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7. (火曜日) “주저躊躇” (<인페르노> 제2곡 1-48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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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영국 시인-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

2021.12.7. (火曜日) “주저躊躇”

(<인페르노> 제2곡 1-48행)

주저躊躇는 위대한 자신을 조각하려는 인간의 필수 마음가짐이다. 주저는 여러 상황들을 조심스럽게 헤아리는 망설임이며, 성급한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상상하고,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조심이다. 단테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죽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지옥에 들어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추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것이다. 단테는, 이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이드>에 등장하는 아이네아스처럼 지하세계로 하강할 참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인페르노> 1곡에서 자신들의 진입을 막는 세 마리 짐승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언덕으로 내려가기를 포기한다. 그들은 해가 진 후, 다시 등산하기를 시도할 것이다. 2곡의 시작은 ‘날이 저물었다’Lo giorno se n’andava로 시작한다. 날이 저물자 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이 구절은 <아이네스> III.147에 등장하는 문구 “밤이 되었다. 땅에서 동물들을 사로잡았다”(Nox erat et terris animalia somnus habebat)에서 힌트을 얻어 기록한 것 같다. 라틴어와 단테는 ‘아니마이’(<아니말리)를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의미한다. 단테는 <인페르노> V.88에서 ‘친절하고 인자한 동물’로 묘사된다. 다음은 제2곡 1-6행의 원문과 번역이다.

1 Lo giorno se n’andava, e l’aere bruno

2 toglieva li animai che sono in terra

3 da le fatiche loro; e io sol uno

1 날은 저물어 가고, 짙은 색을 띤 공기는

2 지상에 있는 동물들을

3 그들의 피곤으로부터 풀어주고 있었다. 나 혼자 만이

4 m’apparecchiava a sostener la guerra

5 sì del cammino e sì de la pietate,

6 che ritrarrà la mente che non erra.

4 전쟁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었다.

6 실수하는 법이 없는 기억이 묘사할

5 여정과 연민에 관한 것이다.

단테 지옥으로 내려가는 자신을 ‘이오 솔 우노’io sol uno, 즉 ‘나 혼자만이’라는 구절로 표현한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와 동행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라 그림자다. 베르길루스는 I.67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Non omo, omo già fui” 즉, “나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단테는 자신만이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점을 3b에서 강조한다. 단테는 <콘비비오>Convivio IV.xxvi.9에서 아이네아스의 지하세계 여행을 “Enea sostenette solo con Sibilla a intrare nello Inferno a cercare dell’anima di suo padre Anchise (아이네아스가 감히 지하세계로 내려가고자 결정하였을 때, 그는 홀로solo 시빌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 안키세스의 영혼을 찾기 위해 내려갔다.” 단테는 분명 로마를 건축한 아이네이스와 일치시킨다. 단테는 새로운 이탈리아를 만들기 위해 살아서는 갈수가 없는 지하세계로 내려가기를 자처한다. 그런 용감한 여행의 조건은 ‘고독孤獨’이다.

단테는 ‘멘테’mente라는 단어를 ‘마음’ 혹은 ‘생각’이란 의미보다는 ‘기억’memoria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단테는 기억을 통해 여행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충실하게 복기할 것이다. 기억할만한 사건의 종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정’cammino다. 단테는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을 꿈이 아닌 실제로 경험하여, 기억에 남겨 기록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민’pietate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고행하는 자들의 고통을 온전히 자신도 느낄 수 있는 영혼을 소유한다. 이 연민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연민’과는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는 ‘연민’pathos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비극적인 운명을 자신의 비극처럼 느끼는 공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테의 ‘연민’은 산 사람으로 지옥과 연옥을 실제로 경험하여, 자신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사는 동안 죄를 범하지 않도록 미리 보여주려는 베아트리체의 연민이다. 그녀의 연민으로, 단테의 여정이 가능해졌다.

연민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위한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행을 감지하고, 그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용기다. 베아트리체는, 사랑하는 단테를 위해, 빛의 여신을 루치아, 그리고 구세주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를 움직여, 이 사소하고 사적인 여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피아타테’는 고대 히브리어의 레훔마 혹은 헤세드에 해당하고, 코이네 그리스어에 등장하는 ‘아가페’agape와 의미가 유사하다. 이 연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헌신적인 사랑, 영어로는 steadfast love에 해당한다. 단테 <신곡>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이끄는 두 주제는 카미노와 피에타테다.

이 구절들은 <신곡>에 등장하는 첫 번째 초사招詞다. 이런 초사는 그리스와 로마 서사시 맨 처음에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인페르노> 제1곡은 <신곡> 전체의 입문이고, <인페르노> 2곡이 33곡으로 구성된 <인페르노>의 입문으로 해석한다. 단테는 자신이 익숙한 그리스-로마 서사시 전통에 따라, 영감을 선사하는 뮤즈신을 소환한다. 뮤즈신 소환은 <푸르카토리오> 제1곡과 <파라디소> 제1곡에서 등장한다. 초사는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7 O muse, o alto ingegno, or m’aiutate;

8 o mente che scrivesti ciò ch’io vidi,

9 qui si parrà la tua nobilitate.

7. 오, 뮤즈 신이시여! 오 높으신 지성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8 내가 본 것을 적으시는 기억이시여!

9 여기에 당신의 숭고함이 드러납니다.

문제는 <신곡>이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거한 문헌인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드>처럼 영감을 주는 신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뮤즈’신은 누구인가? 위 문장에 등장하는 ‘알토 인제노’alto ingegno는 누구인가? 단테는 영감을 주는 두 신, 즉 ‘뮤즈’muse와 ‘알토 인제노’를 소환하는가? 아니면 8행에 등장하는 ‘멘테’까지 세 명을 부르는가? 알토 안제노는 단테가 시를 쓸 영감의 원천으로 신을 별칭인 뮤즈를 불러, 그 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높으신 지성’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환하기 위해, 단테는 그 지성을 자신의 기억인 ‘멘테’에 간직한다. 기억은 단테가 지옥에서 본 것을 글로 옮기는 주체다.

기억을 의미하는 ‘멘테mente’는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인도-유럽어 어근 *men-에서 유래했다. ‘생각’의 의미를 가장 잘 표시하는 성서 구절이 있다. <잠언> 23.7이다.


כִּ֤י ׀ כְּמֹו־שָׁעַ֥ר בְּנַפְשֹׁ֗ו כֶּ֫ן־ה֥וּא אֱכֹ֣ל וּ֭שְׁתֵה יֹ֣אמַר לָ֑ךְ וְ֝לִבֹּ֗ו בַּל־עִמָּֽךְ׃

키 커모 샤아르 버-나프쇼 켄 후 에콜 우슈테 요말 락 워-립보 발-임막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먹어라! 마셔라’라고 당신에게 말하지만, 그의 마음은 당신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생각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관찰이며, 자신이 시간을 할애할 만한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마로 ‘지성’ingegno다. ‘지성’이란 그런 사고능력을 통해 자신의 심연안에 있는 ‘자발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영혼’과 접촉하여 발휘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인간의 개성, 숭고함을 드러내는 유일한 도구다. 단테는 자신이 본 것을 신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통해 적는 시는, 신의 ‘숭고함’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단테는 ‘숭고함’nobilitate에 대해 <향연>Convivio IV.xii.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숭고함이란 이 단어는 개체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완벽한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이 시에게 말하는 내용은, 신의 영감을 받아 기억에 간직한 것으로, 어느 문장이나 단어로 완벽하게 간결하게 표현된 신의 영감이란 사실을 독자들에게 대담하게 알린다.


단테는 자신이 시작한 이 여정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에게 자신이 지하세계로 하강하는 여행을 감행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그보다 먼저 지하세계를 여행은 아이네아스와 바울과 비교하여,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네아스와 바울을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 교회를 창건한 인물들이다. 단테는 스스로 묻는다. “내가 왜, 그곳에 내려가야 하는가? 누가 정했단 말인가? 왜냐하면 나는 아이네아스도 아니고 바울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로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단테가 내려갈 수 있는 자격은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그것은 신의 은총이자 신의 소명이다. 단테는 로마제국과 교회의 모든 영광은 신의 은총의 결과라고 생각하였고, 자신이 인페르노로 내려갈 수 있는 이유도 사적이며 비공식적이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10 Io cominciai: «Poeta che mi guidi,

11 guarda la mia virtù s’ell’ è possente,

12 prima ch’a l’alto passo tu mi fidi.

10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를 인도하시는 시인이시여!

12 당신이 나에게 이 어려운 길을 의뢰하기 전에.

11 나의 덕이 힘이 있는지 살펴보시오.


13 Tu dici che di Silvïo il parente,

14 corruttibile ancora, ad immortale

15 secolo andò, e fu sensibilmente.

13. 당신은 실비우스의 아버지(아이네아스)에 대해 기록했다.

14. 그는 저 멀리 썩어져 가는 육체를 가지고

15. 모든 감각을 지니고 불멸의 경지로 들어갔다.


16 Però, se l’avversario d’ogne male

17 cortese i fu, pensando l’alto effetto

18 ch’uscir dovea di lui e ’l chi e ’l quale

16 그러나 만일 모든 악의 적이

18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인지로부터 산출될

17 최고 효과를 고려하여,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19 non pare indegno ad omo d’intelletto;

20 ch’e’ fu de l’alma Roma e di suo impero

21 ne l’empireo ciel per padre eletto:

19 그것은 지성을 가진 사람에게 무가치해 보인다.

20 왜냐하면 그는 가장 높은 하늘에서 선택되어

21 영광스러운 로마와 그녀의 제국의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22 la quale e ’l quale, a voler dir lo vero,

23 fu stabilita per lo loco santo

24 u’ siede il successor del maggior Piero.

22 이 창건된 두 가지에 대해, 우리가 진리를 말한다면,

23 거룩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24 그곳은 위대한 베드로의 후손들의 자리다.


25 Per quest’ andata onde li dai tu vanto,

26 intese cose che furon cagione

27 di sua vittoria e del papale ammanto.

25 당신이 그에게 영광을 부여한 이 여행 동안

26 아이네아스는 자신과 승리와

27 교황의 의복에 대한 말을 들었다.


28 Andovvi poi lo Vas d’elezïone,

29 per recarne conforto a quella fede

30 ch’è principio a la via di salvazione.

28 후에 선택된 그릇(바울)이 거기로 가서

29 우리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져올 것이다

30 그것을 통해 구원을 위한 길의 시작이다.


31 Ma io, perché venirvi? o chi ’l concede?

32 Io non Enëa, io non Paulo sono;

33 me degno a ciò né io né altri ’l crede.

31 그러나, 내가, 왜 가야 하는가? 누구 그것을 허락했는가?

32 나는 아이네아스도 아니고, 나는 바울도 아니다.

33 나도 그 누구도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34 Per che, se del venire io m’abbandono,

35 temo che la venuta non sia folle.

36 Se’ savio; intendi me’ ch’i’ non ragiono».

34 그러므로, 만일 내가 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다면,

35 나는 그 모험이 미친 짓이라 생각하니 두렵다.

36 당신은 현명하니,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할 것이다.”


37 E qual è quei che disvuol ciò che volle

38 e per novi pensier cangia proposta,

39 sì che dal cominciar tutto si tolle,

37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결심했다가 그것을 안하려고 결심하는 사람처럼,

38 재고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변경합니다.

39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완전히 그만둡니다.


40 tal mi fec’ ïo ’n quella oscura costa,

41 perché, pensando, consumai la ’mpresa

42 che fu nel cominciar cotanto tosta.

40 나는 어두운 언덕 위에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41 왜냐하면, 생각을 통해

42 처음에 너무 빠르게 시작한 그 일을 그만둡니다.

단테의 겸손함을 압도하는 신의 소명은 ‘신곡’의 중요한 주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소심함을 꾸짖는다. 그리고 신의 은총을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왜 단테에게 왔는지 그 경위를 설명한다. “하늘 법정에서 세 명의 여인이 그를 아껴 중재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단테를 불쌍히 여겨 성 루치아에게 그를 도우라고 명령하였다. 성 루치아는 다시 단테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에게 부탁하였다.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지옥을 거쳐 연옥에 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부탁하였다. 그녀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잘 통과하도록 길 안내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베아트리체는 후에 천국에서 단테를 인도할 것이다. 단테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로마 제국의 창건자인 아이네아스와 로마 교회의 창립자인 바울과 함께, 세 번째 인페르노를 목격하는 인물이 된다. 단테가 보였던 겸손은 세 여인의 은총으로 위대한 명예로 전환되었다.

인생은 딜렘마다. 그 딜렘마는 일상이며, 지금이다. 우리는 ‘여기’라는 시간과 ‘지금’이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생존한다. 내가 그 틀을 매일 새롭게 점검하고 변모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어제와 똑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과거의 나’, ‘진부한 나’로 남게 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를 내가 간절히 원하는 ‘자기신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은 전략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내가 오늘 하는 행동이 미래의 시점에서 내 자신에게 감동적인가? 그 행위는 내가 도달하고자하는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가?

인류는 자기신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들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야기를 비극, 희극 그리고 서사시로 구분한다. 인류는 자신들이 살았던 파란만장하고 흥미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여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것을 충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를 말한다. ‘이야기의 전개의 구성’(뮈토스), 인물(에토스), 말, 이성, 무대장치, 그리고 음악이다. 비극은 관객들에게 공포와 연민을 가르쳐, 자신이라는 과거, 이기심, 그리고 습관으로부터 탈출하라는 훈련이다. 관객들이 비극을 관람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나오는’는 엑스터시를 경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누가 배우인지, 그 배우가 하는 말, 혹은 이야기의 이성적인 전개, 화려한 무대장치나 스펙터클한 분장, 혹은 감동적인 노래와 춤이 아니다. 그것은 ‘뮈토스’다.

‘뮈토스는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을 ‘특정한 행동들을 배치’라고 정의한다. 비극은 사람에 관한 재현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들과 삶에 관한 재현이다.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달려있다. 인생의 목적은 단순히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렸다,


43 «S’i’ ho ben la parola tua intesa»,

44 rispuose del magnanimo quell’ ombra;

45 «l’anima tua è da viltade offesa;

43 “만일 내가 당신의 말을 옳게 이해했다면,”

44 위대한 영혼을 가진 그림자가 대답하였다.

45 “당신의 영혼은 비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46 la qual molte fïate l’ omo ingombra

47 sì che d’onrata impresa lo rivolve,

48 come falso veder bestia quand’ ombra.

46 비겁은 종종 사람을 너무 무겁게 압박하여

47 그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시도로부터 그를 돌이킵니다.

48 그것은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놀라는 짐승과 같다.

단테의 주저는 돌파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비겁이었다. 어떻게 단테는 그 비겁을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