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초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비극 3부작인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작품은 ‘<에우메니데스>다. 고대 그리스어 ‘에우메니데스’Eumenides를 번역하자면, ‘자비로운 자들(여신들)’이란 뜻이다. 오레스테스가 살해된 아버지이자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고, 자신이 아르고스의 왕권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임무가 있다.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정의의 상징인 세 명으로 구성된 ‘분노의 여신들’은 ‘어머니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추적하여 모친을 살해한 대가를 요구한다. 야만세계에서는 아직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이 정의正義다. 그들은 오레스테스에게 살해에 해당하는 똑같은 형벌인 사형을 집행할 것이다. ‘에우메니데스’는 오레스테아 비극의 제2부에선 ‘분노하는 여신들’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세 번째 작품에서는 ‘분노하는 여신들’이 ‘자비로운 여신들’로 변신하였다.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비극의 제 3부작에서 무엇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가르치려고 시도했나?
‘자비로운 여신들’은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희망의 불빛이다. 포도재배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죽어야한다.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의례에 참여하는 자들을 오래된 자신을 유기하기 위해 ‘무아 상태’진입하는 방식을 의례로 만들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종교와 신화에서 ‘엑스타시’ecstasy의 신이다. ‘엑스타시’는 자신에게 정체성을 준 오래된 ‘지위’staus로부터 용감하게 탈출(ek-)하려는 시도다. 그런 시도를 하는 자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진입하여 당황하지만, 환희에 가득 차 있다. 그 상태가 바로 ‘엑스타시’다.
포도주는 고대 지중해 문화에서 문명과 문화의 상징이었다. 포도주와 관련된 종교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전 7세기에 정착되었다. 초기 예술에 등장한 디오니소스신은 성인 남성으로 턱수염과 긴 옷을 걸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와는 달리, 후기 디오니소스는 그들 수염이 없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육감적이며 반나체로 묘사되었다.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하는 가을은 “야만적이며 동시에 아름답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여 시절이지만, 들판은 과실과 곡식으로 가득 차있다. 가을은 풍요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는 상실의 시간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은 죽음과 재생의 축제인 ‘테스모포리아’ Thesmophoria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테스모포리아는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가 납치된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녀를 다시 지상에 데려오는 것을 기념하는 고대 그리스 축제다. 매년 늦가을 추수와 관련된 축제다. 이 축제의 특징은 성인 여성만 참석할 수 있고, 이들이 하는 의식은 비밀에 부쳐져있다. 아테네 여성들은 추수하고 씨를 뿌리면서 풍요를 위한 노래를 한다. 이 노래에는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대한 저주와 봄에 찾아올 축복이 공존한다.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추수한 농식물을 주신 신에게 감사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핵심은 ‘엘루우시스 신비 의례’다.
엘레우시스 신비의례는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고 문명 구축의 기반인 농업이 신의 선물이라고 여기는 추수감사 의식으로 시작하였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가을이란 계절이 가져다주는 풍성한 곡식과 과실을 경이롭게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풍성한 결실은 누군가 그것에 걸맞은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에 맺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레우시스’는 미래에 올 이상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다. 엘레우시스는 또한 고대 그리스가 등장하기도 전에 기원전 15세기 미케네 시대 존재했던 도시 엘레우시스에서 유래하였다. 미케네인들은 이곳에서 특별하면서도 신비한 의례를 거행하였다. ‘엘레우시스’라는 말의 뜻은 ‘도착; 강림降臨’이란 의미다. 고대인들은 이 의식을 통해 만물을 소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세계를 찾아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힘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무슨 모습으로 오는지 알 수 없이, ‘신비’라고 말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자신의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침묵의 소리를 발견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의례란 이 침묵의 소리에 집중하려는 공동체적인 수고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자신의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침묵의 소리를 발견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의례란 이 침묵의 소리에 집중하려는 공동체적인 수고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의례를 ‘뮈스테리온’mysterion이라고 말했다. ‘신비’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미스테리’mystery가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 동사 ‘뮈에오’myeo는 ‘신비한 의례에 참석하다’라는 의미이며 그리스어 명서 ‘뮈스테스’mystes는 ‘그런 의식에 참석하는 입교자/통과 의례자’라는 뜻이다. 신비한 의례에 참석하는 자들이 하는 행위들이 있다. 우선 입을 다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칠흑과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뮈스테리온’mysterion의 첫 음절 ‘뮈’my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기 위해 자신에게 몰입하기 위한 내적인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다. 인류는 자신이 새로운 인간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상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행위를 준비하였다. 그것을 ‘의례’라고 한다. 이 의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바로 ‘뮈’다.
그리스인들은 ‘뮈’라는 소리를 내며, 자신 안에 있는 군더더기를 밖으로 내보냈다면, 인도인들은 우주의 기운은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수용하였다. 고대 인도인들은 통과의례를 위한 첫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 첫 소리를 ‘옴’aum이라고 불렀다. ‘옴’은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Upanisad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우파니샤드는 ‘옴’을 ‘우주의 소리’ 혹은 ‘신비한 소리’ 혹은 ‘힌두교 베다 경전의 총체’라고 여겼다. 우파니샤드는 ‘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옴은 모든 베다가 선포하는 단어다.
모든 수련에서 표현되는 단어다.
모든 현자들의 삶을 위한 단어다.
이 단어의 본질을 이해하라.
‘옴’! 이것이 그 단어다.
이 음절이 브라만이고, 이 음절이 존귀하다.
이 음절을 아는 자는,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카타 우파니샤드> 1.2.15-16
아이스킬로스는 매년 반복되는 공포, 죽음, 그리고 재생이라는 자연의 순환을 자신의 비극을 통해 과감하게 끊으려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무대에 올려 더 이상 공포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수동적으로 기다라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태도를 혁신한다.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작품 ‘자비로운 여신들’은 디오니소스와 엘리시우스 신비의례를 대치한다.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모든 시민들의 참여하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문화를 연습한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자신의 운명을 공포의 영원한 순환에서 탈출하여 광명한 미래를 위한 제도를 찾아가는 시도다. 이들은 그리스 비극이라는 문화운동을 통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과 세상을 보는 ‘자비’로 대치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뮈’라는 소리로, 인도인들은 ‘옴’이란 소리로 조용히 자기응시의 수련을 수행하였다.
사진
<안나와 장님 토빗>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1606–1669)
유화, 1630, 63.8 cm x 47.7 cm
런던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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