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 (木曜日) “백로白鷺”


설악면은 백로白鷺 혹은 순수 우리말로는 ‘왜가리’의 서식지다. 나는 이들이 지난 8년 동안 매일 강물에서 노니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개울너머 높다란 나무 위에서 백로 세 마리가 영화 ‘와호장룡’에 등장하는 장쯔이처럼 흔들이는 가지위에서 영원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분명 명상 수련하는 것이 틀림없다. 약간의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가지를 선택하여 가만히 앉아있다. 명상은 여건이 될 때하는 수고가 아니라, 여건이 되지 않고 방해거리가 있을 때, 제대로 시도할 수 있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수련이다.

최근 한 분이 내가 백로(왜가리)와 백조(고니)를 혼동한 것 같다고 지적해 주셨다. 그런 지적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좀 더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이 신비한 동물을 ‘고니’로 착각했다. 고니는 백조白鳥의 순수 우리말로 몸집이 백로보다 크다. 백로는 날개 길이가 27cm, 꽁지는 10cm정도 가량이다. 백로는 삼삼오오 시냇물에서 헤엄쳐 다니거나 혹은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잡어가 근처에 오기만을 기다린다. 전혀 움직임이 없다. 나의 접근을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한다. 백로가 어디를 보는지 도무지 가름 할 수 없다. 검은 색부분의 끝은 다시 앙증스럽게 작지만 꿰뚫어 보는 선명한 눈으로 연결되어있다. 그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신비다.

고대 인도인들은 태초에 호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일신 전통처럼,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와 같은 땅이 아니라 호수를 택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신의 거울이라고 여겼다. 마나사로바르Manasarovar 호수는 그들이 말하는 천상의 호수들 중 하나다. 이 호수는 티베트 자치구의 가장 서쪽에 있는 호수로 신비한 카일라스 산의 가까이에 있다. 해발 4,556m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淡水湖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누구든지 이 호수 물을 마시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었다. 인도, 네팔, 티벳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순례자들이 이곳에 몰려온다. 그들은 이곳의 물을 한잔 마시고, 몸을 담 궈 과거의 삼을 유기하고 새로운 삶을 스스로에게 결심한다. 1세기 회개세례를 베풀던 세계요한의 요단강과 유사하다. 이 호수에는 궁극적인 실체를 상징하는 동물이 거주한다. 바로 ‘함사hamsa(हंस)’다. ‘함사’는 ‘백조’ 혹은 ‘고니’라고 번역된다. 함사는 생명의 숨을 상징하고 명상의 가시적인 동물로 등장한다.

<파라마함사 우파니사드>는 우파니샤드의 하나로 <아싸르바베다>에 속해 있는 31개 우파니샤드 중 하나다. 힌두교에서 영적인 스승은 ‘백조’와 연관되어있다. 그(녀)를 ‘파라마함사’Paramahamsa라고 부른다. ‘파라마함사’는 축자적으로 ‘숭고한 백조’라는 뜻으로 영적으로 깨우친 사람, 요가수련의 최고단계인 삼매에 진입하여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을 이른다. 백조는 육지에 있을 때나 호수에 있을 때나,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다. 동시에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도 감지하지만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숭고한 백조’와 같은 요가수련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비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누구를 시기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시체로 여긴다.

함사, 즉 신적인 백조는 요가수련을 마친 사람의 탁월성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다. 그런 자는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과 같이, 스스로에게 몰입되어있다. 그런 자는 깨달음의 경지를 위해, 남편, 아내, 아들, 딸, 친척, 심지어는 의례를 하지도 경전을 읽지도 않는다. <파라마함사 우파니샤드> 제 2장에 그런 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숭고한 백조는 추위나 더위를 타지 않는다.

쾌락이나 고통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존경에도 무시에도 상관이 없다.

숭고한 백조는 중상모략, 자존심, 질투, 사기, 건방, 그리고 욕망을 포기한다.

그(녀)는 미움, 쾌락, 고통, 정욕, 분노, 욕심, 기만을 포기한다.

그는 흥분, 분개, 이기심과 같은 것들을 포기한다.

그는 자신의 영원하고 순수한 존재에 거한다. 그것만이 그것 자체만의 그의 상태다.

그에게, 그 상태는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며, 희열과 의식의 융합이다.

그것만이 그의 가장 갈망하는 거주지다. 그것만이 그의 상투이며 거룩한 줄이다.

그는 가장 높은 자아인 브라만과 기장 낮은 자아인 아트만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앞에서 그 차이는 사라져 하나가 된다.

이 깨달음이 그가 저녁놀에 드리는 노래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시냇가로 돌아오는데, 세 마리 백로가 똑같은 자세로 스스로에게 몰입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 흔들리는 가지가 마나사로바르 호수이며, 이 순간이 자신의 최선을 드러나는 영원이다. 내가 갈망하는 거주지는 어디인가? 내가 부를 노래는 무엇인가?

사진

<설악면 백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