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木曜日) “매일묵상쓰기 챌런지”



오늘은 ‘매일묵상’이란 이름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페북에 글을 쓴지 ‘천일’이 되는 날입니다. 2019년 1월 29일 “악마는 천사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매일묵상’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시간時間’입니다. 저 시냇물처럼 야속하게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매일묵상’이라는 괴물을 만났습니다. 10년 전부터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해 왔지만, 이젠 온전히 제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글을 하루라도 밀리면, 안절부절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불안입니다. 심지어 2주정도 밀려, 이전에 연재했던 글들을 한꺼번에 올린적도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을 가졌으니까요. 글쓰기를 제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신이 만나자고 청해도, 매일묵상 쓰는 시간을 방해한다면, 거절할 것입니다. 이 과정 중에, 저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이끌어주는 아내가 가장 고생했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저를 견뎌냈으니까요. 아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단테가 묘사한 지옥을 건너갔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아직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욕심을 버리기는커녕, 더욱 강화된 느낌이라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글쓰기는 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최소의 장치라 멈출 수 없습니다. 이 글들을 쓰지 않았다면, 더 형편이 없는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묵상 30분, 샤갈-벨라와 산책 1시간 30분, 독서 2시간, 그리고 ‘매일묵상’ 작문 2시간. 이 일과는 제 삶의 가장 중요한 의례입니다. 하루의 오전시간을 작문에 헌신해왔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두 분이 있습니다. 제 반려견들인 샤갈과 벨라입니다. 제가 아침 일찍, 명상방석위로 올라가면, 이들도 제 곁에 앉아 명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제가 눈을 뜨면, 꼬리를 흔들고 코와 입으로 제 몸을 이리저리 밀고 당깁니다. 이들은 제 건강과 정신을 고양시켜준 인생의 스승들입니다. 걷기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든 기둥이 되었습니다. 자비로운 자연은 하루도 빠짐없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독서와 작문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치스런 선물을 줍니다. 바로 고요와 침묵입니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5000년 역사를 통해,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산 성현들이나 작가들이 남긴 책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경청하는 것입니다. <바가바드기타>는 크리슈나와 아르주나가 우리가 사는 전쟁터와 같은 쿠루평원에 등장하여, 친절하게 인생전력을 알려줍니다. <명상록>은 우리를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동유럽 ‘콰디’라는 야전에 마련된 막사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로마제국 전체를 치리하고 매일 매일 게르만 족과 전쟁을 치루는 황제가 목욕재계沐浴齋하고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들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시편>을 읽으면, 다윗이 부하의 아내를 강간하고, 자신의 죄를 누우치는 참회의 노래를 생생하게 듣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렉스>를 읽으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안 오디이푸스가 어머니 옷을 장식했던 브로치로 자신을 눈을 찌를 때, 우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 흘러나옵니다.

작문은, 그런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조각하는 정이며 망치입니다. 인생은 아직 다짐어지지 않는 원석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굳이 없어도 되는 감정, 생각, 그리고 이것들 만들어낸 관계들을 과감히 제거해야합니다. 가만히 글을 쓴다는 것은, 자만의 삶의 스타일을 조각하는 작업입니다. 글쓰기는 희망입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조금씩 변화하고 변모하여 삶의 혁명을 일으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제가 매일묵상 글을 쓴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인 ‘일기’쓰기를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챌런지합니다. 11월 1일부터, 100일 동안 자신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고 매일묵상 일기를 쓰실 30분을 구합니다. 이 30분들에게 여러분의 이름이 새긴 매일 묵상 몰스킨 수첩과 ‘위대한 개인’의 첫 번째 책인 <심연>을 서명하여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름, 주소, 그리고 매일묵상을 쓰는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글을 써서 eduba@naver.com으로 보내십시오. 선발하여 보내겠습니다. (제목: 매일묵상 첼런지)

이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인 한명이, 대한민국입니다.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대한민국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매일묵상 천일을 기념하여 제가 스스로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했습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7장에 등장하는 “독서와 작문에 관하여”(Vom Lesen und Schreiben)가 떠올라 번역하였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압권입니다. 시간을 내시고 가만히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0월 21일

배철현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7장 “독서와 작문에 관하여”

1. 암송暗誦하십시오!

Von allem Geschriebenen liebe ich nur Das, was Einer mit seinem Blute schreibt.

Schreibe mit Blut: und du wirst erfahren, dass Blut Geist ist.

Es ist nicht leicht moglich, fremdes Blut zu verstehen: ich hasse die lesenden Müssigganger. Wer den Leser kennt, der tut Nichts mehr für den Leser.

Noch ein Jahrhundert Leser-und der Geist selber wird stinken.

Dass Jedermann lesen lernen darf, verdirbt auf die Dauer nicht allein das Schreiben, sondern auch das Denken.

Einst war der Geist Gott, dann wurde er zum Menschen und jetzt wird er gar noch Pöbel. Wer in Blut und Spruchen schreibt, der will nicht gelesen,

sondern auswendig gelernt werden.

(번역)

기록된 모든 글들 가운에, 저는 한 개인이 자신의 피로 쓴 것만 사랑합니다.

피로 쓰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피가 정신이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낯선 피를 이해하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저는 게으름뱅이가 글을 읽는 것을 혐오합니다.

독자를 아는 사람은, 그 독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100년간의 신문만 읽는 독자(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 자체는 악취를 풍길 것입니다.

누구나 글을 읽도록 허용된다면, 결국 읽기뿐만 아니라 생각도 썩게 될 것입니다.

한 때 영혼은 신이 되었다가, 그 후에 인간이 되었고, 지금은 대중이 되었습니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고 마음으로 암송暗誦되기를 원합니다.

2. 전사戰士가 되십시오!

Im Gebirge ist der nachste Weg von Gipfel zu Gipfel:

aber dazu musst du lange Beine haben. Sprüche sollen Gipfel sein: und Die, zu denen gesprochen wird, Grosse und Hochwüchsige. Die Luft dünn und rein, die Gefahr nahe und der Geist voll einer fröhlichen Bosheit: so passt es gut zu einander.

Ich will Kobolde um mich haben, denn ich bin mutig.

Mut, der die Gespenster verscheucht, schafft sich selber Kobolde, -der Mut will lachen.

Ich empfinde nicht mehr mit euch:

diese Wolke, die ich unter mir sehe, diese Schwärze und Schwere, über die ich lache, -gerade das ist eure Gewitterwolke.

Ihr seht nach oben, wenn ihr nach Erhebung verlangt. Und ich sehe hinab, weil ich erhoben bin.

Wer von euch kann zugleich lachen und erhoben sein?

Wer auf den höchsten Bergen steigt, der lacht uber alle Trauer-Spiele und Trauer-Ernste.

Mutig, unbekümmert, spottisch, gewalttätig-so will uns die Weisheit:

sie ist ein Weib und liebt immer nur einen Kriegsmann.

(번역)

산맥에서 가장 가까운 길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긴 다리를 가져야합니다. 잠언은 산봉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거대하고 높이 자란 자만이 잠언을 들을 것입니다.

공기는 희박하고 정결합니다.

위험은 도사리고 즐거운 악의로 가득한 영혼은 서로 잘 어울립니다.

저는 도깨비를 곁에 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용맹스럽기 때문입니다.

유령들을 쫓아내 버리는 용기가 스스로 도깨비를 창조합니다. 그러면 용기는 웃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더 이상 같은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제 밑에 보는 저 구름, 저 검고 무거운 구름, 제가 비웃은 검고 무거운 구름,

바로 이것이 당신의 번개구름입니다.

여러분들이 높이 오르려할 때, 위를 봅니다. 저는 이미 높임을 받기 때문에, 내려다봅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가 높이 저처럼 똑같이 올라와 웃을 수가 있습니까?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은, 비극적 유희와 비극적 심각에 대해 모두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용기를 품고 개의치 말고, 냉소적이며, 위압적으로 행동하십시오.

지혜는 우리가 이러길 원합니다. 지혜는 여인이며, 전사만을 사랑합니다.

3. 사랑하십시오!

Ihr sagt mir: „das Leben ist schwer zu tragen.“

Aber wozu hättet ihr Vormittags euren Stolz und Abends eure Ergebung?

Das Leben ist schwer zu tragen: aber so thut mir doch nicht so zärtlich!

Wir sind allesammt hübsche lastbare Esel und Eselinnen.

Was haben wir gemein mit der Rosenknospe, welche zittert,

weil ihr ein Tropfen Tau auf dem Leibe liegt?

Es ist wahr: wir lieben das Leben, nicht, weil wir an's Leben, sondern

weil wir an's Lieben gewöhnt sind.

Es ist immer etwas Wahnsinn in der Liebe.

Es ist aber immer auch etwas Vernunft im Wahnsinn.

당신들이 나에게 말합니다: “삶은 짊어지기 힘듭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아침에 가졌던 자존심과 저녁에 가졌던 자포자기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삶은 짊어지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민한 척 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꽤나 튼튼한 당나귀와 암 당나귀입니다.

당신은 이슬 방울이 자신의 몸에 형성되었다고 흔들리는 장미봉오리와 무엇이 같습니까?

이것은 진실입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는데 익숙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데 익숙해서입니다.

사랑에는 언제나 광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광기에도 항상 어떤 이성이 있습니다.

4.

Und auch mir, der ich dem Leben gut bin, scheinen Schmetterlinge und Seifenblasen und was ihrer Art unter Menschen ist, am meisten vom Glücke zu wissen.

Diese leichten törichten zierlichen beweglichen Seelchen flattern zu sehen — das verführt Zarathustra zu Tränen und Liedern.

Ich würde nur an einen Gott glauben, der zu tanzen verstünde.

Und als ich meinen Teufel sah, da fand ich ihn ernst, gründlich, tief, feierlich:

es war der Geist der Schwere, — durch ihn fallen alle Dinge.

Nicht durch Zorn, sondern durch Lachen tödtet man.

Auf, lasst uns den Geist der Schwere tödten!

Ich habe gehen gelernt: seitdem lasse ich mich laufen.

Ich habe fliegen gelernt: seitdem will ich nicht erst gestossen sein,

um von der Stelle zu kommen.

Jetzt bin ich leicht, jetzt fliege ich, jetzt sehe ich mich unter mir, jetzt tanzt ein Gott durch mich.

Also sprach Zarathustra.

삶에 호의적인 저에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 이것들과 같은 자들이 인생의 행운에 관해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가볍고 어리석고 예쁘고 활기에 찬 작은 영혼들이 파득거리며 돌아다는 것은 차라투스트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부르게 만듭니다.

저는 춤을 추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입니다.

제가 발견한 저의 악마를 볼 때, 그 악마는 심각하고, 심오하고 엄숙합니다.

그는 무거움, 즉 중력의 영혼입니다. 그를 통해 만물은 땅에 떨어집니다.

분노가 아니라 웃음을 통해 우리를 그 악마를 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중력의 영혼을 우리가 살해합시다.

저는 걷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후에야 제가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후에야 한 장소로부터 이동하기 위해서, 제가 다른 사람에 의해 밀쳐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가벼우며, 지금 날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제 밑에 제 산을 봅니다. 지금 한 하나님이 저를 통해 춤을 춥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진

<산책중인 샤갈과 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