache.

Hebe nicht mehr den Arm gegen sie!

Unzählbar sind sie, und es ist nicht dein Los, Fliegenwedel zu sein.

“나의 친구여, 당신의 고독 속으로 도망쳐라!

내가 보기에 당신은 독파리에 의해 마구 쏘이고 있다.

그 안으로, 거세고 강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도망쳐라!

당신의 고독 속으로 도망쳐라!

당신은 하찮고 불쌍한 자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복수로부터 도망쳐라!

당신을 향해, 복수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지 마라.

그들은 무수하고 파리채가 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하나? 연기자로 가득한 한국에서 진정한 배우는 등장할 것인가? 자신의 양심을 말하고, 국민들을 감동시킨 리더는 등장할 것인가? 당신은 연기자인가? 배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