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공간적으로 육체에 갇혀있고 시간적으로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에 감금되어있다. 순간의 삶을 사는 인간이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발휘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경전과 고전은 그 시공간을 ‘정원庭園’이라고 불렀다. 정원은, 별들의 신비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우주와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하지만 규칙적으로 변하는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려는 인간의 인위적인 작품이다. 정원이라는 축소판 우주와 자연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
정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Cyrus the Great다. 키루스는 ‘파사르가데Pasargadae’라는 도시에 왕궁과 신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장을 구축하였다. 그는 흙먼지가 흩날리는 허허벌판에서 불가능한 구조물을 상상하였다. 저 높은 하늘 끝에 존재할 것만 같은 ‘장소같지 않는 장소’다. 영국시인 토머스 모어는 그 장소를 ‘유토피아’Utopia라고 불렀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최선의 장소다.
키루스는 이 장소를 ‘파리다이짜’(*paridaiza)라고 불렀다. ‘파리다이짜’는 이란의 가장 오래된 언어인 아베스타어 ‘파이리다에짜’pairidaēza에서 유래한 단어로, 후대 그리스어로 ‘파라데이소스παράδεισος’. 라틴어로 ‘파라디수스paradīsus’, 아람어로 ‘파르데스’Pardes로 차용된 후, 영어 ‘파라다이스’paradise가 되었다. ‘파리다이짜’의 의미는 ‘사방(파리)이 벽으로 둘러싸인 (다이짜) 구별된 장소’라는 의미다. 키루스근처 산에서 끌고 온 물을 정원 중앙에 마련된 십자형 수로를 따라 흐르게 만들었다. 페르시아 정원은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기초로 건축되었다. 이곳에는 900m 길이의 석회암이 수로를 형성하고 정원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15m 침전지에 물을 공급한다. 정원은 온갖 열매와 사이프러스 나무, 장미, 백합, 자스민, 그리고 진귀한 풀로 가득 차 있다.
고대 이스라엘 저자는 페르시아의 ‘파이리다이짜’와 같은 장소로부터 영감을 받아, 신이 인간을 위해 마련한 지상의 최초의 거주지를 ‘에덴동산’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에덴동산’이란 히브리어 원문 표현은 ‘간 버-에덴’gan bə-ʿēden이다. 히브리어 원래 문구 ‘학-간 아쉘 버-에덴’hag-gan ʼăšer bə-ʿēden이다. 이 문구의 의미는 ‘에덴에 있는 바로 그 정원’이란 뜻이다. ‘에덴’은 원래 인류 최초로 도시와 문자를 발명한 수메르인들이 광야 한 가운데서 발견한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를 의미하는 수메르 단어인 ‘에딘’ENID에서 유래했다. ‘에딘’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 깊은 곳에 샘물이 흐리고 있어 광야에 울창한 나무와 꽃, 그리고 목을 축이기 위해 그곳을 찾는 새와 동물들의 서식지인 ‘평원’을 지칭하는 용어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 아담을 ‘에덴에 마련한 한 동산’에 놓는다. 아담은 이곳에서 밭을 갈고 나무를 가꾸는 농부가 되었다. 그가 이 정원을 가꾸는 일은 단순한 노동일뿐만 아니라, 신의 명령을 준수하는 일종의 의례이자 예배였다. ‘땅을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아바드’ʿābad는 ‘신을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지닌다. 인간은 정원사가 되어, 아무것도 아닌 씨가 땅에 뭍여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싹을 틔우고 줄기와 가지를 내고, 저마다 자신의 유전자에 따라서 소나무가 되기도 하고 민들레가 되기도 한다. 정원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 밑에 흐르는 물, 아침안개, 적당한 햇빛, 공기가 함께 어울려 신비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정원은,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찾아 가는 시공간이다. 복음서들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 처형되기 전날 예루살렘에 위치한 올리브 산을 찾았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올리브 산기슭에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이 들어가 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고 기록한다. ‘겟세마네’는 ‘올리브 기름(semane)을 짜는 착유기(geth)’라는 의미다. <마가복음> 저자는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용어대신, ‘변화를 일이키는 작은 코라’란 의미를 지닌 ‘코리온’χωρἰον을 사용하였다.
<요한복음> 저자는 당시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문명세계의 문화를 융합하여, 예수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였다. <요한복음> 저자가 사용한 그리스 단어는 ‘케포스’ 즉 ‘정원’이다. ‘케포스’는 에피쿠로스가 아테네 근교에 명상과 절제를 위한 배움터 이름이다. 에피쿠로스는 파격적으로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이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였다. ‘케포스’는 인간이 자기변신을 실천하기 위한 깨달음과 천지개벽의 시공간이다. 나는 그런 정원을 가지고 있는가? 자연의 섭리를 읽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가?
사진
<정원에 있는 여인>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
유화, 1867, 82 cm x 100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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