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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산비탈 나무들>
2021.12.29. (水曜日) “격格”
내가 아침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침묵을 수련하며 묵묵하게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기 위해서다. 나무는 언제나 의연하고 조용하다. 비바람이 불면 자신을 비워, 술술 지나가게 만들고, 눈이 내리면, 자신의 가지에 소복하게 쌓여도 뒤뚱거리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이 침묵이 나무의 격格이다. 격이란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에 뿌리를 내려, 그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자양분으로 더 무한한 하늘을 향해 언제나 돌진하는 용기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천지지변이 와도 움직이는 적이 없다. 그리고 힘의 원천인 뿌리는 지구 중심을 정확하게 향하고 있다.
우주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운명을 알고 그 운명을 위해 자랑도 하지 않고 목숨을 자연스럽게 바친다. 그것이 ‘격’이다. 잡초도, 꽃도, 나무도, 강도, 산도, 고라니도, 다람쥐도, 독수리도, 야생개도, 고양이도, 쥐도, 백조도, 참새도 모두 나름의 격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무생물들과 생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격이 없는 구성원이 있다. 하루 종일 눈치를 보는 동물인 인간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발휘하고, 타인의 개성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인간만이 자신이 아닌 것을 되려한다. 자기 마음을 탐구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외부와 경쟁하다 지쳐, ‘인생이 이럴 줄 알았어!’라고 불평하면서 생을 마감하기 일쑤다.
소수의 인간은 격이 다르다. 그런 인간을 우리는 ‘숭고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살다 보면, 가끔 아니 드물게 격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녀)는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주위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이 매력은, 흉내와 시기가 남무 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오롯이 정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자신만의 길을 내서, 주위 사람들을 그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매력을 스스로 찾도록 친절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부탁한다. 그런 격을 영어로는 ‘클래식’classic이라고 부른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는 야훼신의 자기 정체성처럼 ‘나는 나다’ 혹은 ‘나는 내가 되어야할 그 삶이 되고 있다’라고 덤덤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녀 자신의 본모습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언제나 편안하고 감동스럽다. 무엇을 억지로 드러내려고 치장治粧하지 않는다. 그런 요란한 치장은 그 대상이 흔하고 천하고 공허하다는 증거다. 그것은 내면의 공허를 외면의 요란으로 감추려는 열등감이다. 이런 시끄러운 열등이 우월이라고 광고하는 세상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은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가야할 곳을 안다. 나무가 저 높은 하늘을 갈망하고 그 누구의 눈치로 보지 않고 정진하는 것처럼, 항상 희망차다. 그는 마치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과 같다. 개울물에게 방해란 없다. 커다란 바위, 작은 나무, 약간의 늪지대 등등...이 모든 것은 그가 갈수 있고 가야만 하는 여정의 일부다. 이것들은 개울물을 정화시켜 주고 속도를 북돋아 주는 도움일 뿐이다. 그런 사람은 저 야산의 홀로 서있는 나무와도 같다.
더 나은 자신을 수련하기고 작정한 사람은 세부류다. 숭고한 자, 착한 자, 그리고 포기한자. 포기한 자는 자신의 결심을 지속할 수 없는 속물들이다. 그런 것이 인간적이라고 자화자찬하고, 그런 부류의 동물들과 어울린다. 착한 자는, 자신의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자발적이며 운명적이지 않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대게 명예, 권력, 혹은 돈을 위해 착한 일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숭고한 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어린아이처럼 집중한다. 선과 악이라는 구별을 초월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을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인류를 위한 일이 되는 사람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여덟 번째 글 <언덕에 심겨진 나무에 관하여Vom Baum am Berge>에서 한 나무에 관해 말한다. 그 나무은 숭고를 지향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저녁에 ‘얼룩 황소’라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는 한 젊은이가 계곡 아래를 걱정스럽게 응시하며, 한 나무에 기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 젊은이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 저 계곡 밑에 위치한 마을을 응시한다. 그가 기댄 나무는 튼튼하고 깊이 뿌리 박혀 아무리 손으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 나무는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나무가 저 우주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 나무의 뿌리는 정확하게 지구의 중심으로, 아래로, 어둠으로, 심연으로 내려간다. 그 보이지 않는 근원이 나무의 품격을 만든 것이다. 태곳적이 바람에 의해 씨앗이 날라 왔다. 그 이름 모를 야산의 모서리에 안착하였고, 바람, 공기, 안개, 비, 햇빛을 통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잎과 가지를 내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통해 이렇게 우뚝 선 나무가 되었다. 구도자는 그런 나무와 같다. 나무의 특징은 단순함이다. 자신의 뿌리로부터 중력을 거슬려 올린 생명의 환희를 간직하고 항상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러 낸다. 단순함은 궁극의 사치이며 최선의 아름다움이다.
<요한복음> 3장 8절은, 바람을 인간이 획득해야할 궁극적인 자기자신인 성령을 의미하는 물체로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τὸ πνεῦμα ὅπου θέλει πνεῖ, καὶ τὴν φωνὴν αὐτοῦ ἀκούεις,
ἀλλ’ οὐκ οἶδας πόθεν ἔρχεται καὶ ποῦ ὑπάγει·
οὕτως ἐστὶν πᾶς ὁ γεγεννημένος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영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분다. 그리고 당신은 그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이처럼, 영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자는 그렇다.”
<요한복음> 3.8
이 영혼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겉에서는 볼 수 없다. 저 깊은 땅속에 있지만, 드러나는 것을 지탱해주고 자영분을 주는 전부다. 미국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립>이란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부러움은 무식이고 흉내는 자살행위입니다. 인간은 그것이 좋든지 싫든지 자기 자신을 자신의 몫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드넓은 우주는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양가 있는 어떤 곡물의 낱알도 자신에게 주어진 땅의 작은 지면에 주어진 토양을 통하지 않고는 생겨나질 않습니다.”
‘격’은 저 보란 듯이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들 드러내지 않고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기꺼이 숲을 이루려는 겸손도 지니고 있다. 다음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권 8단란인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에 관하여’라는 글의 원문과 번역이다. 인생의 도반들이 조용히 이 글을 읽고 원기를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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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Vom Baum am Berge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에 관하여
Zarathustra’s Auge hatte gesehn, dass ein Jüngling ihm auswich. Und als er eines Abends allein durch die Berge gieng, welche die Stadt umschliessen, die genannt wird “die bunte Kuh“: siehe, da fand er im Gehen diesen Jüngling, wie er an einen Baum gelehnt sass und müden Blickes in das Tal schaute. Zarathustra fasste den Baum an, bei welchem der Jüngling sass, und sprach also: Wenn ich diesen Baum da mit meinen Händen schütteln wollte, ich würde es nicht vermögen. Aber der Wind, den wir nicht sehen, der quält und biegt ihn, wohin er will. Wir werden am schlimmsten von unsichtbaren Händen gebogen und gequält. Da erhob sich der Jüngling bestürzt und sagte: “ich höre Zarathustra und eben dachte ich an ihn.“
차라투스트라의 눈은 한 젊은이가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가 저녁에 ‘얼룩소’라는 불리는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홀로 걷고 있었다. 그가 산책하던 중, 그는 이 젊은이가 계곡을 피곤하게 내려다보는 한 나무에 기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젊은이가 앉아 있는 장소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내가 이 나무를 나의 손으로 흔들기를 원하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를 괴롭혀 구부린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구부려지고 괴롭혀진다.” 그런 후, 젊은이는 혼미하여 일어나 말했다.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듣는다. 지금 나는 그를 생각한다.”
Zarathustra entgegnete: “Was erschrickst du desshalb?-Aber es ist mit dem Menschen wie mit dem Baume. Je mehr er hinauf in die Höhe und Helle will, um so stärker streben seine Wurzeln erdwärts, abwärts, in’s Dunkle, Tiefe, -in’s Böse.” “Ja in’s Böse! rief der Jüngling. Wie ist es möglich, dass du meine Seele entdecktest?” Zarathustra lächelte und sprach: “Manche Seele wird man nie entdecken, es sei denn, dass man sie zuerst erfindet.”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왜 너는 그 이야기로 놀라는가? 인간도 나무와 같다. 그가 더 높이 그리고 밝은 빛으로 상승하기를 추구하는 만큼, 자신의 뿌리는 더 강렬하게 아래로 향해야 한다. 어둡고 깊은 곳으로, 악으로 가야한다.” 젊은이가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악으로! 어떻게 당신이 나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차라투스트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 누구도 영혼들을 드러낼 수 없다. 그는 먼저 그것을 발견發見해야한다.”
“Ja in’s Böse! rief der Jüngling nochmals. Du sagtest die Wahrheit, Zarathustra. Ich traue mir selber nicht mehr, seitdem ich in die Höhe will, und Niemand traut mir mehr, — wie geschieht diess doch? Ich verwandele mich zu schnell: mein Heute widerlegt mein Gestern. Ich überspringe oft die Stufen, wenn ich steige, — das verzeiht mir keine Stufe. Bin ich oben, so finde ich mich immer allein. Niemand redet mit mir, der Frost der Einsamkeit macht mich zittern. Was will ich doch in der Höhe. Meine Verachtung und meine Sehnsucht wachsen mit einander; je höher ich steige, um so mehr verachte ich Den, der steigt. Was will er doch in der Höhe? Wie schäme ich mich meines Steigens und Stolperns! Wie spotte ich meines heftigen Schnaubens! Wie hasse ich den Fliegenden! Wie müde bin ich in der Höhe!”
“그렇습니다. 악으로!”라고 젊은이가 다시 한번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당신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높은 곳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나는 너무 빨리 변합니다. 나는 오늘 나의 어제를 부정합니다. 나는 종종 내가 오른 계단들을 건너뜁니다. 어떤 계단도 그런 행동을 일삼는 나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나는 항상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고독의 서리가 나를 떨게 만듭니다. 내가 그 정상에서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올라가며 비틀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창피한지! 나는 거칠게 헐떡거리는 내 모습을 얼마나 비웃는지 모릅니다! 날아다니는 것들이 얼마나 미운지! 정상에 있으면 얼마니 피곤한지!”
Hier schwieg der Jüngling. Und Zarathustra betrachtete den Baum, an dem sie standen, und sprach also: Dieser Baum steht einsam hier am Gebirge; er wuchs hoch hinweg über Mensch und Tier. Und wenn er reden wollte, er würde Niemanden haben, der ihn verstünde: so hoch wuchs er. Nun wartet er und wartet, — worauf wartet er doch? Er wohnt dem Sitze der Wolken zu nahe: er wartet wohl auf den ersten Blitz?
여기에서 젊은이는 조용해졌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들 옆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여기 산비탈에 외롭게 서 있다. 이 나무는 인간과 짐승들을 굽어볼 정도로 높이 자라났다. 만일 그 나무가 말하기를 원한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 자랐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은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러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이 나무는 구름 거처와 가까이 살면서 최초의 번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Als Zarathustra diess gesagt hatte, rief der Jüngling mit heftigen Gebärden: “Ja, Zarathustra, du sprichst die Wahrheit. Nach meinem Untergange verlangte ich, als ich in die Höhe wollte, und du bist der Blitz, auf den ich wartete! Siehe, was bin ich noch, seitdem du uns erschienen bist? Der Neidauf dich ist’s, der mich zerstört hat!”-So sprach der Jüngling und weinte bitterlich. Zarathustra aber legte seinen Arm um ihn und führte ihn mit sich fort.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젊은이는 격렬한 몸짓을 하며 외쳤다. “그렇습니다. 차라투스트라여! 당신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나는 높이 올라가기를 열망하면서, 나 자신이 하강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기다렸던 번개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난 이후, 나는 지금 무엇입니까? 당신에 대한 질투가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며 슬피 울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그를 감싸 안고 함께 길을 떠났다.
Und als sie eine Weile mit einander gegangen waren, hob Zarathustra also an zu sprechen: Es zerreisst mir das Herz. Besser als deine Worte es sagen, sagt mir dein Auge alle deine Gefahr. Noch bist du nicht frei, dusuchstnoch nach Freiheit. Übernächtig machte dich dein Suchen und überwach. In die freie Höhe willst du, nach Sternen dürstet deine Seele. Aber auch deine schlimmen Triebe dürsten nach Freiheit. Deine wilden Hunde wollen in die Freiheit; sie bellen vor Lust in ihrem Keller, wenn dein Geist alle Gefängnisse zu lösen trachtet.
한동안 나란히 걸어간 후에, 차라투스트라가 이같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내 가슴이 찢어 지는듯하다. 네가 그것을 말한 것보다, 너의 눈이 네가 맞이할 위험을 말한다. 너는 아직 자유롭기 못하고, 여전히 자유를 찾고 있다. 자유를 향한 갈망 때문에, 너는 밤을 지새우고 긴장한다. 너는 자유로운 정상에 오르기를 열망한다. 너의 영혼은 별을 갈망한다. 그러나 너의 사악한 충동도 자유를 갈망한다. 너의 들개들은 자유를 바란다. 너의 정신이 모든 감옥을 부수어 열려할 때, 들개들은 지하실에서 기뻐하며 짖어 댄다.
Noch bist du mir ein Gefangner, der sich Freiheit ersinnt: ach, klug wird solchen Gefangnen die Seele, aber auch arglistig und schlecht. Reinigen muss sich noch der Befreite des Geistes. Viel Gefängniss und Moder ist noch in ihm zurück: rein muss noch sein Auge werden. Ja, ich kenne deine Gefahr. Aber bei meiner Liebe und Hoffnung beschwöre ich dich: wirf deine Liebe und Hoffnung nicht weg!
Edel fühlst du dich noch, und edel fühlen dich auch die Andern noch, die dir gram sind und böse Blicke senden. Wisse, dass Allen ein Edler im Wege steht.
내가 보기에 너는 아직 자유를 구상하고 있는 포로다. 아, 그런 포로자들의 영혼은 영악하고 교활하고 천하다.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화하여야 한다. 그의 내면에서 아직도 많은 감옥과 곰팡이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더 순수해져야 한다. 그래. 나는 너의 위험을 안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너에게 부탁한다. 너의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마라! 너는 아직도 자신을 숭고하다고 여긴다. 너에게 분노하고 악의에 찬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조차, 너를 숭고하게 여긴다. 숭고한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라!
Auch den Guten steht ein Edler im Wege: und selbst wenn sie ihn einen Guten nennen, so wollen sie ihn damit bei Seite bringen. Neues will der Edle schaffen und eine neue Tugend. Altes will der Gute, und dass Altes erhalten bleibe. Aber nicht das ist die Gefahr des Edlen, dass er ein Guter werde, sondern ein Frecher, ein Höhnender, ein Vernichter. Ach, ich kannte Edle, die verloren ihre höchste Hoffnung. Und nun verleumdeten sie alle hohen Hoffnungen. Nun lebten sie frech in kurzen Lüsten, und über den Tag hin warfen sie kaum noch Ziele.
심지어, 숭고한 사람은 선한 사람에게도 방해가 된다. 그들이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부를 지라도, 그들은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숭고한 자는 새로운 것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길 원한다. 선한 자는 오래된 것을 원하고 오래된 것이 간직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것이 숭고한 자의 위험은 아니다. 그가 선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뻔뻔스러운 자, 냉소하는 자, 그리고 무효화하는 자가 되기에 위험하다. 아! 나는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숭고한 자들을 알았다. 그런데 그때 그들은 모든 높은 희망을 비방했다. 그들은 보잘것이 없는 쾌락에 빠져 거만하게 살았고 하루를 넘어서는 어떤 목표도 가지지 않았다.
“Geist ist auch Wollust” — so sagten sie. Da zerbrachen ihrem Geiste die Flügel: nun kriecht er herum und beschmutzt im Nagen. Einst dachten sie Helden zu werden: Lüstlinge sind es jetzt. Ein Gram und ein Grauen ist ihnen der Held. Aber bei meiner Liebe und Hoffnung beschwöre ich dich: wirf den Helden in deiner Seele nicht weg! Halte heilig deine höchste Hoffnung! — Also sprach Zarathustra.
그들은 ‘정신도 쾌락이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의 날개는 부러졌다. 이제 그들의 정신은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이것저것 갉아 먹으며 몸을 더럽힌다. 한때 그들은 영웅이 되고자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들은 탕아가 되었다. 그들에게 영웅은 원망과 공포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너에게 간청한다. 너의 영혼 속에서 영웅을 버리지 말아라! 너의 최선의 희망을 거룩하게 간직하여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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