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것은 내려오기 마련이고 내려간 것은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이것이 우주의 이치이며 자연의 이치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구’라는 우주선을 지탱하는 원칙은 중력이다. 저 멀리서 빛을 보내고 자신이 관리하는 행성들을 잡아당기는 태양에 저항하여 지구는 자기보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그 중심을 향해 버티고 있다. 지구는 이 팽팽한 힘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자전과 공전이라는 우주의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쇼를 연출하고 있다.
평창은 수축을 유인하고 상승은 하강을 초래한다. 야산에 심겨진 나무들과 풀들은 이 신비한 힘의 조화의 결과물들이다. 저 작은 소나무는 자신이 운명적으로 자리를 장소에서 저 멀리 있는 태양의 부름을 받고 거친 중력을 거슬려 줄기를 내고 연약하고 가느다란 잎들을 내면서 상승하기 시작한다. 지구 중심에 있는 핵과 저 멀리 존재하는 태양의 줄다리기가 연합하여 소나무를 키운다.
니체는 작심하며, 새로운 종교와 철학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제시한다. 그는 서문 1에서 상승과 하강의 예술적인 얽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Zarathustra’s Vorrede. I
(번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를 위한 동시에 그 누구도 위하지 않는 책
차라투스트라의 서문 1
(해설)
이 제목은 신의 의중을 대언하는 히브리 예언자들의 관용어구에서 빌려왔다. 예언자들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신이 직접 신들의 모임에서 결정한 바를, 자신이 신들의 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경청한 내용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야훼께서 이렇게 말하셨다Thus says the Lord”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이 문구 다음에 등장하는 내용은 신이 말한 내용을 직접인용구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책의 부제인 ‘모두를 위한 동시에 그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은 경전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간결한 문구다. 성서나 꾸란과 같은 경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 위한 책이다. 경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혹은 세계 어디에서나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기록되어있다. 동시에 경전은 그 누구도 깊이 읽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위하지 않는 책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가올 시대의 경전으로 쓴 것이다. 위대한 시인들을 찾아왔던 영감을, 이제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인류에게 말을 걸참이다. 그 영감은, 호메로스에게 임했던 뮤즈신이고, 이사야에게 강림했던 야훼였다. 그는 또한 히라 동굴의 무함마드에게 찾아왔던 지브릴 천사이며, 괴테의 마음과 펜을 움직인 다이몬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기를 갈망하는 인간을 위한 책이다.
Als Zarathustra dreissig Jahr alt war, verliess er seine Heimat und den See seiner Heimat und gieng in das Gebirge. Hier genoss er seines Geistes und seiner Einsamkeit und wurde dessen zehn Jahre nicht müde. Endlich aber verwandelte sich sein Herz, -und eines Morgens stand er mit der Morgenröthe auf, trat vor die Sonne hin und sprach zu ihr also:
(번역)
“차라투스트라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고향과 고향 근처에 있는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영혼靈魂과 자신의 고독孤獨을 즐겼다. 그는 10년 동안 그는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마음이 변했다. 어느 날 아침, 먼동이 틀 무렵, 그는 태양 앞으로 걸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설)
니체는 유고집에서 차라투스트라가 30살에 자신의 고향인 우르미아를 떠나 수련을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기록은 후대의 추측이기 때문에, 니체가 언급한 ‘서른 살’이란 용어는 분명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한 서른 살과 연관이 있다. 예수가 부모를 통해 가정교육을 받고 예루살렘과 동네 나사렛 회당의 랍비를 통해 교육을 받은 후, 한동안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요단강에서 천국을 선포하며 ‘세례’라는 신비한 의례를 향하는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그 때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 보통 인간이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자신이 과연 영웅이 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평가해야한다.
인생에서 느닷없이 엄습하는 역경은, 지나고 나면 당연히 존재했어야하는 징검다리이자 당연한 통과의례다. 이 의례를 정성스럽게 마치면, 아니 이 의례를 정성스럽게 준수하면, 내공이 생겨 다 심한 어려움이 와도 인내할 수 있다. 인내는 영웅의 유전자다. 아브람이라는 75세 노인이, 자신의 아버지 집, 친족, 고향을 떠나 신이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여정을 시작하였다. 이 여정과 어려움은 떠돌이 무명의 노인을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탈바꿈하였다. 차라투스트라도, 자신의 고향과 고향 근처에 있는 호수를 떠난다. 니체가 말년에 지닌 거대하고 고요한 호수인 실바플라나Silvaplana를 품고 있는 실스 마리아Sils Maria를 상기하면서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들어간 곳은 산山이다. 산은 인간이 사는 땅과 신이 사는 하늘의 경계로 동물인 인간을 신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수련장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을 ‘엘 샤다이’ 즉 ‘산에 계신 하나님’으로 불렀다. 단테가 자기변신을 통해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지옥 여행을 감행한다.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무시무시한 짐승의 소리만 들리는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산에서 괴물과 싸우거나 누구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 그를 훈련시키는 괴물이자 스승이 있다. 바로 자기 ‘영혼’과 ‘고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기간동안 자신의 영혼과 고독을 즐겼다고 말한다. 영혼은 형이상학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영혼은 지극히 신체와 정신 모두를 지배하는 인간의 중추기관이다. 영혼은 매 순간을 육체를 유지시켜주며, 정신을 맑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초월시키는 기운이다.
이 영혼은 고대인도인들은 ‘프라나’prāṇa(प्राण)라고 불렀다. 프라나는 ‘삶의 원동력’ 혹은 ‘생기’다. 모든 생명은 그 안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몸 전체를 지배하는 프라나를 품고 있다. 프라나는 들숨과 날숨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된다. 숨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히브리인들은 영혼은 ‘루아흐’라고 불렀다. 루아흐ruah(רוּחַ)는 신이 물로 상징되는 혼돈의 괴물을 물리쳐 질서를 부여할 때, 사용한 무기다. ‘루아흐’의 물질적인 의미는 거센 바람이다. 신은 또한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한 바람이자 에너지다. 신은 흙으로 모형을 만든 후에, 자신의 숨을 불어 넣어, 살아있는 존재,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 즉 동물로 만들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신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Du grosses Gestirn! Was wäre dein Glück, wenn du nicht Die hättest, welchen du leuchtest! Zehn Jahre kamst du hier herauf zu meiner Höhle: du würdest deines Lichtes und dieses Weges satt geworden sein, ohne mich, meinen Adler und meine Schlange.
(번역)
“오, 위대한 별이여! 당신이 빛을 비출 대상이 없다면, 당신의 행운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당신은 여기 내 동굴로 왔습니다. 나와, 내 독수리와 내 뱀이 없었다면, 당신은 당신의 빛과 당신의 여행에 싫증이 났을 것입니다.
(해설)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을 위대한 별이라고 부른다. 태양이 행복한 이유가 있다, 태양 광선을 수용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동물과 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가 악의 신 앙그라 마인유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후라마즈다를 따르는 인간들이 정심, 정언 그리고 정행을 실천해야한다. 아후라마즈다가 앙그라 마인유과 직접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일상에서 신의 뜻을 펼칠 때 가능하다. 니체는 조로아스터교의 이 독특한 신앙관을 ‘당신이 빛을 비출 대상이 없다면, 당신의 행운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표시하였다.
아후라마즈다의 현현인 광선은 영혼과 고독을 동굴 안에서 즐기고 있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지난 1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자긍심과 지혜를 소유한 자로 변신하였다. ‘자긍심’을 상징하는 독수리는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독수리는 새끼를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훈련시킨다. 성인들은 태양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여 복음서에 담겨있는 그의 어록을 이해하는 자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부가 목사가 강론하는 강대講臺는 종종 독수리 문양이 조각되어있다. 독수리는 어떤 새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날아오를 수 있다. 신과 같이 완벽하게 자신을 수련하려는 인간의 원대한 꿈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독수리는 또한 완벽한 새로 다시태어나기 위해, 가능하면 태양 근처로 날아가 시야를 막고 있는 눈의 껍질을 베껴내고 어린 시절의 깃털을 태워버리기를 시도한다. 독수리가 이것을 시도하다 바다에 세 번 추락하면, 새로운 시야와 깃털을 얻었다. 이런 행위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와 부활과 연관되어있다. 세례대는 종종 독수리 모형으로 조각되어있다.
뱀은, 인간을 유혹한 사탄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인 지식과 지혜를 소유한 동물이다. 인간은 그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자신이 짧은 인생을 사는 존재지만, 그것을 영원한 삶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경주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게 되기를 요구했다. 엘리야가 시내산 동굴에서 ‘고요한 침묵의 소리’안에 존재하는 신을 만났고,
무함마드는 히라 동굴에서 우주를 창조하고 핏덩이에서 인간을 창조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동굴은 플라톤의 <국가> 514-18에 등장하는 동굴과는 다르다. 동굴은 플라톤에게 무식과 무지의 공간으로 탈출해야할 과거이지만, 니체에게는 깨달음과 해탈의 공간이다. 차라투스트라도 동일한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독수리의 자긍심과 뱀의 지혜를 소유한 영웅으로 재탄생되었다.
사진
<캘리포니아 킹스 리버 캐년에서 본 브로이어 산>
독일 출신 미국 풍경화가 알버트 비어슈타트Albert Bierstadt (1830–1902)
유화, 1872, 91.4 cm x 119.4 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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