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3. (土曜日) “추방追放”

사진

<추방자>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Antonio Ciseri (1821–1891)

유화, 1860 and 1870, 40 cm x 31 cm

스위스 루가노 캉토날 다르테 박물관Museo Cantonale d’Arte

2021.11.13. (土曜日) “추방追放”

우리는 추방당했다. 우리가 즐겨 가던 일상의 장소로부터 입장을 금지 당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다. 학생은 학교와 도서관에, 운동선수는 훈련장과 경기장에, 학자는 서재에, 예술가는 연습장과 공연장에, 소설가는 골방에서 자신의 이름과 직업에 어울리는 작업에 매진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취미를 살려주는 시설들에 갈수가 없다. 코로나가 아직 곁에 머물면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있다. 먼 훗날, 이 시기는, 인류의 이전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기폭 기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추방追放이란 자신에게 익숙한 터전으로부터 외부의 압력에 의해 분리되는 행위이자 상태다, 우리는 마을, 학교, 도시,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 절, 경기장, 빵집, 공항, 레스토랑과 같은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공식적인 허가 없이, 과거의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는 행위는 위법이며 심지어는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다. 21세기 코로나 인류는, 우리의 일상을 새로운 것으로 대치하라고 요구한다.

고대 로마법에서 ‘엑실리움’exsilium이란 라틴어 단어는 죽음의 대안으로 가해지는 사형으로 자발적인 망명이나 유배다. 추방은 강요한 망명으로 시민권과 재산을 박탈당한다. 유형流刑은 시민권과 재산을 보존하는 추방의 한 형태다. ‘디아스포라’는 자발적이거나 강요한 유배를 의미한다. 고대 로마에서 추방의 대상은 대개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건내 낸 천상의 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혜를 들어본 적인 없는 대중과 대중의 인기가 유지하는 권력은, 그런 자들을 항상 제거해왔다.

철학자는 자신에게 맡여진 사회적인 의무를 삶의 최고의 임무이자 가치로 여긴다. 복종을 요구하는 정치권력에게 철학자는 눈에 가시거리였다. 대부분 스토아철학자들은 추방당했다. 세네카와 에픽테토스는 한번 추방당했고 무소니우스는 두 번 추방당했다. 세네카가는 자신이 코르시카 섬에 위배당한 심정을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는 편지에서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자신의 추방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추방’은 ‘장소場所의 교환交換’일 뿐이다.

세네카는 41년 로마 황제 카리굴라의 여동생인 율리아 리빌라와 간통했다는 소문으로 기소되어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었다. 그는 황량한 섬에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 헬비라를 위로하면서 20장으로 구성된 위로의 편지를 썼다. 개인적으로 세네카의 최고의 라틴어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국땅에서 자신의 조국인 로마, 친구들, 가족, 그리고 재산을 잃었지만, 한 가지를 잃지도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Animus est, qui divites facit;

hic in exilia sequitur et in solitudinibus asperrimis,

eum quantum satis est sustinendo corpori invenit,

ipse bonis suis abundat et fruitur.

Pecunia ad animum nihil pertinet,

non magis quam ad deos immortalis.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마음(animus)입니다.

그것은 추방에도, 가장 혹독한 고독(혹은 광야)에도 우리를 따라옵니다.

마음은 신체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그것에서 발견합니다.

마음은 자신이 가진 선을 만끽하게 만듭니다.

마음은 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불멸의 신들이 (돈에 대해) 가지는 관심보다 크지 않습니다.”

De Consolatione ad Helvium 11.5

인류는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 추방당했지만, 세네카의 말대로, 외부의 공간보다 더 오래되고 사적인 공간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단테에게 추방을 불멸의 문필가로서의 천재성을 깨닫게 하는 유일무이한 섭리였다. 나는 나의 마음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수련하는가?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추방이라는 선언에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