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7. (日曜日) “신비神祕”



시골로 이사 온 지 9년째다. 강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응시하면 할수록,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지만,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에, 나는 자연에 대해 거의 본 것이 없다. 요즘 산길은 낙엽으로 푹신푹신하다. 가을이 되자 밤송이, 버섯, 도토리, 솔방울이 걸을 때마다, 발에 치었다. 지금은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과 솔잎들이 이 가을의 선물들을 덮었다. 초록색과 연두색이던 나뭇잎들이 지금은 거의 바삭바삭한 옅은 갈색으로 변했다.

자연은 나를 종교의 중요한 분파인 신비주의로 이끌었다. 3-4세기에 등장한 신플라톤주의를 주창한 플로티누스, 그리스도교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인물들이다. 12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유대 카발라 전통과 이슬람 수피즘이다. 특히 요즘 나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는 수피즘은, 다른 종교전통의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

‘루미Rumi’리고 널리 알려진 페르시아 수피 시인 잘랄 알-딘 무함마드 발키가 저술한 여섯 권으로 구성된 마스나비Mathnavi은 수피즘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며 ‘페르시아인들의 꾸란’을 저술하였다. <마스나비> 3권 1259-68행에 다음 이야기가 등장한다:

1259. 코끼리가 검은 집에 있었다. 몇몇 인도인들이 전시를 위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1260. 사람들은 코끼리를 보기 위해, 한 사람씩 그 시커먼 방으로 들어갔다.

1261. 눈으로 볼 수 없기때문에,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어둠에서 코끼리를 느껴야 했다.

1262. 어떤 사람의 손은 코끼리 뼈를 만졌다. 그는 ‘이 피조물은 송수관처럼 생겼다.’라고 말했다.

1263. 다른 사람의 손은 귀를 만졌다. 그는 ‘그것은 부채처럼 생겼다’라고 말했다.

1264. 다른 사람의 손은 다리를 만졌다. 그는 ‘나는 기둥과 같은 생긴 코끼리를 만났다’라고 말했다.

1265. 다른 사람의 손은 그의 등을 만졌다. 그는 ‘진실로 이 코끼리는 왕좌처럼 생겼다’라고 말했다.

1266. 누구든지 코끼리를 묘사지만, 그는 자신이 손으로 그 일부분만 아는 것이다.

신비주의에 대한 묘사는 코끼리를 만진 장님의 표현과 유사하다. 신비주의는 지적인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평원이다. ‘신비’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미스티시즘’mysticism은 ‘뮤에인’myein이란 그리스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눈을 감다’다. 신비주의는 모든 종교의 위대한 영적인 흐름으로 지혜, 빛, 사랑, 혹은 무라고 불리는 ‘현존’에 대한 의식이다. 그 현존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지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즉 ‘그노시스gnosis’만이 그 일부를 감지할 수 있다. 그 영적인 경험은 감각이나 이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비주의는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내면의 빛’이 그 당사자를 인도하게 만든다. 내면의 빛은 현존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집착으로부터 결별하여 자유롭게 될 때, 더 강의 빛난다.

서양철학의 시조인 플라톤은 <정체>에 등장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절대지식은 대화를 통해 획득될 수 없다고 말한다. 동굴에 갇혔던 수감자가 동굴 밖으로 나기면, 그의 눈을 멀게 만드는 태양광선을 경험한다. 그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알다. 절대 지식은 경험되어져만 한다. 영혼은 다음 세 단계를 통해 신과 합일한다: ‘비아 푸르가티바’via Purgativa, ‘비아 일루미나티바’via illuminativa, 그리고 ‘비아 우니티바’via unitiva다.

첫 번째 단계인 ‘비아 푸르가티바’는 수련자가 훈련과 의지를 통해 감각이 지배하는 어둠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과거 정보에 의존하던 과거를 청산한다. 두 번째 단계인 ‘비아 일루미나티바’에서 수련자는 신의 현존을 눈으로 목격하거나 오감으로 감지한다. 마지막 단계인 ‘비아 우니티바’에서 수련자는 신과 하나가 된다. 이 때 등장하는 은유가 신랑(esposo)과 신부(esposa)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사랑이다.

이 세 단계는 또한 고통과 어둠, 신앙의 빛으로 진보, 그리고 삼매경, 일치, 혹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이 세단계는, 네 번째 단계인 visio beatifica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단계는 신비주의의 마지막 단계로 절대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사랑은 신비주의를 금욕주의와 구별한다. 신에 대한 사랑은 수련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인내히고 모든 것을 동시에 사랑하는 힘을 부여한다. 그런 자에게 고통과 시련은 그를 시험하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과정일 뿐이다.

사진

<설악면 신선봉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