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4. (水曜日) “지겨움과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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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

5세기 베르길리우스 문헌 Vergilius Romanus 14쪽

2021.11.24. (水曜日) “지겨움과 즐거움”

우리는 일상을 다음 두 가지 태도로 맞이한다. 하나는 내키지는 않지만, 환경과 상황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어 억지로 하는 일, 즉 지겨움이다. 다른 하나는 신나는 일로, 내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일이다. 지겨움은 미움, 혐오 더 나아가 불행의 어머니다. 세상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지구가 신이 나서 스스로 자전하는 것처럼, 지구라는 우주선에 올라탄 동물과 식물들을 사계절로 변화시키고, 무생물들은 시간으로 마모시키고 새롭게 생성시킨다.

베르길리우스는 두려움으로 지옥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되돌아가 가려는 단테를 설득한다. <인페르노> 제1곡 76-78행이다.


76 “Ma tu perché ritorni a tanta noia?

77 perché non sali il dilettoso monte

78 ch’è principio e cagion di tutta gioia?”

76. “왜 당신은 그런 ‘미움 안’(혹은 지겨움)으로 돌아가려 합니까?

77. 왜 달콤한 산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까?

78. 거기는 모든 즐거움의 시작이자 원천입니다.

자신을 시인으로 소개한 이 중간자는 어두운 숲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단테를 붙잡는다. 단테가 어리석게도 ‘불행’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76행의 마지막 단어 ‘노이아’는 이 신비한 자가 하는 충고를 푸는 열쇠다. ‘노이아’는 ‘미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오디움’odium에서 유래했다. ‘오디움’에 ‘-안으로 진입하다’라는 뉴앙스를 지닌 전치사 in이 접두하여 ‘인오디오’ 즉 ‘미움안으로 들어간 상태’ 혹은 ‘미움을 일으키다’라는 뜻이 되었다. 이 단어는 11-16세기의 고대 프로방스어로 ‘엔노이아’enoia가 되었고 단테가 사용한 투스카니어로 ‘노이아’noia가 되었다. 단테가 뒤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했던 과거라는 ‘미움’으로 돌아가 무료한 삶, 지겨움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비한 자는 단테가 광선을 보았던 산에는 인생의 행복을 주는 달콤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야한다. 산은 ‘모든 즐거움’의 시작이자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여정은 목적은 산 정상으로 등반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인생의 즐거움이 시작되는 장소이며 동시에 제공하는 장소다. ‘즐거움’을 의미하는 단어 ‘지오이아’는 ‘노이아’와 대비되는 단어다. ‘지오이아’는 ‘즐거워하다’라는 라틴어 동사 ‘가우데오’gaudeo에서 유래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을 일깨우는 말을 한다. 목적지가 시발점이라고. 단테가 도착하려는 산 정상은 목적지이며 이 여정을 떠난 명분이다. 산정상이 없었더라면, 단테는 이에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테는 De mon I.ii.7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Rursus, cum in operabilibus principium et causa omnium sit ultimus finis

“다시한번 말하자면, 우리 주위에 일어난 모든 것들에서 마지막 결론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이유다.”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에 있는 산이 그를 에덴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단테는 이 사람이 다름 아닌 베르길리우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찬양한다.


79 «Or se’ tu quel Virgilio e quella fonte

80 che spandi di parlar sì largo fiume?»,

81 rispuos’ io lui con vergognosa fronte.

79. “당신이 베르길리우스입니까?

80. 벅찬 강물처럼 말을 뿜어내던 원천입니까?”라고

81. 나는 그에게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82 «O de li altri poeti onore e lume

83 vagliami ’l lungo studio e ’l grande amore

84 che m’ha fatto cercar lo tuo volume.

82. “오, 시인들의 자랑이며 빛이시여!

83. 이것이 나를 평가하게 허락하십시오. 저의 오랜 공부와 저를 만든 심오한 사랑이

84. 당신의 책, <아이네아스>를 탐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85 Tu se’ lo mio maestro e ’l mio autore;

86 tu se’ solo colui da cu’ io tolsi

87 lo bello stilo che m’ha fatto onore.

85 당신은 나의 스승이며 나의 저자이십니다.

86. 당신은 나에게 명예를 만들어준 숭고한 문체를

87. 내가 유일하게 섭렵한 유일한 분입니다.


88 Vedi la bestia per cu’ io mi volsi:

89 aiutami da lei, famoso saggio,

90 ch’ella mi fa tremar le vene e i polsi».

88. 저를 돌아가게 만든 저 짐승을 보십시오.

89. 저를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도와 주십시오, 오 이름난 현자여!

90. 그녀(이 짐승)는 나의 핏줄과 힘줄을 떨게 만듭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는 스승으로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1300년이 지난 후, 단테라는 청년이 찾아와 그를 칭송한다. 베르길리우스(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는 기원전 70년에 키살피네 골Cisalpine Gaul에 있는 만투아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10개의 목가시인 Ecologues (Bucolica)를 저술했다. 단테는 이것을 모델삼아 자신도 Eclogae를 37년에 발표하였다. 그는 만년에 죽을 때까지 11년간(BC 30∼BC 19) 이 작품에만 열중했는데,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전 12권이 현존하고 있다. 이 시는 아이네아스의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네아이드’Aeneaid는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리스군(軍)에게 패배하여 멸망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그의 부하들과 함께 패전 후 7년째에 신의 뜻을 받고 각지를 방랑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라티움 땅에 로마제국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는 줄거리로서 로마 건국의 역사를 신화의 영웅과 결부시키려는 웅대한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를 쓴 시기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 이어서 이 시는 로마제국 찬가라고도 할 수 있다. 제4권의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아이네아스와의 비련(悲戀)은 이 시 중의 많은 삽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아이네아이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처럼 장대한 여행에 관한 서사시다. 그러나 13세기 유럽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시를 쓴 철학자였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로마를 건설한 시인이면서 동시에 철학자로 인생의 여정을 알레고리로 해석한다. 이 시는 영혼의 여행과 경험에 대한 은유다. 그는 익숙함과 편안함의 상징인 이타카를 떠나 트로이로 가서 거친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시 원점인 이타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화해야한다. 이것이 호메로스의 <오el세이아>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에 대한 신플라톤주의 알레고리다. 12세기 프랑스 작가 베르나 실베스터 Bernard Sylvester, 풀겐티우스Fulgentius 그리고 영국 작가 존 살리스버리John of Salisbury도 <아이네아이드>이야기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건국을 묘사한다.

<아이네아이드>는 인생의 전형과 단계를 보여주는 철학 문헌으로 수용되었다. 인생 여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지식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그러나 단테는 다르게 주장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이다. 그는 철학을 시로 대치함으로 시가 철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철학은 트로이에서 라티움으로 인도하는 강렬한 빛의 깊이를 가르칠 수 없다. 단테는 철학이 자신의 삶의 현실과 개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적인 언어는 이런 문제를 다룬다. 시와 역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지 헛된 약속으로 가득한 보편적인 철학을 다루지 않는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다시 시인으로 등극시켜 개인의 감정에 집중한다. 단테는 그를 스승이자 저자로 부른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호하게 해답을 제시한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는 ‘벅찬 강물처럼 말을 뿜어내는 원천’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평가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까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란다. 그리고 그를 시인들의 자랑이며 빛으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책 <아이네아드>를 단테를 오랫동안 공부하게 만들었고 심오한 사랑을 일깨워주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단테에게 스승이며 저자다.

단테는 저자autore를 Convivio IV.6.5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si prende per ogni persona degna d’essere creduta e obedita “신뢰할 만하고 복종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베르길리우스는 그에게 이 숭고한 문학형식을 알려주었다. 단테는 De vulg. eloqu II.4.5-8에서 ‘코메디’와 ‘애가’를 별도로 언급한다. 단테는 자신의 작품을 비극이라고 여겼고 그것이 ‘숭고한 문제’라고 묘사한다. 단테는 자신의 문체를 베르길리우스로부터 섭렵했다고 고백한다.


88 Vedi la bestia per cu’ io mi volsi:

89 aiutami da lei, famoso saggio,

90 ch’ella mi fa tremar le vene e i polsi».

88. 저를 돌아가게 만든 저 짐승을 보십시오.

89. 저를 그것으로부터 도와주십시오, 오 이름난 현자여!

90. 그녀(이 짐승, 암늑대)는 나의 핏줄과 힘줄을 떨게 만듭니다.”


과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짐승들을 물리치고 지옥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