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7. (木曜日) “확장된 자아”


아이스킬로스는 이 비극을 통해 무엇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달하려하는가? 그는 아테네 시민들을 ‘교육’하였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품에서 세상을 관찰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구축한다. 나와 나의 모체이자 그 일부 인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다른 이들은 나의 관찰의 대상이다. 1인칭인 ‘나’와는 다른 2인칭인 ‘너’가 된다. ‘너’는 3인칭 ‘그것’이 나의 인식체계에 들어와 익숙해 질 때 부르는 용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시작하였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장을 다시 푼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교육은 자기 자신이란 소중하지만 편협한 세계에 대한 직시直視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세계를 확장하려는 파괴와 재조정으로 이어진다. 교육은 1인칭 세계를 2인칭 세계로 확장하려는 부단한 도덕적인 노력이며, 더 나아가 1인칭 세계를 3인칭 세계로 진입시키려는 상상이다.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우리는 무식한 사람이라 부른다. 무식한 사람이란 학교에 가서 지식을 암기하거나 축적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무리 남들이 평가하기에 최고의 교육을 받았더라도,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탈출하려고 시도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연적인 환경에 의해 우연히 형성된 자신의 세계를 강화하기 위해 배운다. 그런 사람은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무식해진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알아야하는 대상은 역설적으로 ‘타자’이다. 타자를 탐구하기 위한 자아의 철학적인 연구는 프랑스 철학자 R. 데카르트(1596-1650)가 시작하였다. 그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사고하는 나’를 자아自我를 확립하는 실체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만물을 ‘생각하는 주체인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들’로 확실하게 구분하였다. 그러나 ‘생각하는 나’는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며 ‘내가 아닌 다른 것들’과 유동적인 관계가 있다. 데카르트의 이분법적인 이성주의에 정면도전한 철학자가 있다. 영국 철학자 D. 흄(1711-1776)이다. 그는 이 순간의 감각경험과 감정반응 없이는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접근한 철학자는 I. 칸트(1724 –1804)다. 그는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의 실체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그는 자아 안에서 ‘생각하는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先驗的 자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칸트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개선함으로, 여전히 ‘타자’와는 상관없는 ‘자아’의 독창성을 주장하였다. 이 믿음에 정면도전한 프랑스 지식인이 있다. 그는 철학자,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인 J-P. 사르트르(1905-1945)다. 그는 칸트가 주장하는 원래의 자아, 선험적 자아와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아는 타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응적인 존재다. 그는 자아를 ‘대타적’對他的 존재라고 규정한다.

‘자아’는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원초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 관계에서 형성되는 존재다. 이 명제를 가장 잘 표현한 사상가는 마르틴 부버(1878-1965년)다. 그는 18세기 이후 서양에서 시작된 과학혁명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과학은 사물이나 사람을 관계를 맺어 영향을 주고받는 주체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으로 영원히 3인칭으로 존재한다. 부버는 ‘나와 너’라는 인간 존재를 ‘만남’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타자와의 만남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나와 너’의 만남은 ‘대화’며, ‘나와 그것’의 만남을 ‘독백’이다. ‘나와 너’의 만남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 ‘주인과 반려견의 만남’, ‘작가와 나무와의 만남’이다. 각자가 ‘자아’를 간직하고 있지만 자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전달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넘어서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 새로운 공동의 ‘자아’를 구축한다. ‘나와 너’의 관계는 마주침, 사랑, 대화, 배려, 공동체, 교환, 공감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도시라는 위대한 공동체는 ‘나와 너’의 만남에서 태동한다.

부버는 현대문명을 ‘나와 그것’과의 관계로 설명한다. 자아가 타자를 만난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공동의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로의 타자성만을 확인한다. 혹은 이 타자성을 인내하는 ‘똘레랑스’ 수준에 머문다. ‘나’라는 자아는 ‘그것’이라는 관찰과 분석의 대상과 폭력적으로 만나 제로섬 게임을 시작한다. ‘타자’는 2인칭이 되질 못하고, 영원히 3인칭으로만 존재한다. 3인칭으로 존재하는 ‘나’는 데카르트나 칸트의 철학에서 발견된다. ‘나와 너’와의 만남은 없고, 대결, 대치, 비방, 성급함, 욕망, 매도, 댓글, 흉내 내기, 훔쳐보기, 부러워하기 등만 난무한다. ‘나와 그것’이 삶의 습관이 된 인간을 하류인생, 그런 습관이 관습이 된 사회를 야만사회라고 부른다.

아이스킬로스는 ‘탄원하는 여인들’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나와 너’의 관계를 소개한다. 그는 아테네 원형극장에 앉아 있는 아테네인들에게 시민이 누구인가를 가르친다. 그들이 관심만 있으면 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크세노이’라고 불리는 외국인들과 ‘메토이코이’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로 시민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욱더 파격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시 아테네 남성 시민들만 아테네 도시의 종교의식과 같은 비극경연을 참관할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에게 여성은 남성을 도와주고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일 뿐이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고 투표한 것도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을 보러온 아테네 남성들은 이 비극의 첫 장면에 충격 받았다. 장소는 아테네가 아닌 자신들과 싸우고 있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도시 아르고스 시와 해안 사이에 있는 어두운 숲속이다. 그 뒤로는 제단과 그리스 신들의 신상들이 세워져 있다. 무대 위에는 자신들과 피부색이 다른 이집트 여인 50명이 무대 위에 서있었다. 그 옆에는 그들의 아버지이자 역시 이집트인인 ‘다나오스’가 서있다. 이 비극 작품의 주인공은 개인이 아니라 합창대이며, 그들은 이집트 여인 50명이다. 아테네 남성 시민들은 웅성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탄원자들의 보호자이신 제우스시여, 우리 일행을 굽어 살피소서..” 탄원자들의 노래는 무려 180행이나 된다. 아마도 그리스 비극작품들 중 가장 긴 노래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외국인 체류자는 2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을 3인칭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2인칭으로 보아 확장된 ‘자아’로 수용할 것인가?

사진

<마르틴 부버(1878-1965)>

데이빗 B. 케이단 이미지