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 (金曜日) “Song of Myself ”

사진

<나비와 함께 사진을 찍은 월트 휘트먼>

1883 사진, The Grolier Club

2021.11.27. (金曜日) “Song of Myself

시인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다. 그리스에 호메로스, 로마의 아이네아스, 페르시아의 루미, 이탈리아의 단테, 독일의 괴테, 그리고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미국엔 윌트 휘트먼(1819-1892)이 있다. 휘트먼은 어려운 가정환경가운데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휘트먼은 미국의 호메로스이며 밀턴이다.

휘트먼이 37살, 그러니까 1855년에 발표한 Leaves of Grass라는 시집에 실린 Song of Myself는 대담하고 건방지지만, 현대적이며 아방가드적이라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가슴이 뛴다. 코로나시대를 맞아 하여, 자신이 아닌 가상공간, AI, SNS를 탐닉할 뿐만 아니라, 노예가 된 현대인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시다. 이 시는 미국은 오순절 교파의 열정주의와 모든 것을 의미하며 의심의 심판대에 올려놓은 영지주의, 그리고 자신이 손과 발을 통해서 만든 물건만이 진실하다는 실용주의의 합창이다. 여기 Song of Myself의 제 1곡에 대한 번역과 해설이다.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나는 내 자신을 축하祝賀하며 노래합니다.

그리고 내가 취한 것을 당신도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속한 모든 원자原子가 당신에게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I loafe and invite my soul,

I lea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나는 빈둥거리며 내 영혼을 초대招待합니다.

나는 기대어 빈둥거리며 편하게 여름 풀잎의 눈을 관찰觀察합니다.

My tongue, every atom of my blood, form'd from this soil, this air,

Born here of parents born here from parents the same, and their parents the same,

I, now thirty-seven years old in perfect health begin,

Hoping to cease not till death.

내 혀, 내 피의 모든 원자는 이 땅과 이 공기로부터 형성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여기에서 똑같은 공기와 토양으로부터 그 부모들이 태어났고,

그들의 부모도 똑같은 공기와 토양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나는 지금 완벽하게 건강한 37살로 시작始作합니다.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희망希望하고 있습니다.

Creeds and schools in abeyance,

Retiring back a while sufficed at what they are, but never forgotten,

I harbor for good or bad, I permit to speak at every hazard,

Nature without check with original energy.

교리와 학교는 휴지休止시키고

그들이 무엇이든 간에 만족하며 잠시 퇴거退去시키지만 결코 망각忘却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좋든 나쁘든 품습니다. 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원초적인 힘을 가지고 누구의 제지制止도 없이 ‘자연自然’을 품습니다.


휘트먼은 서양서사시의 전통운율인 ‘약강오음보격’으로 시작하지면, 금새 이 전통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샘솟는 영감을 자유롭게 적어 내린다. 이 서사시의 시작은 서사시들, <길가메시 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 <욥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 가장 오래된 영시이며 영웅서사시인 <베어율프> 그리고 밀턴의 <실락원>과 다르다:

ša naqba īmuru išdi māti

(샤 나끄바 이무루 이슈디 마티)

“온 세상의 기초인 심연을 본 자!”

<길가메시 서사시> 제1토판 1행

μῆνιν ἄειδε θεὰ Πηληϊάδεω Ἀχιλῆος

(메닌 아에이데 쎄아 펠레이아데오 아킬레오스)

“오, 여신이시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십시오.

<일리아드> I.1

ἄνδρα μοι ἔννεπε, μοῦσα, πολύτροπον, ὃς μάλα πολλὰ

πλάγχθη,

(안드라 모이 엔네페 무사 폴뤼트로폰 호스 말라 팔라 플라그쎄)

“오, 뮤즈 신이시여! 아주 많은 장소를 들렸던 영웅에 대해 나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오디세아아> I.1-2a

אִ֛ישׁ הָיָ֥ה בְאֶֽרֶץ־ע֖וּץ אִיֹּ֣וב שְׁמֹ֑ו וְהָיָ֣ה ׀ הָאִ֣ישׁ הַה֗וּא תָּ֧ם וְיָשָׁ֛ר וִירֵ֥א אֱלֹהִ֖ים וְסָ֥ר מֵרָֽע׃

(이쉬 하야 버-에레츠 우츠 욥 셔모 워-하야 하-이쉬 하-후 탐 워-야사르

위-레 엘로힘 워-사르 메라)

“한 사람이 우쯔라는 땅에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욥이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기피하였다.“

Arma virumque cano, Troiae qui primus ab oris

Italiam, fato profugus, Laviniaque venit

“나는 전쟁과 영웅을 노래합니다. 처음으로 트로이 해변으로부터

운명에 의해 추방되어 이탈리아와 라비니아 해변으로 온 자를”

<아이네이드> I.1-2

Hwæt, wē Gār-Dena in gēardagum,

þēodcyninga þrym gefrūnon,

hū ðā æþelingas ellen fremedon.

(흐왜트 웨 가르-데나 제아르다굼

쎄오드치닝가 쓰륌 제프룬논

후 다 애델링자즈 엘렌 프레데돈)

“아, 오래전에 창을 든 데인사람들과

그들을 다스렸던 왕들의 영광을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용맹스럽게 싸웠는지.”

<베어울프> 서문.1-3

OF Man's First Disobedience, and the Fruit

Of that Forbidden Tree, whose mortal tast

Brought Death into the World, and all our woe,

With loss of Eden, till one greater Man

Restore us, and regain the blissful Seat

“인간의 첫 번째 불복종, 그리고

그 금지된 열매와 그 치명적인 경험이

죽음을 이 세상에 가져와 우리는 모두 비통에 빠졌다.

에덴을 잃고, 한 위대한 인간이

우리를 회복하고 그 행복으로 가득한 장소를 다시 얻을 때까지”

<실락원> I.1-5

뮤즈 여신을 불러 전쟁, 영웅, 분노, 원정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를 노래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자신’을 노래할 것이다. 휘트먼은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이며, 그가 말하려는 대상은 신, 영웅, 전쟁, 타인이 아니라 ‘자기-자신’이다. 52편으로 구성된 <내 자신을 위한 노래>는 휘트먼의 관심대상과 휘트먼이 자주하는 행동을 첫 문장에 실었다.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나는 내 자신을 축하祝賀합니다. 그리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내가 취한 것을 당신도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속한 모든 원자原子가 당신에게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휘트먼은 현대인들이 대서사시를 1인칭 단수 대명사 I로 시작한다. <일리아스>는 ‘분도’(mēnin), <오디세이아>는 ‘영웅’(andra), <아이네이드>는 ‘전쟁’(arma), <실락원>은 소극적으로 전치사 ‘-의’(of)로 시작하였다. <내 자신을 위한 노래>는 선언한다. 이제부터 어렵고 위대한 전쟁을 치워 영웅이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나’라는 존재가 하는 행위와 그 행위의 대상이 첫 행에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휘트먼은 I celebrate myself에서 신이나 뮤즈를 소환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이외의 어떤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에게 현대인들을 위한 대서사시를 알려줄 존재는, 자기-자신뿐이다. celebrate의 원래 의미는 ‘엄숙한 예배에 참석하듯이 정기적으로 드나들다’라는 뜻이다. 내가 정색을 하고 여행할 장소는 해외의 멋진 명소가 아니라, 아직 탐험하지 않아 인식되지 않은 미지의 땅과 같은 내 자신이며 내 마음이다. 나는 탐험을 시작한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 탐험의 객체다. 이 문장은 현대문명의 도래를 알리는 사이렌이다.

내가 예를 갖추어 자신이란 구별된 공간을 드나들며 하는 행위가 ‘노래’다. ‘노래’는 생각이 아니라 행위다. 자신의 생각한 것을, 뇌를 통해 가사를 만들고 심장을 통해 감동을 실어, 입 밖으로 내놓는 용감한 행위다. 노래에는 나의 숨결, 입김, 타인과 조화롭게 소통하려는 리듬과 멜로디가 담겨있다. 노래는 나의 호흡이자 영감이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노래만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도록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세뇌다.

<내 자신을 위한 노래>는 자기-자신이 점점 확장하여 더 많은 경험을 쌓은 후,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개인은 세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계를 점점 확장하여, 동교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닌 동물과 식물, 그리고 지구전체와 우주 끝까지 팽창시킨다. 휘트만이 상상한 자아는 ‘민주적’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유일한 진리로, 물질이 행복의 근원으로 착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차별, 시기, 질투, 음해, 더 나아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은 ‘나’라는 개체이면서 인류 전체를 품은 전체이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인 개인, 즉 individual이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인류humankind가 된다. 인류가 된 내가, 진정한 개인이다. 만일 ‘개인’이 이웃과 타인을 배제하여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이면서 인류이고 개체이면서 전체인 ‘나’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