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8.(火曜日) “Memento Mori”


COVID-19는 인류를 과거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구축하하고 요구한다. 인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의 공간인 연옥煉獄에 도착하였다. 연옥은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을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천국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9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순간처럼 흘러가 버렸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전염병이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인류는 이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동거하고 공생할 것이다. 인류가 대면을 통해 지난 6000년동안 문명과 문화를 구축해 왔다면, 이제 우리는 COVID-19이라는 암초를 만나 익숙하지 않는 ‘비대면’이라는 축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인류역사의 대전환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21세기 인류를 이끌어갈 선진적인 인간은, 비대면시대에 사는 인류를 위한 새로운 문화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 문법을 구축하는 자일 것이다.

인류는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수용할 밖에 없다. COVID-19은 인류에게 ‘고독孤獨’의 삶을 요구한다. 이 생소한 삶이 생존방식이 될 것이다. ‘고독’이란 ‘외로움’과 다르다.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이지만, 고독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구별된 시간과 공간을 선물하고 최고의 사치다. 고독은 개인을 더 개인답게 만들고 독보적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습득해야하는 구별된 습관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남들과 부화뇌동하고 그들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이 깨달은 임무를 용맹스럽게 실천한 영웅들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깨달았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핵심은 필멸성必滅性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일생처럼 산다. 그런 깨달음은 최선으로 이어진다.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이 순간은 찰나刹那이기도 하고 영겁永劫이다. 나눌 수 없는 찰라가 이어져 영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거른 일생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만일 내 삶에서 오늘 하루를 그럭저럭 보냈다면, 그곳은 하루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일생의 낭패다.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삶이 영원하다고 착각한다. 그런 자의 특징은 늦장과 연기다. 하루를 자신의 알량한 쾌락의 충족을 위해 산다. 혹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가면을 쓰고 그들의 장단에 춤을 춘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말한 것처럼, 운명의 여신이 와서 한 인간의 생명을 거두어 가면서 말한다. “네 인생은 오늘부로, 5막이 아니라 3막이다. 이제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려와라!” 그가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신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눈치보는 자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보다는, 주변사람으로부터 듣는 소문 혹은 알지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댓글이 더 중요하다. 그의 삶의 원칙은 체면이며, 그 방식은 흉내이거나 변명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른 새벽에 혹은 늦은 저녁에, 자신의 언행을 뒤돌아보며, 자신이 흠모했던 하루를 살았다면 그 자신을 축하하고, 그렇지 못했다면 꾸짖는다. 그(녀)는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웃음을 잃지 않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분노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아까워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감동적이고 타인에게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여 영원히 사는 것이란 것을 알고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몰입과 집중은 지혜로운 자의 특징이다.

지혜로운 자는 가슴속에 오늘을 인생처럼 살기 위해 주문呪文을 외우고 있다. 그 주문이 라틴어로 ‘모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이 문구는 죽음의 필연성을 알려주는 표현으로 스토아철학자들이 삶의 철학이었다. 후에 그리스도교가 이 문구를 사용하여 자신들이 교리로 만든 사후세계와 영혼 구원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상징되었다. ‘모멘토 모리’를 번역하자면 이렇다. “당신이 일생을 통해 어떻게 죽은 것이 최선이지를 기억하십시오!” 혹은 “당신이 (반드시) 죽는 다시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다. 인생에서 확실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인생이란 천천히 죽는 것이며, ‘모멘토 모리’를 통해, 오늘 하루를 영원히 의미가 있고 아름답게 살기 위한 예술이다.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는 <도덕 편지들> 101.7a-8a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우리가 오늘 인생의 마지막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을 준비하십시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연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오늘 인생이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검토합니다.”

고대 로마에는 개선장군을 축하하는 의식이 있었다. 장군은 황금왕관을 쓰고 금으로 수놓은 자줏빛 외투인 ‘토가’를 입고 네 필의 말이 끄는 전차, ‘콰드리가’에 올라타 로마시내 개선문을 통과한다. 로마시민들은 승리의 찬사를 보낸다. 장군이 우쭐하는 동안 전차에 뒤편에 동승한 장군의 노예가 장군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인다. “모멘토 모리, 모멘토 모리, 모멘토 모리.”

‘모멘토 모리’는 인류의 쾌락적인 삶을 중단시킨 COVID-19시대에 어울리는 문구다. 인류는 엄연한 인간의 운명인 죽음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을 회피해왔다. 혹은 죽음을 맞이하여 우리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채 해왔다. 인간의 곰곰이 생각해야할 가장 거룩한 대상이 바로 죽음이다. 나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도 죽는다는 사실이다. 철학의 시조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죽음에 관한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인류가 지금까지 삶의 편리와 쾌락을 통해 ‘외면의 풍요’를 구축해왔다면, 이제는 COVID-19를 통해 ‘내면의 성숙’를 수련할 역사적인 시점이다. 우리에겐 죽음이 생각하기도 싫은 터부이다. 그러나 ‘모멘토 모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올 죽음을 숙고하고 명상하여 지금 인생을 완벽하고 온전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만트라다. 내가 오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나에게 맡겨진 임무에 몰입은 나에게 불멸의 자유를 선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죽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누구에게 노예가 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서서히 죽고 있는가? 나는 오늘 나에게 맡겨진 그 유일무이한 임무를 위해 최선을 경주하는가? 나는 내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사진

<해골을 보는 정적인 삶>

프랑스 화가 필립 드 샹파뉴 (1602–1674)

유화, 1671, 28,0 x 37,0 cm

프랑스 르망 테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