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5. (金曜日)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자가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누가 저 굴참나무를 이 야산에 보냈을까? 맨 처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힘껏 솟아올라 셀 수 없는 팔들을 들어올렸다. 맨 처음부터 이런 모습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바람에 흩날려 이 산에 떨어져 수 십년을 인내하고 기다렸다. 낙엽 사이 틈으로 운 좋게 떨어져 추운겨울의 눈과 더운 여름의 소나기, 그리고 매일 아침 차가운 서리와 안개를 견뎌냈다. 굴참나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가 나를 여기에 보냈을까? 나는 이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저 친구는 내 고민을 알 리가 없다. 그런 심정을 수피시인인 루미는 우리는 모두 선술집에 와 있다고 노래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국가라는, 집이라는 조그만 선술집에 머물러있다. 인생이라는 신비를 조금이라고 탐구하기 위해, ‘나’라는 경계를 허물려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왔다.

선술집에는 다양한 와인들이 있다. 색도 맛도 다양하다. 지적으로 민첩한 와인도 있고 감정적으로 충만한 와인도 있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칠맛이 노래 부르게 만드는 카베르네cabernet도 있고 온갖 향기를 피우며 혼자 고고한척하는 샤도네이chardonnay도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와인들이 구비된 선술집에 입장하여 자신의 와인을 골라 음미하는 것이다. 포도는 자신을 애워 싼 껍질을 과감하게 터뜨리고 다른 포도 알들과 함께 숙성할 때, 영광스런 여행을 시작한다. 포도가 일정한 기간을 거쳐 포도주가 변모하는 과정은 기적이다. 예수가 첫 번째 기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놀라운 맛을 지닌 포도주를 만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포도주는 인간변모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은유다.

껍질을 베껴낸 포도 알들은 자신은 몸에서 나온 즙과 함께 출구가 없는 어둡고 좁고 축축하고 답답한 오크통에서 오랜 시간을 조용히 지내야한다. 그 인내는 놀라운 기적을 만든다. 선술집에서 새 술에 취한 우리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 이곳의 예절은 인사불성人事不省이다. 나의 이름, 성, 직업, 생김새, 지위는 진솔한 내 자신을 찾는 탐구를 방해하는 소음들이다. 말을 더듬어도 좋고 침묵해도 좋다. 열정, 진심, 그리고 경청이 대화를 춤추게 만드는 문법이다. 쿠란은 우리는 모두 그 한분에 돌아간다고 말한다:

Ilallāhi marji‘ukum jamī‘ā (일라-라히 마르지우쿰 자미아)

“여러분은 모두 신에게도 돌아갑니다.”

<꾸란> 5.105

인간은 부모의 품에서 신체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존재가 되고, 부모를 떠나 학교에서 정신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 후에, 하던 일을 멈춘다. 그(녀)는 이제 타인에 관심을 두거나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영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를 취하게 만드는 이 달콤한 장소에서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인간의 심연에는 자신만의 나침반이 있다. 자신이 가야할 곳에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는 해도海圖다. 출렁이는 바다와 같은 인생에서 이 나침반이 없다면,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던지, 연료가 떨어져 바다 위 고아가 될 것이다.

잠시 우연히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술집은 고향으로 항해하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한 사이렌의 거부할 수 없이 치명적인 노래처럼, 나를 안주시키려한다. 선술집은 내가 가야할 본향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는 진통제다. 13세기 수피 시인 루미는 우리에게 그 선술집에서 뛰쳐나오라고 말한다. 이제 본향으로 가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루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The Tavern

선술집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자

이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All day I think about it, then at night I say it.

Where did I come from, and what am I supposed to be doing?

I have no idea.

My soul is from elsewhere, I’m sure of that,

and I intend to end up there.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밤에 나는 말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영혼은 어디에선가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어디에서 마칠 생각이다.”

This drunkenness began in some other tavern.

When I get back around to that place,

I’ll be completely sober. Meanwhile,

I’m like a bird from another continent, sitting in this aviary.

The day is coming when I fly off,

but who is it now in my ear who hears my voice?

Who says words with my mouth?

“이 술 취함은 다른 선술집에서 시작되었다.

그 장소에서 돌아올 때,

나는 완전히 깨어있을 것이다. 한동안.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새장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다.

내가 날아 가버릴 날이 오고 있다.

그러나 내 귀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하는가?”

Who looks out with my eyes? What is the soul?

I cannot stop asking.

If I could taste one sip of an answer,

I could break out of this prison for drunks.

I didn’t come here of my own accord, and I can’t leave that way.

Whoever brought me here, will have to take me home.

“누가 내 눈을 가지고 밖을 보는가? 무엇이 영혼인가?

나는 묻기를 멈출 수 없다.

만일 내가 그 대답의 한 모금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술 취한 자들을 위해 이 지옥에서 박차고 나갈 것이다.

나는 자진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식으로 떠날 수 없다.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사람이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This poetry. I never know what I’m going to say.

I don’t plan it.

When I’m outside the saying of it,

I get very quiet and rarely speak at all.

“이 시는! 내가 이렇게 말할지 결코 몰랐다.

나는 시를 궁리하지 않는다.

나는 시가 말하는 동안 밖에 머물러

매우 조요해 진다. 거의 말하지 않는다.”

사진

<야산 굴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