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3. (月曜日) “산책散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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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앰빗 트랭킹화>

2021.12.13. (月曜日) “산책散策”

산책은 내 하루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동시에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정돈하고 훈련시키는 페이스메이커다. 산책을 가능하게 해주는 많은 도움이들중, 단연 손꼽히는 물건은 트랙킹화다. 두발을 땅에 디디고 물, 눈, 돌, 흙 등과 직접 마주쳐야하기에. 내 산책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고마운 물건이다. 나는 내 트랙킹화의 수명은 1년이다. 나는 지난 일년동안 발목까지 오는 K2 앰빗 트랙킹화를 신었다. 이 신발 고어-텍스로 물, 눈, 바람이 스며즐지 않는다. 특히 미끄러지지 않게 발을 잡아 주었다. 반려견들이 야생동물이 등장하면 갑자기 돌진할 때, 이 신발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나는 뒤둥그러져 여러번 다쳤을 것이다. 밑창은 다 헤져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낡아, 새로운 신발을 구입하였다. 이번엔 노스페이스 트랙킹화를 구입하였다. 앞으로 일년동안 나를 낙상으로부터 구원해주는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지난 달 11월 15일, 3년만에 산책코스를 옮겼다. 가파른 계단과 약간의 암벽 등반을 감행해야하는 신선봉이 나의 순례지다. 내가 오전에 등산에 온전히 바치는 2시간 정도다.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하다. 내가 등반에 바치는 정성과 시간에 비례하여, 그 날 해야 할 성과의 질이 결정된다. 산책은 단순히 신체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각성이며 영적인 훈련이다. 산책은 내가 정한 목표지점까지 가는 육체의 이동이면서, 길가에서 나를 반기는 나무, 풀, 돌, 바람, 강, 그리고 산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마음속에 숨어있는 ‘알려지지 않는 땅’terra incognita를 발견하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내 생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내 글을 가능하게 만드는 씨앗이다.

나는 숲과 산을 믿는다. 등산하면서, 왜 고대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첫 신을 ‘엘샤다이’ 즉 ‘산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명명했는지 알겠다. 나는 야생동물들이 활동하는 밤을 믿는다. 내가 새로운 영감을 얻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나는 숲과 산으로 간다. 이곳은 단테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무시무시한 ‘어두운 숲’selva oscura이며, 무함마드가 기도한 히라Hira 동굴이다. 산책은 내 자신을 비로소 볼 수 있는 시선을 마련해 준다. 그 시선은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 존재 그대로, ‘나’라는 제3자가 보는 있는 그대로의 나다. 나는 그런 나를 연민의 눈으로, 회한의 눈으로, 격려의 눈으로 보고 다독인다.

산책은 의도적으로 천천 실행해야한다. 그것 자체가 생각 훈련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제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산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는 밀접하고 정교하다. 소로는 산책에 할애하는 시간만큼 글을 쓴다. 그가 방에만 갇혀 있었다면, 글을 전혀 쓰지 못했을 것이다.” 소로는 정신을 질식시키는 도시의 소음과 귀머거리로 만드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에 지친 후, 자신의 고독에서 자신을 위한 최선인 고독을 찾았다. 자연은 그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죄를 명확하게 인식하였다. 그의 산책은 ‘문명의 이기라는 이름을 지닌 이교도의 손으로부터 성지를 되찾는 수고reconquering of the Holy Land from the hands of the Infidels’였다. 그는 당시 미국의 허무한 물질주의, 전쟁, 그리고 노예제도가 상징하는 악과 정면대결하였다.

1851년, 봄, 보스톤은 ‘도망자 노예법the Fugitive Slave Act’에 의해 남부에서 도망해 온 노예들을 줄줄이 묶어 돌려주면서 남부에 항복하였다. 그는 콩코드 라이시움Concord Lyceum 연설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와 야생을 허용하지만, 인간을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도시문명은 억압과 복종을 요구한다고 설교한다. 산책자는 야생에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다. 거짓 신인 맘몬이라는 물질주의와 타락한 정치의 독재로부터 산책자를 완전히 구분된다. 그 어떤 정치적인 법도 산책자의 도덕적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방랑자는 자연 안에서 조화를 중요시하는 아름다움과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정의를 발견하고 스스로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숭고한 원칙으로 무장한다.

소로의 자연사상과 시민불복종 운동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에 영감을 주었다. 사티야그라하Satyagraha로 불리는 비폭력시민불복종운동은 1947년 인도를 영국식민지로부터 독립시킨다. 사티야그라하सत्याग्रह는 축자적으로 ‘진리에 달라붙기’다. 사트야그라하는 개인을 스스로 훈련하게 만들어 비폭력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간디는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함께 24일동안 인도 전역을 걸었다. 그는 영국의 부당한 법인 ‘징벌적 소금 법’에 대향하여 동료인도인들과 걸었다. 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거룩한 순례이자 민족을 회복하는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걷기였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천천히 여기서 저리고 움직이는 것이다. 걷기는 민주적이다. 누구나, 심지어 불가촉천민들로 ‘소금 행진’에 함께 걸었다. 간디는 이 걷기를 동반한 사티야그라하운동은 그 자체가 성공이었다. 진리를 고수하고 비폭력으로 절제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복종하는 삶은 실패할 리가 없다. 새로 마련한 트랭킹화가 나에게 선물해줄 건강과 영감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