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木曜日) “우아優雅한 신석기新石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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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신석기 시대>

조원재 작가 (1989-)

2021.12.2.(木曜日) “우아優雅한 신석기新石器”

지난 화요일 단테수업에 도자기를 만드는 조원재작가가 조인하였다. 일주일 전 쯤, 영화를 제작하는 양익제 감독이 단테 <인페르노> 수업에 조작가를 추천하였다. 양감독인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추천하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조작가는 5년전 건명원 제자였다. 대한민국의 로댕 혹은 자코메티가 되기 위해서는, 홀로, 낙타와 사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여, 자신이 지닌 유일무이한 신성을 내재화하기 위해, 삼 단계 훈련을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을 극복하는 예술적인 인간,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연마하는 인간이 거쳐야할 세 단계를 동물과 비유하여 말했다. 첫 번째는 ‘낙타’의 단계다. 낙타는 아직 자신이 걸머져야할 짐을 모르는 초인을 위한 초보자다. 누군가 그에게 짐을 지워, 얼마만큼 견뎌낼 수 있는지 수련해야한다.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측정하기 위해, 도저히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려고 시도해야한다. 그녀가 가야할 곳은 사람들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자신을 오롯이 응시할 수 있는, 자신만이 존재하는 ‘사막’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 짊어지기를 수련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 자부, 그리고 포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조작가가 그런 ‘사막’과 같은 작업실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매일 분투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사자’의 단계다. 사자는 타인이 시키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온전한 자유를 언제나 어디서나 만끽한다. 그녀는, 이제 사자다. 그런 자유를 시샘하고 방해하는 괴물이 등장한다. 이 괴물은 철지난 사상, 관습, 법, 혹은 도덕이며 그럴싸한 철학과 종교로 유혹한다. 이 괴물이 바로 용이다. 용은 그녀를 덮쳐, 상식, 중용, 예의, 보편적 진리, 관습, 당위, 다수결, 교리, 사상과 같은 규정되고 출구가 없는 상자에 가두려한다. 그 목적은 그녀를 질식시켜, 공장에서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노예로 만들 셈이다. 용의 모토는 ‘두 졸스트’du sollst, 즉 ‘너는 해야만 한다!’다. 용은 <욥기> 41장에 등장하는 이떤 빛도 통과할 수 없는 촘촘한 황금 비늘로 온 몸을 감쌌다. 움직일 때다,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사람을 매혹하기고 굴복시킨다.

‘두 졸스트’는 인간이 되길 포기한 인간말종들이 무작정 추종하는 삶의 행태다. 사자는 ‘두 솔스트’에 대항하여 감히 ‘아니오!’라고 말해야한다. 그녀는 자신을 억압하려는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항할 용기를 소유해야한다. 그리고 ‘이히 빌’ich will이라고 말해야한다. 그녀가 ‘이히 빌’을 감히 말할 때, 그녀는 비로소 그녀가 된다. 그전까지는 부모가 원하는,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대중에 즐거워하는 적당한 인간이었다면, 이제는 자기-자신에게 감동적이며, 동시에 타인에게 친절한 독창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사자는 ‘거룩한 부정’heiliges Nein-sagen이다.

세 번째는 ‘아이’의 단계다. 사자는 할 수 없고 아이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자는 자신이 공격해야할 외부의 대상에 몰입하지만, 어린아이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 가지에 몰입한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녀는 자신을 응시하여, 그 안에서 자신의 유일무이한 생각을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표현한다. 이것이 다른 것이 하나도 섞이지 않는 순수純粹다. 순수는, 말인에게 어설프고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깨우친 자들의 겉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하게 표현하기에,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여기에서 자신이 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전 자신까지도 완벽하게 망각忘却한다. 어린 아이는 매순간이 새로운 시작始作이다. 과거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기에 새로운 시작이며, 미래의 완성이다.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은 놀이다. 자신이 하는 것을 의무나 체면 때문에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는,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한다. 어린아이는 한번 시작한 일에 금방 싫증을 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자발적으로 저절로 진행된다. 그 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한 경지에 들어가는 최초의 움직입니다. 이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하지만, ‘거룩한 긍정’heilges Ja-sagen이다.

조각가는 그동안 자신이 스스로 마련한 자궁에서 자신을 탄생시키려 부단히 노력해왔다. 나는 일주일전 조작가에서 전화를 걸었다:

나: “원재 잘 지내지? 거의 오년만인 것 같아. 네 모습이 궁금해!”

조작가: “악...교수님. 저 잘 지내요. ‘우아한 신석기’ 때문에 연락 못 드렸어요.”

(나는 ‘우아한 신석기’란 용어를 금방 접수할 수 없었다. 속으로 신석기시대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구나 생각했지만, ‘우아한’이란 형용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조작가는 ‘우아한 신석기’라는 토기작품으로 2020년 익산공예대전 대상을 받았다)

나: “내가 단테 <신곡> 중 Inferno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네가 오면 좋겠어. 양감독이 너를 추천했어. 원재가 얼마나 변했을까?”

조작가: “지금 헤매고 있어요. ‘우아한 신석기’ 이후에 뭘 해야 할 지손에 잡히지 않아요.

(헤매지 않는 것은 진부다. 그 방황이, 그 길 잃음이 지름길이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와 텔레파시가 통했는가 보다)

나: “잘 됐다. Inferno를 읽으면서 더 헤매면 좋겠어. 그것이 최선이자 지름길이야.”

(나는 Inferno에 등장하는 ‘빛’ 은유를 원재가 잘 살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토기는 불과 빛이 흙을 가지고 유희하는 예술이니까)

지난주 화요일 저녁 조각가가 더코라에 왔다. 정성스럽게 리본으로 장식한 나무 상자하나를 들고 왔다. 자신이 요즘 몇 해동안 몰입하고 있는 토기였다. 나는 조작가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당황한 조작가는 ‘우아한 신석기’라는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전에는 아무런 흠이 없는 백자白瓷 작업(백색음유)에 매달려왔지만, 몇 해부터, 인류가 처음으로 도기를 만들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토기 작업(우아한 신석기)백자에 몰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흙, 불, 공기, 유약, 그리고 인위적인 무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토기에 대해 설명하였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흙을 가지고 불의 신비한 도움을 받아 토기를 만드는 행위는,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숭고한 노력이다.


집으로 돌아와 선물상자를 풀었다. ‘우아한 신석기 토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도, 이 토기의 우아함에 놀라, 자신의 아이폰에 사진을 담았다. 조작가가 ‘신석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구석기’는 250만년 전에 시작하여 기원전 8500년까지를 사용한 도구를 기반으로 붙여진 기간이다. 인간은 아직 유인원이었거나,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깊이 관찰하고 과거을 반성하는 ‘호모 사피엔스’였지만, 오늘날 우리와 같인 문명과 문화를 구가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아니었다.

‘신석기新石器’는 구석기와 다르다. 구석기 시대인간은 자연이 마련한 편리한 은신처인 동굴에 살았다. 이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연명하였고,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돌과 뼈로 기본적인 도구를 만들었다. 그 도구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소품이 아니라, 가능하면 날카롭고 강력하게 만들어, 사냥할 동물들을 효율적으로 해치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유인원들이나 다른 지역 출신 호모 사피엔스를 물리치기 위한 무기였다.

기원전 8500년경 인간이 돌을 가지고 소품을 만드는 방식에 혁명이 일어났다. 인류는 기원전 32000년 전부터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특별한 동굴을 벽화로 장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쇼베동굴, 라스코동굴, 알타미라동굴에 그린 동물들은 샤냥이나 식용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들과 함께 자연을 공유하는 지구의 동료 서식자로 표현하였다. 기원전 만년경, 소위 빙하기가 끝나 얼어붙은 땅이 드러나, 인류는 지하 동굴이 아니라 지상에 자신들의 유한한 삶을 응시하는 특별한 의례를 시작한다. 최근 발견한 터키의 궤베클리 테페에서 최초의 지상 신전이 등장하였다.

농업의 발견은 단순히 인간의 식탁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인류문명의 기초인 ‘도시’와 ‘문자’의 등장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학자들은 흔히 농업이 인류에게 여가를 선물했고, 여가를 통해 문자, 금속가공, 그리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계급이 생겼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식의 주장은 다음 두 가지 이념에 기초한다. 첫째, 고든 차일드가 ‘신석기 혁명’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면서 주장했듯이, 음식을 생산해 내는 효율적인 경제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농업’을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농업은 “식물, 동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인간에게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농업은 인구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우리가 마을이나 촌락이라고 부르는 경계가 있는 넓은 지역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거주한다는 사실은 이들 간의 소통이 빈번하고 집단지성을 발동시켜 기술적인 변화를 가속화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사회적이며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다.

농업을 가능하게 만든 계기는 식물재배와 가축사육이다. 식물을 재배한다는 의미는 경작을 통해 야생식물을 인간의 식성에 맞게 개량했다. 식물재배는 인간과 식물간의 공생이다. 재배되고 개량된 식물에 일어난 변화는 그 식물을 주식으로 삼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첫째, 동물과 식물의 상호교류가 강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한 식물과 지속적이며 독점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둘째,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자신이 재배한 식물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곡물 재배는 인간과 그것을 주식으로 하는 식물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인간의 일방적인 행동만 강조한다면, 재배된 식물이 농업에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농업은 재배된 식물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식물재배는 동물과 식물이 상호간의 생존을 강화하기 위한 자연적인 진화의 과정이다.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종간의 진화인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는 그것에 참여하는 유기물들의 생존 잠재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 발생한다. 공진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분화와 파종이 그런 예다. 인간은 식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식물의 분포와 모양에 개입한다. 인간의 행위가 단시간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곡물과 가축은 이미 사냥-채집으로 연명하던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오랫동안 채집하거나 사냥한 것으로부터 선별돼 집중적으로 관리대상이 된 것들이다. 곡물과 가축은 야생 식물이나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의도적인 선택을 통해 개량된 종자들이다. 이것이 신석기다.

‘토기土器’는 이전 구석기인들의 도구와는 다르다. 구석기 인류는 도구를 다른 돌로 치거나, 갈아서 만들었다. 날카로운 돌을 손에 쉬면 손도끼가 되었고 나무에 장착하면 창이 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도구는 외부를 찌르고 자르기 위해 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 도구는 무기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 등장한다. 바로 흙을 빚어 만든 토기다. 토기는 계획경제인 농업을 시작하여, 가을에 추수한 잉여 농산물을 보관하는 용기였다.

토기의 특징은 위가 하늘로 높이 열려져 있다. 이 토기는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밑동보다 위로 열린 입구가 더 넓다. 토기는 구석기 도구와는 달리, 자신이 일 년동안 농사한 곡식이나 씨앗을 정성스럽게 담아,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려는 의례의 도구이며, 자신과 함께 땀을 흘린 친지와 친구에게 곡식을 담은 감사의 표식이이며, 겨울을 잘 버티기 위해 곡식을 보관하려는 희망의 노래다. 토기는 바닥과 둘레는 틈이 없는 완벽하게 닫혀있지만, 그 위는 한없이 열려있다. 위가 열린 구조를 지닌 토기는 겸손과 감사의 상징이다. 토기는 통해 미래를 기약하고 자연과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의 표식이다.

‘우아’는 예상하지 못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다. 한자 우아優雅는 다른 것과 비교가 불가능한 기품에 대한 표현이다. 조작가가 ‘우아한 신석기시대’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인류가 자신의 도구로 자연의 섭리와 이웃의 도움에 감사하는 ‘우아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작가의 손을 통해, 흙, 공기, 불, 그리고 바람이 한데 어울러져, 모든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담는 감동적인 작품이 계속 생산되길 기원한다.

조원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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