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는 잠시 재미를 선사하고 고전古典은 인생을 사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 경전은 인생을 바꾸고 인류 문명과 문화의 기준基準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상거래를 위해 갈대를 꺾어 눈금을 치고 상호간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기준이 되는 자를 고대 히브리로 ‘카네’qāneh(קָנֶה)라고 불렀다.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카네’는 공동체 삶을 원활하게 움직이는 기준이 되었다. ‘카네’가 고대 그리스로 차용되어 고대 그리스어 ‘카논’κανών, 그 후에 라틴어 canōn이 되었다.
캐논은 그리스도교가 등장하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들을 골라 ‘캐논’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도교의 66권은 그들이 수백년동안 치열한 논쟁을 거쳐,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사람의 인생을 전환 시킬 정도로 강력한 ‘경전’으로 확신하고 그것을 고정하였다. 고대 인도인들도 수많은 현인들의 어록 가운데, 특별한 어록들을 별도로 구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나뭇잎에 문구를 기록하고, 그 잎들을 차곡차곡 겹쳐 하나로 묶었다.
특별한 묶음을 고대인도인들은 산스크리트어로 ‘수트라’sūtra(सूत्), 팔리어로는 ‘수타’sūtta라고 불렀다. 이 단어들은 ‘실로 엮다’라는 의미를 지는 동사 ‘시브’siv의 과거분사형으로 ‘실로 엮여진 것’이란 의미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국인들은 이런 책을 한자로 ‘경전’經典이라고 불렀다. ‘경전’은 실로 정성스럽게 엮은 책으로 제사상 위에 올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의미다. 성서, 꾸란, 논어, 도덕경, 금강경, 바가바드기타, 아베스타와 같은 경전들은 그것을 읽고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삶는 자들에게 언제나 영감을 준다.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2세기 무렵 일련의 책들만을 ‘정경正經’이라고 불렀다. 개신교 성서 66권이 정경이다. 정경에 속하지는 않지만 읽을 만한 책들은 ‘외경’外經이다. 가톨릭은 위경을 정경 뒤에 첨부하였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명된 책들을 ‘위경’僞經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일련의 문서들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특히 삼위일체 교리에 반하는 책들을 별도로 선택하여 ‘이단異端’으로 규정하였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위협하는 집단으로 지목한 사상이 ‘영지주의’다.
2세기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는 보물을 찾는 열정을 담은 어록이 있다. 영지주의는 기원후 1,2세기 지중해 지식인들의 그리스도교 이해로,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이었다. 기원후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제국종교가 되면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사라졌다. 100년 전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낙-함마디라는 장소에서 콥트어(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언어)로 기록된 영지주의 파피루스를 발견하여 그 사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도마복음서>는 저자 도마를 소개하는 프롤로그와 114개의 예수의 어록語錄으로 이루어진 복음서다.
<도마복음서> 첫 번째 어록은 이렇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누구든지 이 어록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이록은 독자들이 의무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해석은 지적인 유희가 아니라 사람을 살이고 죽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 글의 저자인 도마는, 자신의 어록을 읽고 올바로 해석하는 사람을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어록의 시작인 ‘그가 말했다’에서 ‘그’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어록 2부터는 “예수가 말했다”라
표현이 등장하지만 어록 1에서는 고유명사 “예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도 어록1은 어록전체에 대한 서문으로, 유다 도마가 편집자적 노트로 적었을 수도 있다.
이 어록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다름 아닌 영생이다. 이 어록의 발화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다. 도마가 독자들에게 자신이 예수의 어록을 쓴 이유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마는 독자들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혹은 예수 자신이 어록을 남긴 이유를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수의 어록을 이해하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불멸이 이르는 유일한 길은 이 어록들의 ‘해석解析’을 “발견發見”하면 된다. 그러므로 불멸의 길은, 예수나 경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해석을 시도하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독자의 목적은 예수를 발견하거나, 예수가 남긴 말을 축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가 남긴 어록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지극히 사적인 수고다. 이 해석은 사람이나 공동체가 남긴 문헌에 대한 분석이다.
해석을 발견해야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독자들은 어록을 새롭게 해석하지 말고, 글자와 글자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해석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어록들을 이미 읽고 이해는 공동체는 이미 “해석”을 남겨놓았으며 독자들은 바로 그 해석을 들추어내고, 발견하고 회복시키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 어록들과 익숙해져 이미 완성되어 있는 어록에 대한 해석을 발견해야만 한다.
이 어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4명이 있다: 예수, 디뒤모스 유다 도마, 내레이터, 독자. 이들 모두가 어록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죽음이 예수의 말이나 유대 도마의 기록을 막을 수는 없다. 이 어록이 의도하는 목적은 단순히 해석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 실생활에서 경험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문구는 무슨 의미인가? 이 문구에는 ‘죽음’과 ‘맛보다’라는 서로 다른 내용을 엉켜있다: ‘맛보다’라는 표현은 실제 삶의 경험이지만, 죽음은 인간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이 어록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에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구원의 가능성을 여는 문장이다. <요한복음> 8.51-52에서도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예수가 제시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
<도마복음서> 저자는 해석을 발견하기 위한 네 가지 단계를 어록 2에서 설명한다. 어록 2는 다음주 수요일(9일) 매일묵상에서 소개할 것이다.
사진
<낙함마디 코덱스 II>
‘요한위경’의 마지막과 ‘도마복음서’ 시작이 콥트어로 기록되었다.
4세기 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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