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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넘어진 나무>
2021.12.4. (土曜日) “넘어진 나무”
거대한 나무가 자신의 수명을 감지하고 자신을 든든하게 지탱해준 뿌리조차 드러낸 채 산책길을 막으며 가로로 누었다. 이 나무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장렬하게 넘어졌다. 한달 전부터 내 산책길을 가로막는 스핑크스가 되어 매일 아침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너는 순간을 살고 있느냐?”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들은, 누구나 죽음이란 선고를 받고 태어난다. 아마도 인간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생물이다. 인간은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사후에 남을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여 남겼다.
저 쓰러진 나무는 적어도 100년 이상을 이 숲에서 묵묵히 살았다. 그동안 별 꼴을 다 본, 나무는 마지막 가는 길에 간직한 비밀들을 보여주며 생을 마감하였다. 드러낸 몸뚱이에, 자신의 혈관, 신경세포, 숨 쉬는 경로, 그리고 일생동안 자양분을 빨아들여 하늘 높이 올렸던 뿌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미 자신이 돌아갈 땅에 모든 잎들과 가지들을 떨어뜨렸다. 앞으로 하염없이 내릴 눈 속에서 겨울을 조용하게 날것이다.
이 존재는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나무’라는 역할을 맡은 배우俳優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나무 역할을 맡겼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생명을 부여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지나고 보면 순간을 살기에 아름답다. 영원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상징이기에 추하다. 이 야산을 호령하던 가장 높은 나무가, 이젠 자신의 고향인 땅으로 돌아가려고 누웠다.
마감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그것은 한 순간에 부러질 수 있는 갈대와 같다. 길가메쉬는 영생을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 착각으로부터 깨어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영생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관을 벗고 상복을 착용한 후에, 지하세례로 내려간다. 후대 로마 영웅 아이네아스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지하세계 여행의 효시다. 영생을 추구하러 지하세계로 내려간 길가메시는 영생을 획득한 유일한 인간인 ‘우트나피슈팀’을 만난다. 우트나피슈팀은 헛되이 영생을 추구하는 길가메쉬에게 죽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원전 14세기경 기록된 <길가메쉬 서사시> 표준판본 제10토판 297-307행이다. 다음은 아카드어 음역과 한글 번역이다.
297 atta taddallip mīna talqu
아따 타달립 미나 탈쿠
298 ina dalāpi tunaḫḫa ramānka
이나 달라피 투나하 라만카
299 širʾānī(SA.MEŠ)-ka nissāta tumalla
시르아니카 닛사타 투말라
300 ruqūtu tuqarrab ūmî(U4..MEŠ)-ka
루쿠투 투카라브 우미카
301 amēlūtum ša kīma(GIM) qanê(GI) api ḫāṣipi x šūmši
아멜루툼 샤 키마 까네 아피 하찌피 x 슘쉬
302 eṭla damqa arda(KI.SIKIL)-ta damēqtum
에뜰라 담까 아르닷타 다메끄툼
303 urruḫiš šunu-ma išallal mūti
우루히쉬 슈누-마 이샬랄 무티
304 ul mamma ša mūtu immar
울 맘마 샤 무투 이말
305 ul mamma ša mūti immar pānīšu
울 맘마 샤 무티 이말 파니슈
306 ul mamma ša mūti rigmāšu išemmi
울 맘마 샤 무티 리그마슈 이솀미
307 aggu mūtum ḫāšipo amēlū(LÚ)-tim
아구 무툼 하쉬포 아멜루팀
297 이보시오! 당신은 잠을 설치면서, 무엇을 획득하였습니까?
298 당신은 끊임없는 노동으로 당신을 축내고 있습니다.
299 당신은 당신의 무릎을 고통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300 그리하여 당신 삶의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301 인간은 대나무 숲의 갈대와 같이, 순간에 부러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302 잘생긴 젊은이, 어여쁜 아낙네
303 모두 그들의 최고의 순간에, 죽음이 그들을 낚아 채 갈 수 있습니다.
304 그 누구도 죽음을 볼수 없습니다.
305 그 누구도 죽음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306 그 누구도 죽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307 잔인한 죽음은 인간을 비참하게 자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제10토판 297-307행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멘토다. 죽음 앞에서 비천한 생각이나 과도한 욕심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철학한다’는 말은, 매일 매일 어떻게 죽을지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음은 인간에게 결코 실패한 적이 없는 예언이다. 겨울은 죽음을 묵상할 최적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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