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0. (水曜日) “신뢰信賴”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치들이 있다. 가족에겐 사랑이, 공동체에겐 정직과 신뢰가,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다. 교육은 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고양시키는 체계다. 내가 타인에게 정직이나 공정을 요구할 수 있는가? 내가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사랑하는 수련할 한자만이, 2인칭과 3인칭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변모시킨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겐 황금률이 있다. 하나님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랍비들은,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벙을 어떻게 신장할 수 있는가 오랫동안 토의했다. 그들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신과 인간도 사랑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마가복음> 10장 후반부엔 예수가 한 장님을 고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장님은 신체적으로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자신의 시야에 갇혀, 세상을 자신이 착용한 이기심이라는 무식이라는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제 막 여리고 성을 떠날 참이었다. 그때 길가에 장님 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르티마에우스Bartimaeus다. 이 이름의 이름은 아람어로 ‘티마이오스의 아들’이란 뜻이다.

티마아오스는 그리스어다. 플라톤이 기원전 360년경 저술한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티마이오스>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크리의 티마이오스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명성’이란 의미를 지닌 ‘티메’time에서 유래했다. ‘바르티마이오스’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명성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을 똑바로 평가하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안절부절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예수가 그 길을 지나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친다. 제가들이 그를 저지하자, 더욱 큰소리로 예수를 부른다. 그러자 예수가 가던 길을 멈춘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간절하게 소리치는 장님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는 이 호출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겉옷을 집어 던지고 예수에게로 달려갔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불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장님은 겉옷을 던짐으로 과거의 자신을 유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르티마이오스가 그에게 말했다. “랍비여, 제가 다시 보길 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을 깊이 알고, 주위를 있는 그대로, 연민의 눈으로 보겠다는 결심이다. 그랬더니, 예수가 <마가복음> 10장 52절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Ὕπαγε, ἡ πίστις σου σέσωκέν σε.

Hypage, he pistis sou sesōken se.

‘휘파게, 헤 피스티스 수 세소켄 세’

위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자, 잘 들어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는 자신이 그를 기적적으로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문장에서 ‘헤 피스티스 수’의 번역과 해석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너의 믿음’이란 문구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네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네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전자 해석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신에 대한 믿음을 표시할 수 있을까? 그 믿음은 말인가? 아니면, 마음가짐, 말, 그리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태도인가? 신에 대한 믿음은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후자해석은 ‘자기자신을 깊이 신뢰하는 태도’다. 바르티마이오스는, 예수라는 청년에게 달려가면, 주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을 깊이 관조할 수 있는 장님 상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기신뢰’다.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믿고, 그것을 거침없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는 바르티아이오스에게 ‘내가 너를 고쳤다’ 혹은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너의 믿음’ 즉, 자기 신뢰가 그를 고쳤다고 말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나는 내 자신을 신뢰하는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치들이 있다. 가족에겐 사랑이, 공동체에겐 정직과 신뢰가,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다. 교육은 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고양시키는 체계다. 내가 타인에게 정직이나 공정을 요구할 수 있는가? 내가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사랑하는 수련할 한자만이, 2인칭과 3인칭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변모시킨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겐 황금률이 있다. 하나님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랍비들은,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벙을 어떻게 신장할 수 있는가 오랫동안 토의했다. 그들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신과 인간도 사랑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마가복음> 10장 후반부엔 예수가 한 장님을 고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장님은 신체적으로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자신의 시야에 갇혀, 세상을 자신이 착용한 이기심이라는 무식이라는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제 막 여리고 성을 떠날 참이었다. 그때 길가에 장님 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르티마에우스Bartimaeus다. 이 이름의 이름은 아람어로 ‘티마이오스의 아들’이란 뜻이다.

티마아오스는 그리스어다. 플라톤이 기원전 360년경 저술한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티마이오스>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크리의 티마이오스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명성’이란 의미를 지닌 ‘티메’time에서 유래했다. ‘바르티마이오스’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명성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을 똑바로 평가하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안절부절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예수가 그 길을 지나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친다. 제가들이 그를 저지하자, 더욱 큰소리로 예수를 부른다. 그러자 예수가 가던 길을 멈춘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간절하게 소리치는 장님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는 이 호출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겉옷을 집어 던지고 예수에게로 달려갔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불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장님은 겉옷을 던짐으로 과거의 자신을 유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르티마이오스가 그에게 말했다. “랍비여, 제가 다시 보길 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을 깊이 알고, 주위를 있는 그대로, 연민의 눈으로 보겠다는 결심이다. 그랬더니, 예수가 <마가복음> 10장 52절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Ὕπαγε, ἡ πίστις σου σέσωκέν σε.

Hypage, he pistis sou sesōken se.

‘휘파게, 헤 피스티스 수 세소켄 세’

위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자, 잘 들어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는 자신이 그를 기적적으로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문장에서 ‘헤 피스티스 수’의 번역과 해석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너의 믿음’이란 문구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네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네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전자 해석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신에 대한 믿음을 표시할 수 있을까? 그 믿음은 말인가? 아니면, 마음가짐, 말, 그리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태도인가? 신에 대한 믿음은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후자해석은 ‘자기자신을 깊이 신뢰하는 태도’다. 바르티마이오스는, 예수라는 청년에게 달려가면, 주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을 깊이 관조할 수 있는 장님 상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기신뢰’다.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믿고, 그것을 거침없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는 바르티아이오스에게 ‘내가 너를 고쳤다’ 혹은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너의 믿음’ 즉, 자기 신뢰가 그를 고쳤다고 말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나는 내 자신을 신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