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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 (月曜日) “찬란燦爛”

사진

<설악면 야산 솔잎>

2022.1.10. (月曜日) “찬란燦爛”

밤하늘의 별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저 멀리서 유유자적하며 천지가 개벽해도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끊임없이 빛을 발산한다. 신이 별에게 물었다. 너는 왜 빛을 내는가? 별은 말한다. “그냥 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요.” 하루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계획이나 멋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입하여 그저 하는 수고다. 그 몰입이 범인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현자에게는 천재성이다.

새해가 열흘이나 지났다. 1월의 1/3이 지난 것이다. 이런 열흘이 세 번 지나면, 1달이고, 그런 한 달이 12번 지나면 1년이다. 2022년을 다 흘려 보냈다고 상상하니 아쉽다. 그래서 지난 열흘을 가만히 돌아 보았다. 만족과 불만족, 보람과 후회는 내가 매일 매일 무심코 행하는 사소한 일들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은 내가 오늘 행하는 사소한 것들에서 태어나는 자식이다. 사소한 것들을 완벽하게 완수하려고 노력하면, 전체가 완벽해진다.

오늘 아침에도 저 태양은 나를 위해 오늘 저 산 너머에서 기어이 올라왔다. 나에겐 이 하루를 정성스럽게 보내기 위한 준비가 있다. 지난 10년동안 수련해 왔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무너진다. 그 준비란 아침 묵상과 동내 야산 등산이다. 아침일찍 가만히 앉아 나를 응시한다. 그런 후, 맑은 정신으로 산책에 나섰다. 매일 산책이 나를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라 믿고 싶다. 요즘 반려견들은 내가 가는 신선봉 정상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를 고집한다. 가파른 계단들이 힘겨운가 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분명하다. 내가 오르려는 신선봉 등반이 힘들었는지, 산비탈에 난 고라니 길로 나를 잡아끌었다. 산비탈을 가만히 가만히 보면, 고라니들과 멧돼지들이 지나다닌 흔적 길들이 낙엽들 사이로 나 있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가파른 산비탈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나무들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구릉이 나온다. 이 구릉엔 무명씨 무덤들이 꽤 등장한다. 그 무덤들 위에 다 자란 소나무와 전나무가 제법 솟아오른 것으로 그 세월을 짐작해 본다면, 적어도 수 십년동안 그렇게 방치되었을 것이다. 먼저 살다 간 인생 선배들을 위해, 나와 내 반려견들이 그들에게 이렇게 매일 아침 예를 표한다. 이 무명 무덤 옆에 깊은 웅덩이가 있다. 고라니와 멧돼지의 배설물이 가득 차 있다. 동물들이 먼저 이곳을 순례지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는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몸을 이리저리로 흔들며 등산하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쓰러진 나무를 피해, 머리뿐만 아니라 몸을 굽혀 겨우 지나간다. 내가 마스크나 색안경을 끼지 않았다면, 얼굴은 온통 나뭇가지 회초리 흔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 나무들은 단테가 인페르노 입구에서 만난 ‘나를 통해 영원한 슬픔으로 들어간다’가 아니라. ‘나를 통해 설레는 하루가 시작한다’라고 노래한다. 산비탈에 난 낙엽과 서리를 잔뜩 머금은 오솔길을 따라간다. 샤갈과 벨라와 연결된 리드 줄이 나를 지탱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에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줄이 풀린 예쁜이는 산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내가 부르면 저 비탈 아래서 이내 달려온다.

요즘 우리 산행 중간 기착지는 북한강이 멀리 보이는 높다란 언덕이다. 그곳에 아직도 꿋꿋하게 녹색 잎을 띤 소나무가 서 있다. 밤새 차디찬 공기가 소나무 잎과 만나 뾰족한 잎 하나 하나에 수많은 얼음 결정체結晶體를 만들었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뾰족한 솔잎이 하나하나마다, 적어도 수천 개의 하얀 보석이 달려있다. 아이폰을 꺼내 자신만의 모습을 뽐내려 서리를 사진에 담았다. 부산한 샤갈과 벨라도 이 순간만큼은 빅뱅이전의 순간만큼 소리를 절제하고 겨울 산 소나무를 응시하고 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확대하였다. 솔잎 하나에 장식된 얼음 서리들은 찬란하다. 놀라운 점은, 그 서리 하나하나가 모두 모양이 다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완벽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흉내이거나 비교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스스로에 온전히 몰입한다. 비교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인간문화는 자연에 비해 시시하다. 자연은 전체가 완벽할 뿐만 아니라, 부분도 온전하고 완벽하다. 만일 이 서리를 호메로스가 보았다면, 그는 ‘칼로스 카아쏘스’(kalos kagathos)라고 말했을 것이고, 시편 저자가 보았다면 그녀는 ‘야사르 워-톰’yasar wa-tom라고 외쳤을 것이다.

만일 우주의 사소한 것이 불완전하면, 그 순간 전체도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만일 전체를 구성하는 한 분자가 사라지면, 그 전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 먼지 하나가 없다면 세상도 존재할 수 없다. 그 먼지가 완벽하기 때문에 지구도, 태양계로, 우주도 완벽하다. 이 서리는 저 하늘의 별만큼 완벽하다. 잎사귀에 달린 아침 이슬은, 저 나일강만큼 우주와 역사의 비밀을 품고 있다. 저 웅장한 피라미드를 만든 직사각형 바위는 피라미드 전체만큼 완벽하다. 보잘 것 없는 것과 작은 것은 근사한 것과 거대한 것에 앞설 뿐만 아니라, 그 전부다. 사소한 것은 위대한 전체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 아니라, 위대한 것을 만드는 주인이다.

허튼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하려는 야망을 품고 지금-여기에서 완벽하게 구현해야 할 사소한 일을 무시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한다. 위대한 사람들의 유전자인 겸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완벽하게 그리고 욕심이 없이 집중한다, 그(녀)가 위대한 이유는 누구의 갈채가 없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혹은 보상이 없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위대함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가 추종하는 것은 신실, 무욕, 정직, 그리고 진실이다. 그는 사소한 일상의 일에서 이러한 것을 발견하기에 위대하다.

괜찮은 인간은 순간, 친구와 식구와는 나누는 말, 눈길, 인사, 식사, 옷차림, 걷는 모습, 표정, 좌정한 모습과 같이 하루에 인간이 무심코 행하는 수천, 수 만가지의 사소한 것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이 자신을 위해 정해놓은 필연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어느 것도 무시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미루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지금 맡겨진 일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과 순진함으로 집중할 뿐이다.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남은 2022년 날들이, 저 솔잎에 맺힌 서리처럼 스스로에게 찬란燦爛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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