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8. (水曜日) “피안론자彼岸論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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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모섬 요한 사도>

러시아 화가 안드레 미노로프 (1975-)

유화, 2012

2021.12.8. (水曜日) “피안론자彼岸論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3)

안개가 낀 산은 언제나 신성하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지만, 봄을 위해 자신을 절제하였다. 이곳은 천국일 수 밖에 없다. 나와 반려견들을 정중하게 반겨주고, 우리가 지금을 만끽 할수 있도록 침묵을 유지한다. 안개도 조심조심 움직인다.

기원전 10세기경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소를 마련하였다. 신을 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돋보여 이스라엘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려는 포석이었다. 솔로몬의 무리한 건축으로, 그 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다. 유대교는 원래 시간의 종교였다.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신에 대해 묵상하고 선행을 다짐하는 안식일로 지냈다. 종교는 장소의 정복이 아니라 시간의 정복하려는 시도다. 1세기 유대종교인들도 자연히 장소에 집착했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천국’에 대해 말한다. 그는 천국은 ‘너희들 가운데 존재한다’고 말한다. 천국은 사후에 영혼이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사이에 건설해야 할 이상적인 관계다. 니체는 지금을 무시하고 이데아와 천국을 설교하는 당시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3에서 ‘피안론자들에 관하여’라는 글을 썼다. 다음은 그 원문과 번역이다:

VON DEN HINTERWELTLERN

피안론자彼岸論者들에 관하여


EINST warf auch Zarathustra seinen Wahn jenseits des Menschen, gleich allen

Hinterweltlern. Eines leidenden und zerquälten Gottes Werk schien mir da die Welt. Traum schien mir da die Welt, und Dichtung eines Gottes; farbiger Rauch vor

den Augen eines göttlich Unzufriednen. Gut und Böse und Lust und Leid und Ich und Du – farbiger Rauch dünkte mich’s vor schöpferischen Augen. Wegsehn wollte der Schöpfer von sich – da schuf er die Welt.


“차라투스트라도 한 때, 피안론자들처럼, 인간 저편 세계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세계는 고민과 번민에 시달리는 신의 작품으로 보였다. 그때 세계는 나에게 신의 꿈이자 시처럼 보였다. 신적인 불만을 지닌 자의 눈앞에 피어오르는 알록달록한 연기 같았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나와 너, 이것들은 나에게 창조적이며 눈 앞에서 피어오르는 알록달록한 연기 같았다. 창조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려 했고, 이 때에 창조자는 세계를 창조하였다.”

Trunkne Lust ist’s dem Leidenden, wegzusehn von seinem Leiden und sich zu

verlieren. Trunkne Lust und Selbst-sich-Verlieren dünkte mich einst die Welt. Diese Welt, die ewig unvollkommene, eines ewigen Widerspruches Abbild und unvollkommnes Abbild, eine trunkne Lust ihrem unvollkommnen Schöpfer – also dünkte mich einst die Welt.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자신을 망각하는 것, 이것이 고뇌하는 자에게는 도취 ]된 쾌락이다. 한때 나에게 세계는 도취 된 쾌락과 자기 망각으로 여겨졌다. 이 세계, 영원히 불완전하고 영원한 모순의 모사, 그것도 불완전한 모사다. 이러한 세계의 불완전한 창조자에게는 도취적 쾌락-한때 세계가 나에게 그렇게 여겨졌다.”

Also warf auch ich einst meinen Wahn jenseits des Menschen, gleich allen

Hinterweltlern. Jenseits des Menschen in Wahrheit? Ach, ihr Brüder, dieser Gott, den ich schuf, war Menschen-Werk und -Wahnsinn, gleich allen Göttern! Mensch war er, und nur ein armes Stück Mensch und Ich: aus der eigenen Asche und Glut kam es mir, dieses Gespenst, und wahrlich! Nicht kam es mir von Jenseits!


“그러므로 나도 피안론자들처럼, 인간 저편에 대한 환상을 가졌었다. 진실로 인간의 피안이었을까? 아, 형제들이며, 내가 창조한 이 신은 다른 모든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작품이자 환상이었다! 이 신은 인간이었고 인간과 자아의 초라한 파편일 뿐이다. 이 유령은 나에게는 나 자신이 타고 남은 재와 불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피안으로부터 나에게 온 것은 아니었다.”

Was geschah, meine Brüder? Ich überwand mich, den Leidenden, ich trug meine

eigne Asche zu Berge, eine hellere Flamme erfand ich mir. Und siehe! Da wich das Gespenst von mir! Leiden wäre es mir jetzt und Qual dem Genesenen, solche Gespenster zu glauben: Leiden wäre es mir jetzt und Erniedrigung. Also rede ich zu den Hinterweltlern. Leiden war’s und Unvermögen – das schuf alle Hinterwelten; und jener kurze Wahnsinn des Glücks, den nur der Leidendste erfährt


“나의 형제들이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고뇌하는 자신을 극복했다. 나는 자신을 태우고 남은 재를 산으로 가져가 더욱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보라! 그때 유령이 나를 피해 달아났다! 이러한 유령을 믿는 것은 이제 나에게 고통이며 굴욕이다. 그러므로 나는 피안론자들에게 말한다. 고통이며 무능이 피안론자들을 창조하였다. 가장 고통을 당하는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덧없는 행복에 대한 환상이었다.”

Müdigkeit, die mit einem Sprunge zum Letzten will, mit einem Todessprunge, eine arme unwissende Müdigkeit, die nicht einmal mehr wollen will: die schuf alle Götter und Hinterwelten. Glaubt es mir, meine Brüder! Der Leib war’s, der am Leibe verzweifelte – der tastete mit den Fingern des betörten Geistes an die letzten Wände. Glaubt es mir, meine Brüder! Der Leib war’s, der an der Erde verzweifelte – der hörte den Bauch des Seins zu sich reden.


“단숨에 결사적인 도약으로, 궁극에 도달하려는 피로감,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못하는 저 불쌍하고 무지한 피로감, 이것이 모든 신과 저편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나의 형제들이여! 내 말을 믿으라! 몸에 절망한 자들은 다름 아닌 몸이었다. 육체가 어리석은 정신의 손가락으로 궁극적인 막을 더듬었다. 나의 형제들이 내 말을 믿으라! 대지에 절망한 자는 바로 몸이었다. 존재의 배를 말하는 것을 들은 자는 육체였다.”

Und da wollte er mit dem Kopfe durch die letzten Wände, und nicht nur mit dem

Kopfe – hinüber zu “jener Welt”. Aber “jene Welt” ist gut verborgen vor dem Menschen, jene entmenschte unmenschliche Welt, die ein himmlisches Nichts ist; und der Bauch des Seins redet gar nicht zum Menschen, es sei denn als Mensch. Wahrlich, schwer zu beweisen ist alles Sein und schwer zum Reden zu bringen. Sagt mir, ihr Brüder, ist nicht das Wunderlichste aller Dinge noch am besten

bewiesen?


“그때 몸은 머리로써, 단순히 머리로는 아니지만, 마지막 벽을 뚫고 ‘저 세계’로 넘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저 세계는 인간에게 잘 감추어져 있다. 저 탈인간화된 비인간적인 세계는 천상의 ‘없음’이다. 그 존재의 배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면, 결코 인간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참으로 모든 존재는 증명하기 어렵고 말을 시키기도 어렵다. 그대 형제들이여! 나에게 말해다오.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가장 기묘한 것이 가장 잘 증명된 것이 아닐까?"

Ja, dies Ich und des Ichs Widerspruch und Wirrsal redet noch am redlichsten von

seinem Sein, dieses schaffende, wollende, wertende Ich, welches das Maß und der Wert der Dinge ist. Und dies redlichste Sein, das Ich – das redet vom Leibe, und es will noch den Leib, selbst wenn es dichtet und schwärmt und mit zerbrochnen Flügeln flattert. Immer redlicher lernt es reden, das Ich: und je mehr es lernt, um so mehr findet es Worte und Ehren für Leib und Erde.


“그렇다. 이 자아와 자아의 모순과 혼란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말한다. 창조하고 의욕하고 평가하는 자아야말로 사물의 척도이자 가치다. 그리고 이 가장 정직한 존재, 이 자아는 몸에 관해 말하고 시를 쓰고 몽상하고 부러진 날개로 퍼덕거릴 때에도 육체를 원한다. 자아는 점점더 정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정직해 지면질수록, 자아는 육체와 대지를 위해 더 많은 말고 존경을 찾아낸다.”

Einen neuen stolz lehrte mich mein Ich, den lehre ich die Menschen: nicht mehr

den Kopf in den Sand der himmlischen Dinge zu stecken, sondern frei ihn zu tragen, einen Erden-Kopf, der der Erde Sinn schafft! Einen neuen Willen lehre ich die Menschen: diesen Weg wollen, den blindlings der Mensch gegangen, und gut ihn heißen und nicht mehr von ihm beiseite schleichen, gleich den Kranken und Absterbenden!


“나의 자아는 새로운 긍지를 나에게 가르쳤고, 나는 그 긍지를 인간들에게 가르친다. 머리를 천상적인 사물의 모래 속에 감추지 않고 머리를 자유롭게 쳐드는 긍지를, 대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상의 머리를! 나는 인간에게 새로운 의지를 가르친다. 인간이 맹목적으로 걸어온 이 길을 원하고, 이 길은 시인한다. 그리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처럼 그 길에서 벗어나 몰래 달아나지 말라고 가르친다.”

Kranke und Absterbende waren es, die verachteten Leib und Erde und erfanden das Himmlische und die erlösenden Blutstropfen: aber auch noch diese süßen und düstern Gifte nahmen sie von Leib und Erde! Ihrem Elende wollten sie entlaufen, und die Sterne waren ihnen zu weit. Da seufzten sie: “O daß es doch himmlische Wege gäbe, sich in ein andres Sein und Glück zu schleichen!” Ihrem Leibe und dieser Erde nun entrückt wähnten sie sich, diese Undankbaren. Doch wem dankten sie ihrer Entrückung Krampf und Wonne? Ihrem Leibe und dieser Erde.


“병들고 죽어가는 자들은 몸과 대지를 경멸하고 하늘과 대속하는 핏방울을 만들어 낸 자들이다. 그러나 이 달콤하고 우울한 독조차, 그들은 몸과 대지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 했지만, 별들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아득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탄식했다: 다른 존재와 행복으로 슬그머니 들어갈 수 있는 천상의 길이 있다면! 그래서 그들은 샛길과 핏빛 음료를 고안해 냈던 것이다. 이 배은망덕한 자들은 자신들의 몸과 대지로부터 벗어났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 벗어남과 경련과 희열조차 누구 덕택인가? 자신의 몸과 대지에 감사해야 한다.”

Milde ist Zarathustra den Kranken. Wahrlich, er zürnt nicht ihren Arten des

Trostes und Undanks. Mögen sie Genesende werden und Überwindende und einen höheren Leib sich schaffen! Nicht auch zürnt Zarathustra dem Genesenden, wenn er zärtlich nach seinem Wahne blickt und mitternachts um das Grab seines

Gottes schleicht:


“차라투스트라는 병든자에게 상냥하다. 진실로 그는 병자 나름의 위안과 배은망덕에서 화내지 않는다. 그들이 병으로부터 회복되고 극복하는 자가 되어, 더 고귀한 몸을 가지길 원할 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병으로부터 회복된 사람이 지난날의 환상에 연연하고 밤중에 몰래 자기 신 무덤 주위를 배회하더라도 화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눈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병이며 병든 육체로 남아있다.”

Vieles krankhafte Volk gab es immer unter denen, welche dichten und gottsüchtig sind; wütend hassen sie den Erkennenden und jene jüngste der Tugenden, welche heißt: Redlichkeit. Rückwärtsblicken sie immer nach dunklen Zeiten: da freilich war Wahn und Glaube ein ander Ding; Raserei der Vernunft war Gottähnlichkeit, und Zweifel Sünde.Allzugut kenne ich diese Gottähnlichen: sie wollen, daß an sie geglaubt werde, und Zweifel Sünde sei.


“시를 쓰고 신을 갈망하는 자들 가운데 언제나 병든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인식하는 자와 덕 중에서 가장 젊은 덕인 정직을 격렬하게 미워한다. 그들은 언제나 암흑시대를 회고한다. 그때는 물론 환상과 신앙이 지금과 달랐다. 이성의 광기는 신과 닮았고 회의는 죄악이었다. 나는 이런 신적인 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것을 바라며 의심은 죄악이길 바란다. 그런 그들이 가장 잘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Wahrlich nicht an Hinterwelten und erlösende Blutstropfen: sondern an den Leib glauben auch sie am besten, und ihr eigener Leib ist ihnen ihr Ding an sich. Aber ein krankhaftes Ding ist er ihnen: und gerne möchten sie aus der Haut fahren. Darum horchen sie nach den Predigern des Todes und predigen selber Hinterwelten. Hört mir lieber, meine Brüder, auf die Stimme des gesunden Leibes: eine redlichere und reinere Stimme ist dies. Redlicher redet und reiner der gesunde Leib, der vollkommene und rechtwinklige: und er redet vom Sinn der Erde. Also sprach Zarathustra.


“진실로 피안과 구제의 핏방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은 그들의 육체를 가장 잘 믿고 있다. 그들 자신의 육체는 물 자체다. 그러나 그들에게 몸이란 병든 것이며, 그들의 피부로부터 기꺼이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므로 죽음의 설교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피안을 설교한다. 오, 나의 형제들이여! 오히려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것이야말로, 좀더 정직하고 좀도 순수한 소리다. 건강한 몸, 완전하고 반듯한 몸은 더 정직하고 더 순수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몸은 대지의 의미를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