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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9. (火曜日, 313th) “저장貯藏”

사진

<곤포 사일리지>

2021.11.9. (火曜日, 313th) “저장貯藏”

*화요일에는 단테, 수요일에는 니체를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하여 매일 써야하는 묵상일기가 많이 밀렸습니다. 다시 회복하고 100일 묵상일기를 쓰는 분들과 함께 달려가겠습니다. (2021.11.18.)

준비는 종말론적이다. 준비는 처음을 마련하는 수고이지만, 마지막을 훌륭하게 마치겠다는 결심이다. 온전한 준비는 몰입하는 자에게 자신도 기대하지 못한 훌륭한 결과를 선물한다. 왜나하면 훌륭한 결과를 앞당기는 화살이기 때문이다. 과녁을 향해 달려가는 화살은 궁수의 시위를 떠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입동立冬이 이틀 전에 지났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 겨울은, 자신을 숨기고 조용히 봄을 준비하기 침묵이다. 나무는 그렇게 자랑하던 잎들을 모두 자신의 고향인 땅에 떨어뜨렸다. 녹색 잎이 이제 거의 흙색으로 변했다. 아니 흙이 되었다. 내년 봄을 희구하면서 땅속으로 들어가 뿌리와 함께 겨울을 날 것이다.

산책길 농부도 일손이 바빠졌다. 추수를 한 후, 생볏잎을 한 달 이상 밭에 두었다. 그러더니 그 많던 볏짚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3주 전이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이 휴거라고 한 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늘에서 내려 온 것 같은 거대한 마시멜로들이 머리를 바싹 깎은 논밭을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오래전부터 무심코 보던 광경이다. 이 신기한 광경을 통해 삶의 정보를 얻지 못한 이유는, 그져 보았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성의 없이 보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실례다. 오늘은 반려들과 함께 이 커다란 각설탕에게도 다가갔다.

마시멜로를 단단하게 동여매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입던 한복의 흰 옷고름이 흩날리면서 주위를 감쌌고 밭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 마시멜로는 무엇인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지나 신 광야에 도착하였다. 광야는 신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오래세월 불어 온 바람이 거대한 모래덩어리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광야’란 이름의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r’는 ‘바람이 불어 다지다’란 동사 ‘디베르dibber’의 장소명사형으로, ‘세찬 바람이 다진 장소’란 의미다. 신기하게도 신이 인간에게 하는 말도 이 어원에서 왔다. ‘다바르’dabar란 단어는 ‘신의 말’이자 그 말이 인간사회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진 ‘사건; 일’이란 의미다.

히브리인들은 두 달 보름 만에 식량이 다 떨어지자, 리더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신은 모세의 기도를 듣고,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단맛이 나는 작고 둥근 것이 평원에 깔려있다. 그것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우연히 생긴 물건이지만, 신을 탐구하는 자들에겐 기적이다. 사물과 사람을 그져보지 않고 깊이 보는 사람에게, 우주와 자연은 기적이다. 그들은 이 처음으로 보는 것을 히브리어로 ‘만 후’man hu, 즉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했고, 이 문장이 축약하여 ‘만나’가 되었다.


이 마시멜로는 곤포 사일리지로 생볏짚을 비닐로 진공포장하면 산소가 자연히 줄어들고 곤포梱包 내부에서 젖산발효가 진행되어 가축이 겨울나기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한다. 이 방법이 1970년대 유럽에 도입되고 2003년엔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농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사냥-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기원전 8500년경, 농업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터기의 ‘궤베클리 테페’(‘배불뚝이 언덕’)는 제의공간이었다. 인간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한 일부 인간들이 거대한 신전을 짓고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제사의례를 거행하였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272) 여기에서 발견된 정교한 건물들, 부조물들, 그리고 희생된 다양한 가축들의 뼈는, 인간이 농업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종교, 예술, 정치 체계, 상징 등을 사용했다는 놀라운 증거들이다.

궤베클리 테페는 현생인류 최초의 ‘순례지’였다. 이곳에서 수천 마리의 영양과 들소의 뼈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도축된 동물들을 먼 곳에서 가져와 이곳에서 먹었던 것 같다. 대규모 건축에는 그것을 주도하는 지도자와 감독관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지도자를 위한 공간이나 무덤도 없다. 아직은 평등사회였다. 이들은 사냥-채집으로 연명하던 사람들이다. 아직 문명을 모르던 사냥-채집자들이 궤베클리 테베와 같은 구조물을 건축하는 것은 커터 칼로 보잉 747 비행기를 제조하는 것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다. 궤베클리 테베는 인류에게 다가올 농업을 기반으로 정착한 문명세계와, 과거의 떠돌이 사냥-채집생활의 경계를 표시한다. 학자들은 아직도 궤베클리 테페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인류학자들은 종교가 인류의 조상들인 사냥-채집인들이 농부가 되어 복잡한 사회를 구축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갈등을 조절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추정했다. 정착사회는 장기적이며 정교한 목표를 지닌다. 먹을 것이 충분해야 하고 반영구적 가옥이 필요하다.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내적 단결이 필요했다.

죽은 자의 매장이나 동굴벽화나 이동예술작품은 원시종교의 행동들이다.궤베클리 테페의 유물들은 원시종교의 탄생에 대한 시나리오를 전복한다. 떠돌이 사냥-채집인들이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면서 거꾸로 종교의 필요성이 생겼다. 종교의 탄생이 오히려 농업과 다른 문명들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인간이 자신들의 존재이유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기 위해 모여 신전을 건축하려는 충동은 인간을 단순히 자연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단계로 상승시켰다. 인간은 이제 자연을 이인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여기며 정복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사육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가축으로 만들고, 야생 곡식을 자신들의 주식으로 만들기 위해 교배를 통해 곡식들의 유전자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저 곤포 사일리지는 생명의 영원한 순환, 탈곡을 하고, 처참하게 잘린 볏짚까지 가축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곡식의 희생을 상징한다. 봄은 그런 희생의 기간인 겨울을 통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오는 손님이다. 나는 이 겨울 동안 무엇을 나만의 곤포에 저장貯藏할 것인가? 나는 이 겨울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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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책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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