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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0. (土曜日) “훈민정음訓民正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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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2021.11.20. (土曜日) “훈민정음訓民正音”

오늘 아침(11.22), 한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한국인, 아니 우리의 세계관을 보고 경악하였다. 그들은 조사대상이 된 선진국 17개국 국민들에게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다. 조사대상국들중 14개국이 ‘가족’을 뽑았다. 가족을 1순위로 뽑지 않은 세 나라는 스페인, 대만,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스페인은 건강을, 대만은 사회를 뽑았고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뽑았다. 이 답변은 예상했지만 괴이하다. 이런 가치관은 지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가 만든 넥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나 <지옥>에서 본 디스포피아를 완성할 것이다.

우리는 잊고 있다. 우리에겐 세계를 놀라게 만들 수 있는,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수 있는 위대함이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이 만든 ‘훈민정음’이다. 대한민국은 훈민정음 보유국이다. 지금 우리는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인들이 존경할 만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소수만이 그 기회를 알아차리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 그것은 노마크 찬스에서 빈 공간으로 골을 넣야 하는 축구 선수의 심정이다. 2022년 3월에 치룰 대선은, 골을 넣어야 할 절체절명의 기회다. COVID-19란 악재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게 호재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21세기 모든 국가들이 존경할 수 있는 국가로 개조될 수 있다. 존경받는 국가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고양된 공동체다.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선진국민이 다시 태어나면 된다.

세계가 이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시점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언덕 위에 등대’가 될 것인가? 누가 거친 바다에서 해도가 없어 좌초될 위기에 있는 인류에게 항해로 등대의 강렬한 불빛을 비출 것인가? 태양은 자신이 빛으로 충일하여, 아무리 먼 곳이라고 마다하지 않고, 틈만 있으면 광선을 선물로 보낸다.

누가 절체절명의 기회를 포착하여 인류를 위한 ‘언덕 위에 등대’가 될 것인가? 인류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공동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체제를 구상해왔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풍전등화와 같다. 그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선진적인 시민이 되어 최선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야만주의와 인기영합주의를 통해 또 다른 독재자를 용인하는 전체주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수 천년동안 왕정국가였다, 625전쟁 후, 급격한 변화가 한국을 휘몰아쳤다.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가 단기간에 소용돌이 속에서 진행되다 보니, 수많은 희생과 부작용이 생겨났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반열에 올라선 이유는 이 위기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민주주의란 거룩한 제단에 바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여권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류가 공감하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숭고한 가치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공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다. 공정과 자비는 동전의 양면이다. 자비가 없는 공정은 폭력이고 공정이 없는 자비는 방종이다. 이 두 가지는 선진국이 갖추어야 할 유전자이며, 현대문명을 이끌 표준이다. 이 두 가지가 거름이 되지 않는다면,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업적은 꽃을 피울 수 없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문자를 통해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었던 감동적인 표준을 제시하였다. 정교한 말과 소통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표시이며, 정성스런 글과 책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문화文化를 선물해 주었다. 그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삶의 표준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선진적인 개인이다.

문자의 기원은 요원하다.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알파벳은 기원전 18세기, ‘히브리인들’이라는 무명의 떠돌이들이 만들었다. 후대에 페니키아 상인들의 문자가 되었고, 기원전 8세기 그리스로 전파되어 오늘날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문자를 창제한 두 명의 리더가 있었다. 한 명은 기원전 5세기 인류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고 다른 한 명은 15세기 조선의 세종대왕이다. 다리우스 주도하게 만든 ‘고대 페르시아 문자’는 음절문자이며, 100년 동안 사용되었다 사라진다. 다리우스 왕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다르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 창조의 결정체다. 비록 창제 당시 중국의 억압으로, 20세기에 와서야 우리의 문자로 정착되었다. 훈민정음 혹은 한글은 조선의 양반들이 배운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사용한 언문으로 대한민국의 르네상스의 기반을 닦았다. 백성들이 먼저 사용하여 후에 귀족들이 사용하게 된 전복적이며 혁명적인 문자다.

훈민정음은 인간이 만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자 체계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글이 없어,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의 고충과 고통을 역지사지하여,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문자체계를 만들었다.

훈민정음이 애민정신은 선진이다. 물질만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우리를 일깨울 회초리다. 훈민정음은 공정하고, 자비롭고, 편리하고 친절하다. 다음은 훈민정음이 지닌 가치들이다.

첫째, 훈민정음은 ‘공정’하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알파벳이다. 문자가 인류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이동시켰다면, 알파벳은 인류를 독재에서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정의 기초를 놓았다. 소수가 정보를 독점하면 독재다. 훈민정음은 정보의 보편화를 실현할 수 있는 통로다.

둘째, 훈민정음은 ‘자비’의 결정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패권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과 국가가 쥘 것이다. 훈민정음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백성의 마음을 역지사지하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애민정신에서 출발하였다. 이 역시자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세종의 애민정신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인류의 표준국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이다. 선진국이나 선진국민은, 정치적으로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가, 혹은 GNP 숫자가 얼마나 높은 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 국가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비를 품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보통 사람은 타인과 경쟁하지만, 깨우친 인간은 자신이 되어야 할 자신을 상정하고, 그 자신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표준이 되고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이다. 자비는,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의, 배려, 친절, 감동, 신뢰를 만드는 거룩한 씨앗이다.

셋째, 훈민정음은 그 어떤 발음도 시각적으로 표시하기 ‘용이’하다. 알파벳 체계이면서, 동물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고 과학적입니다. 기적의 문자체계다. 영어단어는 철자와 그 발음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night를 ‘나이트’가 아니라 ‘니크트’라고 발음할 것이다. 한글은 아무 소리나, 예들 들어 ‘찌찌파챠뽀’와 같은 어려운 음성도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시대, 훈민정음에 원래 있었던, 잃어버린 홀소리와 닿소리를 회복하면, 생물과 무생물이 내는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인터넷 공간에서 영어를 대치할 문자다. K-문화가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이 역사적인 순간에, 잃어버린 닿소리와 홀소리를 회복하면, 모든 생물들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훈민정음은 ‘배려’의 상징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아프리카나 남미 정글에 무문자족이 많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이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영어 알파벳을 식민국의 언어를 표현하는데 사용했지만, 실제 발음과 달라 어려움이 많다. 지금이라도 무문자족이 지닌 신기한 음성은 영어가 아니라 훈민정음으로 표기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영어가 아닌 훈민정음으로 표기하여 소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무문자 민족들에게 빛이 될 것이다.

세종과 훈민정음과 정신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든든하고 감동적인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정신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새로운 자비의 정신을 일깨우는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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