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3. (水曜日) “신전神殿”



인간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버금가는 형벌을 받아야, 그가 저주한 사회의 정의가 유지되는가? 그는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정의’正義는 ‘복수’復讎를 통해서 완성되는 가치인가?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아> 비극을 아테네 극장에 올려, 그것을 관람하러 온 아테네 시민들에게 묻는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당시 아테네인들의 생활반경은 제한적이었다. 그들 일생동안 만나는 사람들이란 자신의 가족, 친척 혹은 동네 사람들이 전부다. 무역을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을 만날 수 없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동네에서 갈등의 문제가 생기면, 최고 연장자에게 찾아가 상의하였다. 그러나 아테네가 지중해 세계의 무역중심지가 되고, 외국인들이 점점 들어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충돌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들은 이들과의 불편한 만남에서 지역주의와 애국주의를 내새워 폭력을 이용하여 갈등을 해결하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란 자신이 당한 만큼, 동일한 고통이나 손해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가하는 ‘복수’였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이 질문을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복수가 정의인가?

복수와 정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테네 도시를 유치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강력한 군사력인가? 아니면 풍요한 경제력인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문법文法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아테네 시민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가?”

‘오레스테이아’의 주인공 오레스테스는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신전神殿 델피로 도망한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델피는 그리스 중부에 위치한 파르나소스 산맥의 경사면에 있다. 그 주위는 ‘파이드리아데스’ Phaedriades라는 700m 반원형 바위가 둘러싸고 있어 예로부터 숭고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피티아’Pythia라는 이름의 여사제가 등장한다. 피티아는 예언의 신인 아폴로와 그의 신전인 델피신전을 관리하고, 신탁神託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사제다. 피티아는 아침기도를 드리며, 이전에 언급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신들을 나열한다. 그녀는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를 찬양하고 야만의 세계에 문명을 가져온 제우스신과 아폴로신에게 감사한다. 그녀는 또한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기도한다. 파티아는 신탁을 기다리는 청중에게 대답하기 위해, 아폴로 신에게 예언의 계시를 달라고 기도한다.

피티아는 델피신전으로 들어가지 마자 끔찍한 장면을 보고 뛰쳐나온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한 남자가 델피신전의 중앙에 위치한 대지의 배꼽인 옴팔로스omphalos를 붙잡고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피티아는 겁에 질녀 아테네 관객들에게 말한다.

“나는 신들에게 미움 받는 한 사내가 대지의 배꼽에 탄원자의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피가 아직도 뚝뚝 흘러내리는 두 손에 좀 전에 뺀 칼로 우뚝 자란 올리브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는 긴 양털실과 하얀 털 송이가 격식에 맞게 감겨 있었습니다.”

그는 오레스테스다. 그가 이곳에 양털실이 격식에 맞게 감겨진 올리브 나무 가지를 아폴로 신을 위한 헌물로 가져왔다. 그는 자신의 사정을 아폴로 신에게 직접 탄원하기 위해 타부의 표식이자 성스러움의 표식인 ‘옴팔로스’위에 걸 터 앉았다. 기진맥진하여 지친 모습으로 온 오레스테스 주위에는 분노한 여신도 지쳐 잠을 자고 있다. 오레스테스의 칼과 몸에 뿌려진 피는 그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의 피다. 어머니를 살해는 그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가?

오레스테스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갈수 있는 곳은 델피 신전밖에 없다. 그는 델피 신전에서 아폴로신에게 자신의 처지를 고백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신이 땅을 만들고, 땅을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한 중심을 찾고 있었다. 그는 사방으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내 최적의 장소를 모색하던 중, 델피에서 지구의 중심이지 우주의 배꼽인 ‘옴팔로스’omphalos를 표시한 바위를 발견하였다.

‘델피’라는 그리스 단어는 ‘자궁’을 의미하는 ‘델퓌스’delphys에서 유래했다. ‘고래’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돌핀’dolphin도 생김새가 자궁과 같이 붙여진 이름이다. 델피에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장소인 옴팔로스가 있다. 인간은 이곳에서 신성을 회복하여 야만에서 문명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결심과 각오를 다졌다. 인간은 이곳에서 오래된 자아를 벗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어머님의 자궁과 같은 장소다. 델피는 고대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에서도 자신을 새롭게 변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순례지가 되었다. 2세기 로마시대 집정관이자 작가였던 플리니가 이 곳에 와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세 가지 새김글을 발견하였다고 전한다. 하나는 ‘그노씨 세아우톤’ 즉 ‘네 자신을 알라!’다.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다. 두 번째는 ‘메덴 아간’ 즉 ‘어느 것도 무리하게 실행하지 말다’다. 지혜로운 삶은 중용을 지키는 삶이다. 세 번째 새김글은 ‘엑귀아 파라 다테’ 즉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말라. 불행이 가까이 와있다’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침묵을 지키는 자다.

델피에서 아폴로 신이 말하면, 흠이 없는 여사제가 듣는다. 여사제는 주변 농부 딸들 가운데 선택된다. 그녀만이 ‘아뒤톤’이란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수 있다. ‘아뒤톤’는 그리스어로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뜻이다. 여사제는 아뒤톤에 마련된 삼각대 의자위에 앉는다. 이 의자를 땅이 갈라져 지하로부터 가스와 연기가 나오는 틈새위에 마련되어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폴로신이 피톤이란 큰 뱀을 살해한 후, 그 시체를 지하에 유기하였다. 그 의자에 앉은 여사제는 환각에 빠져 아폴로로부터 신탁을 받아 순례자들에게 전달한다.

델피를 찾아온 오레스테스는 분노의 여신들이 잠자는 동안 아폴로 신에게 기도한다. 아폴로신은 델피의 옴팔로스에 찾아와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오레스테스의 정성에 감탄한다. 아폴로는 말한다.

“나는 결코 그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보호자로서 그대를 가까이 지켜줄 것이다.”

<자비로운 여신들> 68-69행

오레스테스에게 아테네로 도망가 아테나 여신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아테나 여신만이 오레스테스의 사정을 듣고 그가 어머니 살해의 죄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할 수 있다. 아폴로는 이곳까지 오레스테스를 따라와 괴롭히는 분노의 여신들을 꾸짖는다. 새로운 세계의 질서는 복수가 아니라 역지사지의 공감을 지닌 정의의 기반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복수의 여신들은 과거의 원시적인 신의 질서를 상징하고 아폴로와 아테나는 인류 역사이래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아테네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한다. 이 두 개의 충돌하는 세계관이 오레스테스의 삶을 통해 폭력적으로 충돌한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매달린 델피신전의 ‘옴팔로스’라는 자궁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오레스테스는 정의가 실험되고 있는 아테네로 갈 것이다.

사진

<델피 신전과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