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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月曜日) “발굴發掘”

사진

<설아 not-to-do list>


2021.11.29.(月曜日) “발굴發掘”

어제는 보물을 발굴하러 태풍태권도장에 갔다. 한 달에 한 번, 설레는 마음을 지니고 태풍태권도장으로 간다. 마지막 일요일 오후 3-5시에 이 도장에서 운명적인 인연을 맺은 사범님과 12명 수련생들을 만난다. 가르친다는 것은 발굴發掘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행위는 반시대적이고 역부족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가 복음서에서 천국에 관해 말한 것과 유사하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다. 밭이라는 것은, 자신의 일상,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도장은 그들의 밭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몸, 정신, 영혼을 훈련시켜,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역사는 그런 결심을 한 사람들이 지금이란 시간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나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대들이 가진, 아직 흙으로 덮혀 있는 원석의 존재를 알려주고, 그것에 덕지덕지 붙은 먼지들을 털어내라고 조언하는 사람이다. 혹은 그대들의 마음속에 원석이 있다는 복음을 전해주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깊이 호미와 삽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되라고 말한다.

지식은 자신의 경험과 조우하여 실제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교본이 될 때, 지혜가 된다. 인터넷에는 인류가 모두 평생을 공부해도 섭렵하지 못한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지식들 가운데, 자신에게 어울리는 대상을 찾기 위해서 스승이 필요하다. 그 대상을 자신의 지혜로 오랫동안 온전히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스승은 그런 의미에서 선생先生이다. 먼저 그 지식을 취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매주 ‘더코라’가 지원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영어 회화, 작문, 그리고 독해를 배워왔다. 더코라의 촬영감독인 손석기 감독이 진행해 왔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박사과정으로 논문을 쓰기 위해, 요즘은 이동빈 선생이 간다. 이 선생님은 건명원 제자다. 그는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공부하였고 특히 학부 때 문학을 전공한 작가 지망생이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옥스퍼드 영영사전을 선물하고 본격적으로 회화와 작문을 훈련시킬 것이다. 지난주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신이나 자신의 정성을 쏟을 것 같다.

태권도장에 오후 2시 20분경 도착했다. 아이들은 부산하지 않다. 오늘 함께 공부할 리처드 바크의 Jonathan Livingston Seagull과 월트 휘트먼의 Song of Myself를 조용히 암기하고 암송하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도장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한다. 이 아이들과 수업하는 과정을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이 책을 영어로 공부하면서, 삶의 철학, 용기, 인내 등을 나누고 싶다. 이들과의 수업을 영상에 담기 위해 손석기 촬영감독과 양익제 영화감독과 동행하였다.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이나 영어 회화와 작문을 공부했다. 나는 이들과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수업을 진행하였다. 새로 단장한 벽면 오른쪽에 이런 문구가 써있다.

“도장은 보통 사람을 위대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장소입니다.”

사범님께서 내가 <수련>책에 쓴 문구를 인용하여 쓰셨다. 도장道場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개선된 몸과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붙잡고 분투하는 장소다. 도장에서 수련한다는 것은, 시간을 준수하고, 밖에서 입던 옷을 벗고 도복으로 갈아입고, 평상시에는 하지 않는 품새를 훈련하는 용광로다. 정신과 영혼은 몸에 기생하는 부속물들이다. 몸을 매일 수련하지 않는다면, 정신은 나태해지고 영혼은 점점 부패할 것이다. 지난 철학과 종교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 육체를 미워하고 정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왔다. 내가 이 순간에 정성을 모아 행하는 손동작, 발동작, 그리고 민첩한 몸동작만이 진실하다.

요즘 나의 첫 번째 일과를 바꿨다. 나는 트레드밀에 몸을 올려놓고 아직 깨어나지 않는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30분 정도 걷고 뛰면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비로소 좌정하여 묵상이 가능하다. 몸을 충분히 움직이지 않으면, 잡념들이 묵상을 방해한다. 걷고 뛰는 움직임은 그런 잡념들을 걷어내는 준비운동이다. 하루는 인생이다. 그런 단속과 단련이 없다면, 오늘은 어제의 일부이며, 오늘은 죽음의 연속이다.

사범님은 오랜 수련을 통해 그것을 깨달으셨다. 이 아이들이 나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몸을 단련시켜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체 훈련은, 자연스럽게 정신과 영혼 훈련으로 이어진다. 이 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그런 운동을 한 사람은, 힘이 세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짐승이 된다. 그래서 오른편 아래쪽에 體(신체), 德(인성), 知(지성)가 쓰여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산책을 하거나 운동하는 것이다.

운동은 신체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는 수련이다. 니체가 말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인 ‘위버멘쉬’ 즉 ‘극복인’이 되려는 분투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1인칭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3인칭에 두고 끊임없이 응원할 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을 3인칭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2인칭과 3인칭 인간들과 동물들, 더 나아가 나무와 같은 자연을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덕德’이다. 우리가 신체를 단련하는 이유는, 그 고통스런 경계를 허물면서, 타인의 희로애락을 역지사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덕을 겸비한 사람은,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외부에 관한 정보를 습득한다. 그것이 지성이다. 덕을 겸비하지 않은 지성은 야비하고 반사회적이며 이기적이다. 나는 아이들과 월트 휘트먼의 삶과 Song of Myself의 첫 단락을 감상하였다. 당분간 이 시를 함께 공부하고 암송할 예정이다.

아이들과 수업을 마치니, 5시 30분이다. 다음 수업부터는 아이들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듣고 싶다. 매번 갈 때마다 2명씩 정해, 그들의 고민을 심도있게 경청하고 싶다. 지난번 나는 아이들에게 not-to-do list를 작성하라고 주문했다. 설아가 수줍게 자신의 점검 노트를 보여주었다. 11월 1일부터 자신의 일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를 빼곡히 적고, 매일 엑스, 세모, 그리고 동그라미로 자신을 평가하였다. 그 리스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늦잠

체중관리

바른자세

자기합리화

대충

딴짓

남눈치

부정적 생각

미룸

게으름

감정소비

말하기전 생각

면! (줄이기)

시간낭비

몸관리

거짓말

자만

갈림길

욕심

욕망

상황판단

생각없음

도착시간 (10분 전 가기)

공책을 보여주는 설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그 리스트로 수련하여 다음 달 만날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태풍태권도장은, 나의 월례 순례지다. 다음번 아이들을 만날 때는, 이들에게 더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여러분은 무엇을 간절하게 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not-to-do-list를 작성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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