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 (月曜日) “가만히”




새로운 달, 첫날은 무시무시하다. 금방 흘러가버리는 세월이 아쉬움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뭔가 신나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설렘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는 한 번도 이 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예상이 불가능한 막연漠然이 가져다주는 감정이다. 아쉬움과 설렘으로 가득한 이 경계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절호의 기회다. 인간은 그런 무시무시한 감정을 경험할 때, 어제까지 쌓인 편견을 무심하고 과감하게 깨고 감동적인 내일을 조각할 수 있다. 사실 월초라고해서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편의상 인위적으로 구별한 것 뿐이다. 우리가 그런 의미마저 자신에게 선물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너무 허무하다.

부귀영화를 누구보다도 누렸던 솔로몬이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 말년에 깨달은 지혜를 ‘한탄’으로 표현하였다. <전도서>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벨 하발림, 하벨 하발림’. 번역하지면 ‘인생이란 정말 헛되구나! 인생이란 정말 헛되구나!’. 히브리어 문법에서 동일한 단어를 단수형와 복수형을 차례로 나열하면, 최상급이 된다. 히브리어 ‘헤벨’hebel이란 단어는 ‘안개; 수증기’라는 의미다. 분명히 존재하여, 눈으로 어렴풋이 보이고 뺨으로 살포시 느낄 수가 있지만, 손으로 잡으려하면, 사라지는 안개가 바로 인생이다.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할 때, 생겨난다. ‘의미가 있는 삶’은, 우리가 정색을 하고 정신을 차려,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의 정수精髓까지 기어코 내려갈 때, 자신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의미는 하루를 신나게 작동시키는 연료다. 그 의미가 없는 삶, 그 의미의 존재를 까먹은 삶은 신이 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는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그 과정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무의미조차 의미에 대한 부산물이다.

나와 반려견 샤갈-벨라는 오늘부터 다른 산책코스를 개발하기도 결정했다. 우리는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사룡리 신선봉과 연결된 야산野山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곳은 샤갈-벨라가 집에서 풀리면 도망쳐 2시간 정도 탐색하던 산이다.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도 이 산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 야생동물들의 온전한 아지트다. 우리는 11월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새로운 산책길을 선물한 것이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 선물은 능동적으로 자기 일과를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산입구부터 잡목들과 담쟁이가 우리의 진입이 방해하다. 거대한 전나무가 쓰러져 창처럼 자신의 날카로운 가지로 우리를 거부한다. 우리를 막는 스핑크스다. 이제 막, 산 아래에서 등산을 시작하자, 벌써 저 멀리서 부산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고요하던 산 전체가 들썩인다. “써걱..써걱...사가사각사각....” 고라니 두 마리가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아마도 샤갈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도망가야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한 없이 친절한 샤갈에겐 아직 자신의 먼 조상 회색 늑대의 야생성이 남아있다. 수년전, 자신의 두 배가 되는 고라니의 목을 물고 허우적거리며 산에서 내온 적이 있었다.

야산은 낙엽, 밤, 도토리, 버섯, 야생동물의 배설물로 가득 차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야산으로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 곳은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찬란함과 무료함이 공존하난 신비한 시간이자 공간이다. 아니 일상을 초월한 에덴동산이다. 이 곳은 조화를 이루어 말로는 형용할 수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코라chora였다. 플라톤은 우주생성을 설명하면서 없음과 있음 사이에 존재해야하는 제3의 시간이자 공간을 그리스어로 ‘코라’라고 정의하였다.

이 코라와 같은 공간을, 산책을 생명처럼 여기 일생동안 수련한 임마누엘 칸트도 본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코라를 ‘다스 딩 안 지히’Das Ding an sich, 즉 ‘물자체物自體’라고 불렀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대상은, 겉모습인 현상일 뿐이며, 그 현상의 기반이 되는 근간이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고백이다. 우리는 그런 물자체를 신, 자유, 진리, 영혼과 같은 추상적인 용어로 부른다.

야산에도 정상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나무, 잣나무, 굴참나무가 장관을 이루며 어울러져 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과감하게 떨어뜨린 솔방울, 솔잎, 낙엽, 떨어져 나간 크고 작은 가지들로 푹신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가만히 앉았다. 정상까지 올라오느라고 샤갈이 연신 숨을 가쁘게 쉰다. 눈을 열고 귀를 여니, 야산이 자신의 소리인 침묵을 들려준다. 그 침묵은 가끔 떨어지는 낙엽과 도토리 소리로 중단되었다. 여러분은 ‘가만히’를 자신에게 선물하십니까? 집근처 야산으로 가십시오. 여러분에게 물자체를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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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룡리 신선봉 근처 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